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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희 Feb 29. 2024

도쿄도 미술관 '인상파' 전시

우에노에서 만난 도쿄도 미술관


머릿속에 전날 본 마티스와 키스해링 전시가 생생하고 강렬하게 재생되어 아침까지 행복했었다. 오늘도 편의점에서 사 온 샌드위치와 컵라면, 바나나로 소박한 아침을 먹었다. 밥을 먹는 사이사이 숙소 창밖으로 기차가 요란하게 지나간다. 가난한 사람이 견뎌 내야 하는 것에 소음도 있다는 사실을 허름한 숙소에서 알게 되었다. 기차가 지나가고 콧노래를 부르며 서둘러 젖은 머리를 말리고 외출에 나섰다.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국립서양미술관에 가는 날이다. 국립서양미술관은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건축가 중 한 명인 르코르뷔지에가 1959년 건축한 미술관으로 소장품만 6,000점이 넘는다.


햇살이 따듯한 도쿄의 거리가 내 집인 양 익숙해지고 있다. 국립서양미술관으로 가기 위해 닛포리역에서 야마노테선을 타고 우에노역에서 내렸다. 생각했던 것보다 우에노 공원이 크고 사람들이 많아서 어릴 적 처음으로 대공원에 온 어린아이처럼 두리번거리게 된다. 우에노 역에서 공원 방향으로 걸어 나오면 오른쪽에 국립서양미술관이 보인다. 오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2.13 ~ 2. 26일까지 휴관일이라는 표지판만 걸려있고 문은 굳게 잠겨있었다. 닫힌 너머로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과 <칼레의 시민>이 시야로 들어온다. 갑자기 맥이 빠져 한동안 문 앞에서 동상처럼 서있었다. 

하는 수없이 우에노 공원 안에 있는 모리미술관으로 가서 일본 작가의 전시를 봤다. 전시 안내 하시는 선생님께 미술관 추천을 부탁했더니 메트로폴리탄(도쿄도) 미술관에서 인상파 화가 전이 개최되고 있다고 친절하게 답해준다. 계획대로 되는 여행이라면 그건 일상이지 여행이 아닐 거라고 위안을 건네며 플랜 B를 실행하기로 했다.


100여 미터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다 보니 우에노 동물원이 나오고 그 옆에 메트로폴리탄(도쿄도) 미술관이 보였다. 이 공원 안에 미술관이 3개나 되다니 놀랍다. 건물 입구에 인상파 전시를 알리는 포스터가 크게 붙어있고 전시장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의 줄이 길게 늘어져 있다. 우리도 빨리 합류하여 발권하고 전시장 안으로 들어갔다. 

메트로폴리탄(도쿄도) 미술관은 올해가 제1회 인상파 전시회가 개최한 지 150주년이 된 해라고 한다. 이를 기념해 유럽과 미국, 일본의 인상주의 전시회를 1.27일부터 4.7일까지 개최하고 있었다. 미국 보스턴에 있는 우스터 미술관의 소장품을 중심으로 모네, 르누아르, 쿠르베, 시슬리, 세잔 등 유명한 프랑스 인상파 화가와 잘 알려지지 않은 미국, 유럽, 일본의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도 소개하고 있다.

 


미국의 인상파 화가 '차일드 하샘'


우스터 미술관의 소장품을 전시하는 거라 그런지 미국 인상파를 대표하는 하삼의 유화가 70여 점이나 전시하고 있었다. 메인 포스터에 있는 차일드 하샘(Childe Hassam,1859-1935)의 그림은 사람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히 아름다웠다. 미국의 인상주의 화가에 대해 관심이 없었는데 이번 여행에서 발견한 보물 중 하나가 하샘의 그림이다.

(차일드하삼, 프랑스 정원에서 꽃을 모으다, 우스터 미술관 홈페이지)

5월의 정원에는 햇살이 따스하고 나뭇잎은 풍성하고 꽃은 화려하다. 정원에서 딴 아름다운 꽃들이 담긴 꽃바구니가 길에 놓여 있고 여인의 손에도 꽃이 한 아름 들려있다. 저 멀리 한 남자가 의자에 앉아 평화롭게 책을 보고 있다. 아마 그는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거 같다. 책을 보는척하며 아름다운 아가씨를 보고 있는 게 틀림없다. 신사의 마음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은 그녀는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꽃을 감상하는데 여념이 없다. 하얀 시폰의 드레스를 차려있고 가장 사랑스러운 꽃을 손에 들고 있는 그녀의 마음에는 봄이 가득하다. 으로 캔버스를 흠뻑 물들인 그림이 보는 이에게 행복감을 선사한다. 


차일드 하삼조식당, 겨울 아침, 뉴욕, 조식당, 우스터미술관홈페이지

하삼의 그림은 색감이 풍부하고 우아해 그림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전시를 보면서 좋아하는 화가들이 하나둘 늘어간다. 


전시장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그림은 단연 모네의 작품이다. 모네가 지베르니에서 직접 만든 "물의 정원"에서 그린 수련을 볼 수 있다. 수면의 반사는 주변의 나무와 하늘을 포착하여 끝없이 펼쳐진 광활한 느낌을 준다. 

클로드 모네, 수련, 우스터미술관

전시장에 관람객이 많아 일렬로 줄을 서서 아주 천천히 움직이며 2시간을 넘게 전시를 보고 나왔다. 예정에 없던 인상파 화가들의 전시를 볼 수 있음에 감사한 여행이었다. 진정한 여행이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가지는 데 있다고 한다. 이번 여행은 미술에 대한 새로운 눈을 가지는 여행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우에노 공원을 빠져나와 출출한 배를 채우려고 이치란 라멘집으로 향해갔다. 우에노역 주변에는 높은 빌딩과 촘촘한 가게, 수많은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였다. 인파에 밀려 겨우 찾은 식당은 SNS에서 알려진 식당이라 그런지 기다리는 줄이 길었다. 잠깐의 갈등 끝에 한 시간을 넘게 줄을 서 기다리고서야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식당 안은 일렬로 길게 앉아 벽을 보며 먹는 전통 일본 라멘집이다. 한 사람이 겨우 앉을 수 있는 독서실 같은 음식점, 발바닥으로 전해지는 무직한 통증에도 움직일 수 없어 몸을 곧추세우고 주문한 라멘이 나오길 기다린다. 진한 국물이 목구멍을 타고 따듯하게 전해지며 여행자의 허기를 달래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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