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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작가야 Nov 04. 2024

<공포 소설> '생것 먹는 귀신'

귀신 들린 집



<생것 먹는 귀신>



*이야기의 모든 내용은 허구도 진실도 아니다어느 누군가의 속삭임일 뿐이다.

       

 어느 부동산의 이야기다.


 가게 문을 열자마자 전화가 거칠게 울어댔다.


 “여보세요? 부동산입니다.”

 “네, 여기 예선빌이예요.”

 “아, 예, 사모님! 안녕하세요?”


 선재가 믹스 커피 한 잔을 타며 반갑게 인사했다.


 “선재 씨, 잘 지냈죠?”

 “아휴, 뭐 덕분에요. 그런데 무슨 일로?”

 “하아- 405호 때문에요”


 예선빌 405호.

 동네에서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유명한 곳이었다. 안타깝게도 좋은 의미의 유명세는 아니었다.


 “405호라면…… 입주자 또 도망갔어요?”

 “네. 죽을 맛이네요.”

 “바로 내놓으실 거죠? 이쯤 되면 집 상태 한 번 확인해야 할 것 같은데……. 오해하지 마세요. 나쁜 의미로 확인하는 건 아니고…….”

 “알아요. 그래서 말인데 오늘 들릴 수 있겠어요?”
 

 선재는 저녁에 들린다며 약속하고 전화를 끊었다. 홀짝- 믹스 커피를 입에 댔다. 아주 달콤했다.

 노트를 폈다. ‘예선빌 405호’라고 적었다. 옆으로 작게 메모를 추가했다.


 “귀신 들린 집…….”



 *

 405호 현관문이 열렸다. 예선빌 건물주, 하선이 야윈 모습으로 선재를 맞이했다.


 “사모님, 혈색이 안 좋아 뵈는데.”


 선재가 피로회복제 음료 상자를 내밀었다. 하선이 눈짓으로 인사하고는 거실로 안내했다.


 “말도 마요. 이러다 집값 떨어지겠어. 소문이 좀 무서워야지.”


 하선이 부엌으로 가 냉장고를 열었다. 간단하게 마실 거라도 대접하려는 것이다. 선재가 물끄러미 그녀의 뒷모습을 보았다. 40대 중반으로 보이지 않는 몸매였다. 얼굴도 동안이라 30대 초반이라 해도 믿을 정도였다.


 ‘건물주면 얼마나 부자겠어? 몸 관리도 엄청나게 하겠지.’


 선재는 씁쓸하게 베란다에 비친 자신을 보았다. 너무 늙었다. 이제 서른다섯인데……. 하선과 나이가 바뀐 듯했다.

 생수 한 컵이 선재 앞에 자리했다.


 “이거뿐이네요.”

 “충분합니다.”


 생수를 단숨에 비워버린 선재가 집을 쭉 둘러보았다. 널찍한 거실에 큰 방 하나, 작은 방 두 개, 깨끗한 화장실까지. 모자람 없는 24평 빌라였다. 작년에 리모델링까지 해 시설도 빵빵했다.


 이런 집을 버리고 뛰쳐나가? 그것도 반년 만에 세 번이나? 정말 소문이 사실인가…….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 알죠? 참나, 세입자들이 일찍 나가려고 거짓말한 것 아니에요?”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어요. 아래층 사람들도 눈치를 챈 건지 괜히 불안하다고 연락이 온다니까요?”

 “어이가 없네요. 도대체 무슨 귀신이 나온답니까?”

 “여자래요. 여자 귀신.”

 “귀신이 대부분 여자잖아요. 대충 둘러댄 거 아니에요?”

 “나도 의심스러워서 물어봤죠. 그런데 하나같이 말하더라고.”

 “뭐라고요?”

 “생것을 먹는 여자 귀신.”

 “생것?”

 “음식을 날로 먹는다고요. 그 있잖아요. 생고기, 생쌀 뭐 이런 거.”     

 선재는 문득 궁금증이 일었다.     

 “혹시 도망간 사람들 얘기해줄 수 있어요?”     

 하선이 잠시 기억을 더듬었다.     

 “첫 번째 사람이 남자였어요. 올해 3월에 들어왔죠.”



 *

 이직 때문에 이사를 오게 된 성구는 40대 미혼남이었다. 이삿날, 짐이 별거 없어 친구 두 명이 그를 도왔다. 일이 다 끝나자, 성구는 친구들을 고깃집에 데려갔다. 넉넉하게 주문을 한 바람에 고기가 많이 남게 되었다. 마침 집에 먹을 것도 변변하지 않던 터라 성구는 남은 생고기를 싸 들고 돌아왔다. 그날은 이삿날 피곤함에 눕자마자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부엌에 간 성구는 기겁하며 쓰러졌다. 어제 고깃집에서 가져온 생고기가 부엌에 널브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분명 냉장고에 넣어놨는데? 이해가 가지 않았다. 숨을 고른 성구가 정리하기 위해 생고기를 집었다.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고기가 다 상한 것이다.

 며칠 뒤, 직장동료가 집에 놀러 왔다. 밖에 나가기 귀찮았던 둘은 부엌에서 고기를 구워 먹었다. 맥주 한 캔씩 하고 상사 뒷담화를 하다 보니 졸음이 쏟아졌다. 성구는 직장동료를 작은 방으로 안내하고 자신은 안방에서 잠을 청했다.

 이른 새벽,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발소리였다. 덜컥- 냉장고 문이 열렸다. 직장동료가 물을 마시나보다 하며 다시 눈을 감았다.


 쩝쩝, 쩝쩝-


 무언가 씹는 소리가 들렸다.


 “이 새벽에 무슨…….”


 아무리 친하다지만 허락도 없이 남의 냉장고를 뒤져 먹는 건 예의가 아니었다. 성구가 부엌으로 갔다. 직장동료는 냉장고 앞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그는 허겁지겁 무언가를 목구멍으로 집어넣었다.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성구의 물음에 직장동료가 몸을 일으켰다. 그의 손엔 아까 먹다 남은 생고기가 들려있었다.


 “싱싱한 고기…… 고기…….”     

 직장동료가 중얼거렸다. 여자의 목소리가 섞여 있었다. 들고 있던 생고기를 한입에 먹어치웠다. 성구가 손으로 입을 막았다. 보는 것만으로도 토악질이 나왔다. 직장동료는 냉장고를 요란하게 뒤졌다. 먹었던 고기가 부족한 것 같았다.


 “더 줘…… 싱싱한 거로…… 더 줘, 더 줘…….”


 오싹했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직장동료가 성구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가 웃으며 말했다.


 히히- 사람 고기다.


 성구는 그대로 기절했다. 그날 아침, 성구와 직장동료는 부엌에서 눈을 떴다. 성구가 어제 일을 말했지만, 직장동료는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일이 있고 난 뒤로, 성구는 여자 귀신에게 시달렸다. 곧 죽을 것만 같았다. 결국, 한 달 만에 집을 비웠다.


 얼마 뒤, 신혼부부가 예선빌 405호로 입주했다. 성구와 달리 얼마간은 조용했다. 그러나 한 달 뒤,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멀쩡하던 남편과 달리 아내는 밤마다 가위에 눌렸다. 어떤 여자 귀신이 부엌에서 자신을 쳐다보는데, 입맛을 다신다는 것이다. 심지어 하루하루 지날수록 귀신은 안방으로 다가왔다.

 어느덧, 안방 문 바로 앞까지 온 귀신이 작은 눈동자를 데구루루 굴려 아내를 내려다보았다. 아내는 겁에 질려 가위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했지만 소용없었다. 오히려 더 큰 힘이 억누르는 것 같았다.


 콩- 콩-


 여자 귀신이 두 발을 붙인 채로 문턱을 뛰어넘었다. 그 모습이 마치 강시 같았다. 귀신은 아내의 바로 오른편에 서서 킁킁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는 무언가 이상한지 눈알을 굴려댔다.


 이년 냄새가 아니야.


 귀신의 눈알이 아내의 배를 향해 멈췄다.


 히히- 이년의 냄새잖아? 싱싱하니 맛있겠다!


 귀신이 입맛을 다시며 아내의 배에 손을 대었다. 엄청난 복통이 밀려왔다.

 그때, 남편이 크게 욕설을 내뱉으며 잠에서 깼다. 덕분에 아내도 가위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배를 잡고 끙끙 앓는 아내와 함께 남편은 응급실로 향했다. 그리고 아내가 임신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복통이 나아진 아내가 남편에게 물었다.


 “왜 욕을 하며 잠에서 깬 거야?”

 “아, 꿈속에서 어떤 미친년이 당신 배에 칼을 겨누고 있잖아. 나도 모르게 달려들었지.”


 남편의 꿈속 여자는 아내가 봤던 여자 귀신과 매우 흡사했다. 둘은 아이를 위해 그날로 집을 이사했다.

 하선이 며칠 전 들은 이야기로는, 신혼부부의 아이는 딸이었다. 순간, 아내가 가위에 눌렸을 때 귀신의 말이 떠올라 소름이 돋았다고 한다.


 ‘히히- 이년의 냄새잖아? 싱싱하니 맛있겠다!’


 귀신이 아내의 배를 보며 한 말이었다. 귀신은 신혼부부의 아이가 딸임을 알고 있었다.


 마지막 입주자는 덩치가 좋은 형제였다. 연달아 이상한 일이 생기다 보니, 하선은 형제에게 귀띔했다. 귀신이 나오면 말해달라고. 위험할 수도 있다고.

 하지만 형제는 콧방귀를 꼈다. 오히려 귀신이 나오면 물리치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그리고 둘은 입주한 지 이틀 만에 가위에 눌렸다. 아무리 건장한 남자 둘이라도 귀신을 이길 수 없었다.


 삭삭- 삭삭-


 형은 밤마다 생쌀을 퍼먹었다. 동생이 말려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사 온 지 한 달, 형은 생쌀에 기도가 막혔고 명을 달리했다. 이후 동생도 여자 귀신에게 시달렸다. 그는 주변에 아무 설명 없이 집을 버리고 도망쳐 버렸다.



 *

 말을 마친 하선의 수심이 더욱 깊어졌다. 그러나 선재는 흥미로운 얘기를 들어서 그런지 은근 심장이 뛰었다. 물론 다른 이유도 있었다. 여자와 단둘이 수다를 떤 게 얼마 만이던가!

 하선이 다시 입을 열었다.


 “집을 아예 비우긴 그래서 내가 일주일 정도 살고 있었어요.”

 “하하- 어때요? 사모님은 귀신 봤어요?”


 농담조로 묻는 선재를 보고 하선이 피식 웃었다.


 “밥이나 먹고 가요.”


 하선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 부엌으로 갔다. 선재가 들뜬 마음으로 식탁에 앉았다. 다 식은 찌개가 가운데 놓여있었다. 썩 푸짐한 식사는 아니었다.

 하선은 그릇과 수저를 이리저리 챙겼다. 원래 살던 집이 아니라서 그런가? 준비과정이 영 서툴렀다.


 “어? 사모님, 잠깐만요.”


 갑자기 의문이 들었다.


 “마지막 입주자들 말이에요. 그 형제. 주변에 아무 설명 없이 나갔다고 했죠?”

 “그렇죠.”

 “그런데 형이 가위눌리고, 기도가 막혀 죽고, 동생이 다시 시달리고……. 사모님은 어떻게 자세히 안 거예요?”


 그릇 하나가 깨졌다. 하선이 놓친 것이다. 부자연스러운 정적이 흘렀다. 이내 그만큼 부자연스럽게 하선이 온몸을 비틀거리면서 밥그릇을 식탁에 올렸다.


 내가 죽였으니까 잘 알지. 히히-


 하선의 눈동자가 빙그르르 굴러갔다. 선재 앞의 밥그릇엔 생쌀이 수북하게 쌓여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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