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나무, 두 도시

by 주아태


며칠 전, 출근길에 서 있던 커다란 나무가 잘려나갔다. 지름이 80cm는 족히 되어 보이는, 오래된 나무였다. 바쁘게 걷던 나는 그 붉은 밑동을 보고 벌컥 화가 났다.

나무가 잘려서 슬펐던 건 아니다.

그 안에 쌓여 있던 시간이, 너무 쉽게 사라진 것 같아서였다.


나무야 다시 심으면 자랄 테지만 그 나무가 견뎌온 시간을 다시 살려낼 순 없다.

햇빛과 비, 계절을 견디며 깃든 시간은

잘려나가는 순간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 밑동을 볼 때마다 화가 올라왔다. 그리고 좀 궁금해졌다.

‘나무 하나 잘린 게 뭐라고 내가 이렇게까지 화가 나는 걸까?‘


그러다 오래전에 봤던 영화 〈플립〉이 떠올랐다.

소녀가 그 오래된 나무를 지키려고 엉엉 울면서 꼭대기에 올라가 버티던 장면.

그때 나는 그 소녀가 유난이라고 생각했던 거 같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 소녀가 지키려고 했던 건 단순한 나무 한 그루가 아니라, 그 나무에 쌓여 있던 자신의 시간과 존재 그 자체였다는 걸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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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고향이 떠올랐다.


내가 자란 동네는 도시 개발에서도 비껴간 곳이었다. 촌스럽지만, 그래서 오히려 많은 것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낡은 골목길, 오래된 가게들, 군데군데 금이 간 담벼락들, 누군가 버리고 간 의자들까지.

이 년여 전 고향에 갔을 때, 나는 초등학교 시절에 돌아다니던 골목을 다시 걸었다. 길모퉁이 하나하나가 어릴 때 기억과 정확히 겹쳤다.


공간에 시간이 쌓인다는 건, 그때의 공기, 그때의 감정을 다시 꺼내볼 수 있게 해주는 거구나.

눈으로 볼 수 있는 시간이라는 게,

이렇게까지 가슴 떨리는 일이구나, 새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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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고향도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내가 다니던 교회 앞, 공터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던 커다란 나무.

그 나무는 그 공간의 상징처럼 느껴졌었다.

어릴 때 나는 산책하다가 가끔 그 나무 앞에 멈춰 서서 그 두꺼운 시간의 누적을 감탄하면서 바라봤었다.


그러다 몇 달 전에, 엄마가 전화로 말했다.


“거기 주차장 나무 뽑았어. 차 대기 불편하니까 없앴대.”


나는 말문이 막혔다.

그 나무는 어른 두 명이 껴안아야 할 만큼 두꺼웠다.

그냥 나무가 아니라 어르신이었는데...

몇 대 더 주차할 공간을 만들려고, 그 오랜 시간을 통째로 없애버린 거였다.


서울만 그런 줄 알았는데,

내 고향도 천천히 그렇게 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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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말할 것도 없었다.


몇 달만 동네 근처를 안 나가도

익숙했던 가게들이 새 간판을 달았다.

심지어는 옛 건물은 온데간데없고 새 건물이 들어섰다. 새로 달린 간판들은 모두 반질거렸고,

거리는 점점 과거를 밀어내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는 게 아니라, 시간을 밀어버리는 것 같았다.

모든 걸 매끈하게 새로 덮고 흔적을 깨끗하게 지워버리는 방식으로.


사람들은 발전해 나가는 게 눈에 보여서 좋다고들 했다. 나는 그때도 긴가민가 했었던 거 같다.

하지만 이건 발전이 아니라, 엄연한 상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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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바라고 있다.

내 고향만큼은,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았으면 한다. 새 가게가 들어서고, 도로가 조금씩 달라지는 건 괜찮다.

하지만 오래된 골목길, 오래된 나무, 오래된 시간들은 꼭 그대로 품고 있어줬으면 한다.


그래서 훗날 내가 다시 고향을 찾을 때,

그 많은 시간의 쌓임 들을 더 시간이 흐른 내가 발견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