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셀 딸기 샌드위치

– 흐릿한 세계에서 따뜻한 디테일을 수집하는 법

by 주아태



어릴 때 나는 게임을 해도 레벨업이 빠르지 않았다. 친구들은 몬스터를 잡고, 퀘스트를 깨고, 아이템을 얻느라 바빴지만, 나는 맵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는 걸 더 좋아했다.


공원의 끝으로 걸어가다 나보다 레벨이 높은 몬스터를 만나 몇 대 얻어맞고, 광장 한가운데서 다시 살아나는 것이 내 게임의 일상이었다.


그래도 나는 또다시 맵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어떤 게임에서는 헤엄을 칠 수 있었다.

나는 그걸 알게 된 순간부터 전투는 하나도 하지 않고 물속을 떠다니며 이 섬 저 섬을 떠돌아다녔다.

물속은 조용했다. 햇살이 번져 들어오고, 바닥의 모래가 천천히 일렁이고 내 캐릭터는 물 위를 하염없이 떠 있었다.


편의점처럼 보이는 건물은 꼭 들어가 봤다.

진열대 위에는 시리얼 박스나 샌드위치 같은 것들이 있었고, 선반 위에는 딸기 생크림 케이크처럼 보이는 뭉개진 픽셀 조각이 있었다.

자세히 보면, 모양도 색도 케이크 같아 보이지 않았다.

맵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던 나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메인 맵이나 전투 무대의 디테일들은 살아있지만, 잘 보지 않는 구석은 뭉개진 픽셀이 대신한다는 걸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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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알게 되었을 때도, 나는 이상하게 실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편의점 음료 진열대 문이 살짝 열린다는 걸 발견했을 때, 그리고 선반 끝에 놓인 딸기 생크림 케이크를 알아봤을 때, 나는 혼자만 아는 세계를 가진 것처럼 기뻤다.


친구들이 강한 아이템을 얻고 레벨을 올릴 때에 나는 그런 흐릿한 발견들을 조용히 전리품처럼 모으는 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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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 나도 빠르게 레벨업 하려고 구석구석을 살피지 않는 어른이 되어 있었다.

출근할 때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지하철에서는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일하다 지치면 유튜브 영상을 넘겨보았다.


하루가 지나가는 동안, 내가 뭘 보고, 어디를 지나쳤는지, 뭘 자세히 관찰했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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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날은 노래 듣는 것도 귀찮고, 영상을 넘기는 것도 싫증이 났다. 나는 핸드폰을 가방 안에 넣고

주변을 천천히 구경하기 시작했다.


지하철 선반 위에는 신문이 하나 놓여 있었다.


예전에 누군가에게 들었던 기억이 났다.

지하철 선반에 신문을 올려두는 건 다음 사람이 읽을 수 있도록 남겨두는 거라고.


귀를 기울이면, 지하철이 레일을 긁고 지나가는 소리, 지하철 문틈새로 스며드는 바람 소리, 누군가의 조용한 웃음소리 같은 것들이 들렸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진 종이 조각, 벽에 붙은 오래된 스티커, 가방에 매달린 키링까지, 내가 자세히 보려 하면 그것은 아주 또렷하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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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에서는 사람들이 잘 보지 않는 구석들이 흐릿한 픽셀로 채워져 있었지만, 현실은 달랐다.

현실은, 바라보는 만큼 섬세해졌다.


그만큼 무엇을 오래 바라보고, 어떤 장면을 품을지, 조심스럽게 고르는 마음이 필요했다.


내가 살아가는 현실은 꼭 깨끗하거나 다정하기만 하지는 않다.

어딜 가도 지저분하고, 버거운 일들이 있고, 괜히 마음이 다치는 순간들도 있다.


그래도, 나는 그런 것들만을 기억하고 싶지 않다.


나는 빨개진 얼굴로 어설프게 건네는 사과,

문을 잡아주는 가벼운 손짓,

자리를 양보할까 말까 망설이다 웃어버리는 표정, 그리고 친구 손목에 걸려 덜렁거리는 귀여운 스크런치 같은,

그런 따뜻한 장면들을 더 자세히 더 오래 보고 싶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하나 모은 순간들을 흐릿하게 흘려버리지 않고 뚜렷한 기억으로, 따뜻한 전리품으로 남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