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의 어느 날, 나는 바닷가에 혼자 앉아 있었다.
그날 날씨는 썩 좋지 않았다.
습하고 흐렸고, 바람은 생각보다 훨씬 세게 불었다.
바닷가엔 사람들이 많았다. 커플, 친구들, 가족들.
그들 틈에서 나는 조용히, 혼자 앉아 있었다.
처음엔 살짝 외로웠다.
다들 누구와 함께였고,
나는 그 안에서 아주 조용한 이방인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구름을 가르며 해가 났다.
황금빛의 바다가 눈앞에 펼쳐졌다.
나는 그 순간을 찍었다.
주변에서도 셀카를 찍는 커플들, 서로를 불러주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들을 바라보는 것도 나름의 재미였지만,
그 재미도 오래가진 않았다.
왜냐하면, 바람이 너무 셌다.
정말, 그날의 바람은 모든 것을 가져가는 바람이었다.
그 바람은... 생각보다 중요했다.
예전에 오키나와의 바닷가는 바람이 전혀 없었다.
기온도 너무 좋아서, 그 순간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고
나는 붕 떠 있는 듯한 상태였다.
그런데 발리에서는 달랐다.
바람이 너무 강해서
내 머리카락도, 감정도, 생각도 다 날려버렸다.
모든 게 날아가고, 존재만이 남은 느낌이었다.
그 자리에 나는 두 시간 넘게 앉아서
사람들을 바라봤다.
그것이 특별히 재밌었던 것도 아니고, 지루했던 것도 아니었다.
슬프지도 않았고, 기쁘지도 않았다.
생각이 안 들었던 것도 아닌데,
어떤 생각이 떠오르면 곧 다른 풍경이, 그리고 바람이 깨끗이 날려버렸다.
어떤 장면들은 기억에 남았다.
엄마와 초등학생쯤 보이는 딸이 물 근처로 걸어왔다.
잠깐 사이에 딸이 옷을 입은 채로 바다로 뛰어들었다. 그리곤 젖은 몸으로 겸연쩍게 웃으며 엄마에게 다가갔다.
엄마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망연자실하게 그 장면을 바라보았다.
옷은 젖었고, 아이는 해맑았고, 엄마는 잠깐 멈춰 서 있었다.
또 다른 엄마는 아주 어린 아기의 발을 바닷물에 담그고 있었다.
아기는 기분 좋은 듯 발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 장면은 잠깐, 가볍게 ‘귀엽다’고 느껴졌다.
하지만 그 감정도 오래 머물지 않았다.
감정도 생각도 없이 그 장면들을 꽤 오래 지켜봤다.
나는 생각도 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어떤 생각도 깊게 들어가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때마다 바람이 그 생각을 밀어냈기 때문이다.
감정도 마찬가지였다.
슬픔이나 외로움 같은 감정도 스쳐 갔지만,
그 감정들이 나를 발리의 바닷가에서 밀어내지는 못했다.
재밌지도 않았고, 지루하지도 않았고,
슬프지도 않았고, 기쁘지도 않았고,
생각이 올라왔지만 그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고,
감정이 있었지만, 나를 흔들진 않았다
나는 단지 그 자리에 있었다.
눈을 뜬 채로 명상하듯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모든 것을 지켜보았다.
감정도, 생각도 머물지 않던 그 자리에서 존재만으로 앉아 있었다.
존재만으로 앉아있었던 그 짧은 두 시간을, 나는 아주 오래 기억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