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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주리 May 31. 2023

깔딱수 5화 - 직장맘 되기 왜이리 힘드냐?


매주 수요일 깔딱 고개를 넘어가는 직장맘입니다.


수요일마다 깔딱수 연재 중입니다.


오늘은 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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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계획대로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엄마는 주 4일 작은 아이만 맡아주고, 큰 아이는 어린이집에 맡기면 되고, 남편이랑 내가 퇴근하면서 데리고 가면 되는 거였다.


일도 하고 돈도 벌고 엄마도 용돈이 생기고 서로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건 순전히 내 생각이었다.



인계인수를 받으니 월~목 109과목 4일로 나누면 25과목~ 30과목 정도 되었다. 한 명이 두세 과목 정도 하고 형제자매가 있으니 하루 5가구 ~ 8가구를 방문하면 된다. 그 정도는 할 수 있었다. 그리고 8개동 아파트 한 단지를 일주일 내내 하면 되는데... 일도 아니었다. 친구가 말한 대로 꿀이었다. 다른 사람은 매일 다른 지역 다른 동네를 다녀야 하는데 그러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일은 쉬웠다. 4년 정도 쉬다 나왔지만 했던 일이라 금방 적응이 되었다. 아가씨 때 어머니 상담하는 거랑 아기 엄마가 되어서 상담하는 것엔 파워가 실렸다. 내 아이같이 성의 있게 수업을 했다. 아니 더 정성 들여 수업준비했고 어머니들 아이들 만족도는 높아갔다.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소개를 해주시기 시작했다. 신나게 상담했고 수업을 했다. 처음에 받았던 과목이 109과목에서 점점 늘어서 150과목까지 되는 것이다. 그러면 금요일에 일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수업이 늘어도 요일까지 늘어난 건 좋은 일이 아니었다.



엄마는 불만이 쌓여갔다. 퇴근시간만 되면 전화통에 불이 났다. 언제 오냐고 지금 시간이 몇 시인데 여태 일을 하냐고 난리였다. 어린이집에서도 전화다. 우리애만 혼자 있는데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우리애를 위한 보육이 어렵다고 말이다. 이제 와서 늘어난 회원을 나가라고 할 수도 없다. 이래서 애 엄마가 사회생활하는 것이 힘이 드는구나 싶었다. 회원이 늘어나니 돈은 생각했던 거보다 많이 벌어서 욕심을 버릴 수도 없었다. 현재 관리지역이 대한민국에서 최고로 밀집도 있는 지역인 걸 아는데 어찌 포기한단 말인가?



매일 친정엄마를 달래고 아이를 달래고 어린이집에는 죄송하다 빌어야 했다. 다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이 불쑥 들었지만 이대로 집에 간다면 다시는 못 나올 거 같았다. 주말마다 시댁에 갔다. 어머니는 일산에 사시고 직장도 근처에서 있어서 우리가 주말마다 어머니 댁에 갔다. 가면 어머니는 우리 아기를 봐주시고 우리는 그때 좀 쉬었다. 평일에 쉬는 건 상상도 못하는데 시댁에 가면 잘 먹고 쉬다 와서 주말만 기다리게 되는 생활을 했다. 어머니는 일하는 며느리가 언제나 자랑스럽다고 하셨다. 당신이 늦게 일하러 나와서 아쉬움이 컸다고 말씀하셨다. 시댁 가는 일이 나에게는 힐링이었다. 일산에서 머리도 하고 목욕도 다녔다.



엄마랑은 일로 만난 사이처럼 퇴근하고 들어가면 집에 가기 바빴다. 웅이가 하루 종일 힘들게 했다는 말만 하니 엄마랑은 빨리 빠이빠이 하고 싶었다. 물론 고맙고 감사하다. 하지만 일하고 들어오는 딸에게 매일 투정을 부리는 엄마를 달랠 여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래서 더더욱 어머니에게 맘을 더 쓰게 되었나 보다. 어머니도 같이 일하는 여자의 맘을 알아주고 당신도 피곤한데 항상 우리를 배려해 주셨으니 철없이 매주 시댁에서 살다 온 것이다.




그러다 일이 터졌다. 엄마가 더는 애를 못 보겠다는 거다. 갑자기 그러면 어쩌냐고 나는 화를 냈고 엄마는 네가 알아서 니새끼 키우라고 가버리셨다. 내가 을인데 갑에게 화를 냈으니 이미 일은 틀어질 대로 틀어졌다. 그전에 한차례 보이스 피싱을 당한 엄마는 부쩍 더 말이 없어졌다. 자식들 보기도 민망하고 사위한테는 더 민망해서 얼굴도 못 볼 지경이라고 했다. 멍청한 사람이나 당하는 것이 보이스 피싱이라고 한 엄마였다. 나름 똑똑하다고 자부했는데 본인에게 실망을 했을까? 말수가 줄어서 가족들이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일이 터진 것이다.



진짜로 엄마는 그다음 날부터 오질 않았다. 파업이다. 노사 파업은 예고라도 있지. 엄마는 통보하고 바로 다음날 실행이었다. 모든 게 꼬였다. 애도 일도 남편과의 사이도. 엄마가 원망스러웠다. 그동안의 고마움보다 갑작스러운 파업이 화가 났다. 이래서 애 봐준 공은 없다고 하나보다. 친정엄마가 뭐 이리 무책임하냐고 별별 소리를 다했다. 그래도 엄마는 콧방귀를 안 뀌었다. 다시는 엄마를 안 볼 거라고 못된 소리며 울며 불며... 지금 생각해도 참 못났다. 그때 엄마는 아팠다. 내 새끼만 생각하느라 아파가는 엄마를 몰라봤던 것이다. 말 없는 엄마는 행동으로 아프다고 소리치고 있었는데 몰랐다.



내리사랑인가 보다. 엄마보다 내 새끼가 더 중했다. 말없는 엄마보다 말 없는 웅이가 걱정이었다. 또래보다 말이 없어서 언어치료실에 상담을 갔다. 선생님은 다행히 양심적이셨다. 그동안 아이가 말할 기회가 없어서 그러니 어린이집이라도 보내라고 하셨다. 우리는 더 상담을 받아야 하는지 물었지만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니 걱정 말라며 돌아가란다. 웅이 상담과 엄마의 파업이 겹쳐서 아이는 졸지에 어린이집을 다니게 되었다. 형이 다니는 어린이집을 같이 다니게 되니 어린이집 원장도 밤에 봐주는 선생님도 양해를 해주셨다.


엄마의 돌연 파업과 아이들의 어린이집 생활로 집은 날로 피곤함이 쌓였다. 우리 부부는 집에 오면 애들 씻기고 먹이고 재우기 바빴다. 집안일도 엉망이었다.



보다 못한 시어머니가 우리랑 같이 사시겠다고 하셨다. 그땐 우린 어머니가 구세주였다. 어머니는 직장 일정까지도 조정하셨다. 사셨던 일산집을 정리하고 나의 구세주는 우리 집에 들어오셨다. 나는 직장맘, 어머니는 직장할매가 되었다.





어쩌다 보니 길어졌습니다.


다음에 이어서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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