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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 좀 아는 언니 Dec 23. 2022

한 해를 마무리하며

올해 가장 잘한 것, 매일 조금씩 읽은 것, 브런치 작가에 도전한 것

인간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그것이 성장이든 퇴보든 무엇이든 고정된 것은 없다.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고 흘러서 내년이면 한국 사회에서 50년의 인생을 산 인간이다. 반백년을 산 이 시점에 어떤 변화를 맞이해야 마땅할 것인가?  질문을 품고 책을 읽기 시작하였다. 


행복, 의미, 사명?? 같은 단어로 설명할 수 있을까? 

인간은 생각하고 결정하고, 행동하는 방식에 따라 다른 인생을 산다. 그런데 그 중요한 시작인 '생각'이라는 것은 자가발전이 쉽지 않다. 따라서 외부의 도움이 필요한데, 책 읽기를 시작하면서 더더욱 책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절실히 느낀다. 강연 등의 간접 체험 및 경험을 통해 깨닫는 것은 물리적 한계가 있다. 더구나 경험 또한 책을 통한 배경지식이 있어야 더욱 풍성하게 자기 것으로의 의미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철학자, 심리학자, 사상가, 시인, 소설가, 음악가, 미술가, 예술가등 수천 년의 지혜가 망라된 책을 가까이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책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의미를 찾지 못하는 삶, 있으나 없으나 다르지 않은 삶, 이에 대한 질문으로 고뇌하고 스스로의 목숨을 끊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책은 인간이 만든 것이고 곧 인생에 관한 공략집의 결정체다. 그러니 방황하지 말고 책을 조금만 읽다 보면 인생에 관한 주제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수많은 책들이 인생의 의미를 이야기하고 있었으며 궁극적으로 자아실현과 공동체 기여로 귀결됨을 볼 수 있다. 내가 먼저 세워져야 공동체도 돌아볼 수 있는 것이고 타인과의 상호작용 없이 인간의 삶은 의미가 반감될 것이다. 


자아실현은 각자에게 다른 모습이다. 이상적인 형태는 다른 기준으로서가 아닌 내가 나를 넘어서는, 내가 만족하는 나의 모습, 스스로 충족한 상태이다. 자아실현을 위해서는 우리는 스스로를 담금질하지 않으면 안 된다. 스스로의 욕망을 넘어서지 않으면 더 높은 차원으로 이동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제 보다 성장하는 나를 통해 자기를 넘어서고 나의 꿈, 더 높은 차원으로 조금씩 다가가는 것이 필요하다. 


자아실현 만이 삶의 의미라고 절대 볼 수 없다. 우리는 공짜로 삶을 부여받았으며 같은 시대를 사는 사람들과 형제요 동지이다. 함께 소풍을 누리고 본향으로 돌아가야 하는 한배를 탄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런 형제들과 연합하지 않는다면 삶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형제를 기쁘게 하는 것이 나에게 돌아온다. 그것이 천국의 법칙이다. 천국에서는 긴 수저로 서로 다른 사람을 먹여주어 모두가 풍성하고 행복한 삶을 살고 지옥에서는 자기만 먹기에 바쁘기 때문에 서로를 미워하며 모두 굶주리게 된다. 모든 철학자, 사상가, 소설가, 시인등 인생의 법칙과 원리를 터치하는 사람들은 결국에 자아실현과 더불어 공동체적 삶을 강조한다. 


오늘도 쓸쓸한 낙엽이 지는 가을 길거리에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간다.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는 많은 사람들이 동시간에 거리에 쏟아져 지나간다. 그 사람들 중 내일 죽는 사람이 있더라도 우리는 알지 못하고 슬퍼하지 않을 것이다. 참으로 서글픈 일이다. 나 또한 그 사람들의 무리의 특별할 게 없는 수많은 사람 중 한명일뿐이다. 내가 내일 죽더라도 세상은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오늘처럼 돌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의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내가 세상에 온 사명은 무엇일까? 왜 이 세상에 왔을까? 나의 이웃의 영역을 확장하여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어떻게 작은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책은 내가 잘하는 것에서 시작하면 된다고 말한다. 


독서를 통해 인간 존재와 시대와 사상을 관통하는 통찰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그러한 통찰은 내 안에서 나를 넘고 재생산되어 타인을 위한 의미로 생성될 수 있을 것이다. 책을 읽으면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고 작가는 글로써 사람들을 돕는다. 읽기를 시작하면서 책은 평생 읽어야 하는 것이고 읽는 사람은 써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풋과 아웃풋이 있어야 하고, 그래야만 인류의 한 사람으로서 역할을 다하고 세상은 지속가능하다는 점을 깨달았다. 전업이 아닐지라도 지성인은 필연적으로 작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글을 쓰기 시작하였다. 


보여주기 위해 겸손할 필요는 없다. 인생은 각자 추구하는 대로 살면 된다. 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바꾼 위대한 작가들도 옆집 애기로 태어났다. 자신감을 가지고 열심히 사고하고 쓸 필요가 있다. 내가 나에게 부끄럽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하늘아래 부끄럽지 않고 독단적이지 않다면 평가는 주관적이어야 한다.  


작가라는 이름, 인생의 현장에서 회피하기 위해 택한 길이 아니길, 치열하게 살아내야 할 것이다.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지적 성장이 필요하다. 폭발하는 성장, 책 읽기로부터 가능하다. 근래 책 읽는 것을 잠시 멈추었더니 그 자리에 물질적 욕망이 자리 잡음을 느꼈다. 질량 보존의 법칙인가? 갈고닦지 않으면 금방 길이 없어지는 민감한 영역이고 노력한 만큼의 성장이 가능한 영역이다. 나의 신체 시계는 거꾸로 가지만  오늘도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지성은 한 발자국 앞으로 나간다. 


정신적 풍요는 자아실현을 통해 맛볼 수 있다. 그렇다면 나를 포함한 현대인이 목매는 물질적 풍요는 어떻게 적용해야 할까? 가난에 처하는 것이 인생에 득이 된다 하며, 스스로 가난과 극적인 환경으로 내모는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는 이들을 예술가라 부른다. 그들은 순수한 사유와 경험을 표현하며 인간을 이해하고자 한다. 모든 사람이 예술가가 될 수는 없기 때문에 배부르고 따습고 잘 먹고 잘살면 된다는 소시민적 태도를 비판하지는 않는다. 


나역시 소시민의 한 사람으로 나에게 있어 풍요는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따뜻하고 소박한 식사와 발 벗을 따뜻한 작은 방 정도가 될 것이다. 큰집과 기름진 음식을 좋아하지만,, 그런 것이 아니어도 자족할 수 있는 절제가 먼저 필요할 것이다. 절제 중 욕심과 비교를 멀리하는 생각의 절제가 가장 중요하다. 생각을 절제 할수 있으면 행동은 따라온다. 버지니아 울프가 말했듯 작가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만의 방, 혼자 사색할 수 있는 공간이면 족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 주변의 사색할 공공의 장소는 많다. 도서관, 카페 등을 활용하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나에게 풍요는 내가 책을 읽고 사색할 수 있는 공간으로 충족이 되는 셈이다. 


올 한 해도 수고 많았다. 내년도 올해와 다르지 않게 읽고 쓸 것이다. 내년에는 나도 모르게 변화된 나를 자주 만날 수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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