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13] 우리는 데이트하러 올드델리로 간다.

by 져니

3주간의 겨울 방학이 끝나고, 새 학기의 시작날이자, Lohri로 인해 남편의 휴일이었다.


겨울의 끝과 봄의 시작을 기념하는 Lohri는 겨울에 가장 긴 밤 이후 날이 길어지기 시작하는 시점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모여 큰 불을 피우고, 그 주위에서 춤을 추거나 노래를 부르며 축하를 한다.

우리 아파트에서도 행사가 있었는데, 애들 개학에 정신이 없어서 행사를 놓쳐 아쉽다.

뜻하지 않게 맞은 남편 회사 휴일이니 좀 더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우리는 구르가온을 벗어나 델리, 올드델리로 향했다.

나들이 일정은 오롯이 내가 짰고, 남편은 큰 불만 없이 따랐으나 연이어 신발과 양말을 벗고 맨발로 다녀야 하자 실소를 터뜨렸다.


첫 방문 장소는 시크교 사원. Gurudwara Sis Ganj Sahib

: Gurudwara Sis Ganj Sahib, Chandni Chowk, New Delhi, Delhi 110006


본래 코넛 플레이스 근처에 있는 구르드 와라 방글라 사힙(Gurdwara Bangla Sahib) 시크교 사원을 좋아한다.

일 년 사이 여러 차례 찾아갔을 정도로 건물도 아름답고 고즈넉하며 이국적인 분위기가 참 좋다.

사원 내에 큰 연못같이 물이 있어 사람들이 옷을 벗고, 목욕도 하고 몸을 담그고 있는 걸 보고 있자면 종교가 사람들한테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 새삼 느낄 수 있다.

외부인인 나에게도 경계의 눈빛을 보내지 않고, 스스럼없이 짜이를 권하거나 간식, 심지어 식사까지 나누는 그네들의 친절이 반갑고 따스하다.

'랑가르'라는 무료 급식으로 사원을 방문하는 누구나 이 음식을 나누어 먹을 수 있다.

이는 시크교의 중요한 가르침인 평등과 자비를 실천하는 방식이라고 한다.


또 다른 방글라 사힙을 기대하고 찾아간 올드 델리의 시크교 사원은 그 결이 좀 달랐다.

"여기 맞아?!"를 중얼거리며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었던 장소.

시크교 사원도 올드델리보다는 뉴델리 쪽이 더 세련되고, 정돈되었나 보다.

다듬어지지 않은 날것의 느낌,

그저 원래 이게 진짜 인도다~싶은 느낌.

보이기보단, 본질에 집중한 느낌이었다.

900%EF%BC%BF1737222747801.jpg?type=w773

시크교 사원이니 신발을 벗어야 하는 건 둘 다 예상한 상황.

이때만 해도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 맨발일 줄만 알았다...

900%EF%BC%BF1737222748100.jpg?type=w773
900%EF%BC%BF1737222748498.jpg?type=w773


신발을 벗어 신발 보관소에 건네주면 이렇게 번호표를 준다.

나중에 사원을 나갈 때, 이 번호표로 신발을 찾을 수 있으니 잃어버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900%EF%BC%BF1737222748810.jpg?type=w773


방글라 사힙은 사진 촬영이 금지였기에, 이 사원에서도 사진 촬영을 안 하고 조용히 지켜보고 있는데 옆에 인도 아저씨가 대놓고 열심히 셔터를 누르신다.

덩달아 조심스레 사진 한 장을 남겼다.


900%EF%BC%BF1737222749170.jpg?type=w773
900%EF%BC%BF1737222749522.jpg?type=w773


사원을 빠져나와 올드 델리 거리를 걸었다.

월요일 이른 아침이라 그런가 사람이 많지 않다.


900%EF%BC%BF1737222749933.jpg?type=w773
900%EF%BC%BF1737222750623.jpg?type=w773


장사에 바쁜 식당 앞...

설거지를 하는 데 왜 양잿물이 냄비 가득인지 모를 일이다.

900%EF%BC%BF1737222751109.jpg?type=w773

길에 사는 사람들

빈곤으로 길 위에 사는 것 밖에 답이 없다면, 그래도 좀 평안하고 깨끗하고 안정된 곳에서 사는 게 낫지 않을까.

수많은 길 중에서 왜 이렇게 시끄럽고, 더럽고, 기댈 곳 없는 삭막한 곳에서 삶을 이어나가는지 모를 일이다.


더 나은 선택지를 고르지 않는 사람들이 안타까웠다.

그러나 남편은 다른 시각으로 보면 사람은 누구나 자기 삶에서 자신의 선택을 할 뿐이고, 다른 사람 눈에는 마냥 어리석은 선택으로 보일지 몰라도 그 삶을 살아가는 당사자는 이 조차 깨닫지 못하고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살아가기도 한다고 이야기했다.

지금 나의 삶도 또 다른 깨달음을 얻은 사람 눈에는 어리석고, 안타까울 수 있다고.

나는 과연 길 가에서 살아가는 그네들과는 다른 선택을 하고, 나의 삶을 지혜롭게 살고 있는가.

인도에 온 뒤, 시간에 멱살이 잡혀 끌려가듯 살아가는 느낌이다.

나의 삶을 나의 생각대로 사는 게 아니라, 시간의 파도에 휩쓸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버둥거리는 지금.

수영하는 방법을 깨닫고 나의 의지로,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주체적으로 나아가고 싶다.

새해가 얼마 지나지 않은 지금.

나에게는 나를 위해 보내는 시간이 얼마나 있는가.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계획과 실천의 괴리 속에서 자괴감에 스스로를 미워하지 말고 실천하며, 착실히 내 삶을 사랑하며 살아가야겠다.

900%EF%BC%BF1737222751623.jpg?type=w773
900%EF%BC%BF1737222752170.jpg?type=w773
900%EF%BC%BF1737222752595.jpg?type=w773


길에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어도 하나 사 먹지 못하는 신세.

집 밖에서는 물 한 잔 마시기 어려운 인도에서 먹을 것을 가려먹지 않으면 나 자신을 잘 돌볼 수가 없다.

지난 일 년간 인도에 적응하느라 그러는 건지 만성적인 장염으로 너무 고생스러웠다.


길거리에서 엿 같은 걸 파는 아저씨한테 20루피에 인도 간식거리를 사서 신난 내게

남편은 그걸 지금 먹을 생각이냐며 놀라워했다.

누가 어떻게 만든 지 모를 것을 올드 델리 한 복판에서 먹고 탈이라도 나면 집에는 어떻게 돌아가냐고...


그래... 위생 관념이 남다른 인도에선 뭐든 조심해야지.

재거리와 땅콩을 볶은 후 시럽으로 만들어 굳혀 먹는 파파르 파리(Pappar Para)를 고이 가방에 넣어 집에 와 한 입 베어 물었는데 한국 엿과 비슷한 식감과 맛이었다.

길거리에서 한참 배가 고팠을 때 먹었다면 정말 맛있게 먹었을 텐데, 남편의 경고 후 집에 와 먹는 그 맛은 그냥 그랬다.

더 이상 나는 올드 델리 한 복판에 있는 게 아니라 편안한 내 집에 있는 거니, 그 분위기나, 맛이 아니었던 가보다.

900%EF%BC%BF1737222752973.jpg?type=w773


쓰레기가 가득한 거리를 청소하는 누군가가 있긴 있다.

청소를 하고 있다는 게 놀라운, 엄청난 인도다.

900%EF%BC%BF1737222753503.jpg?type=w773


길에서 교회는 처음 봐서 신기해서 한 컷.


900%EF%BC%BF1737222754244.jpg?type=w773

한국의 맹추위를 경험한 나에겐 그저 쌀쌀한 정도의 날씨도 인도인들에게는 무척 추운 한겨울이다.

담요로 온몸을 둘둘 말고 다니며 추위를 이겨내는 사람이건만 왜 신발은 슬리퍼인가...

900%EF%BC%BF1737222754632.jpg?type=w773
900%EF%BC%BF1737222755044.jpg?type=w773
900%EF%BC%BF1737222755404.jpg?type=w773


예전엔 흔했을 자전거 릭샤는 올드 델리 특정 구간에서만 볼 수 있다.

900%EF%BC%BF1737222755742.jpg?type=w773


두 번째 목적지는 레드 포트 맞은편에 위치한 자인교 사원 Shri Digambar Jain Atishay Kshetra Lal Mandir이었다.


사원 앞에 각종 종교 관련 꽃 상점이 가득하다.

900%EF%BC%BF1737222756074.jpg?type=w773

Digambar Jain 종파의 교리와 신앙을 실천하는 주요 사원으로 재물과 세속적 욕망을 버린 생활을 중요시하며 세속적인 것들을 떠나 고행의 삶을 추구한다.

Atishay Kshetra는 기적의 장소란 뜻으로 신의 축복과 기적을 경험한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어쩐지 사원 안에서 정성스레 기도를 드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900%EF%BC%BF1737222756328.jpg?type=w773

붉은 건물이 인상적인 자인교 사원.

900%EF%BC%BF1737222756601.jpg?type=w773
900%EF%BC%BF1737222756954.jpg?type=w773
900%EF%BC%BF1737222757270.jpg?type=w773


자인교의 수도자들은 엄격한 금욕 생활을 하며, 옷을 최소화만 입거나 아예 옷을 입지 않기도 한다.

벗은 몸이 금욕 생활의 상징이라고 한다.

자인교 사원 입구에는 벗은 몸의 수도자들 사진으로 도배된 광고판이 있었고, 사원 안에 많은 종교화에서도 수도자들은 벗고 있었다.

900%EF%BC%BF1737222757559.jpg?type=w773
900%EF%BC%BF1737222757940.jpg?type=w773
900%EF%BC%BF1737222758338.jpg?type=w773


얼핏 봤을 때, '사원에서 식사를 하는 사람이 있네' 하며 신기해했는데, 다시 보니 경전을 읽으며 기도하는 사람들이었다.


900%EF%BC%BF1737222758674.jpg?type=w773


쌀을 상 앞에 놓아두며 기도를 한다.

누군가 우리에게도 쌀을 손에 가득 나눠주어 그네들을 따라 쌀을 정성스레 놓아두었다.


900%EF%BC%BF1737222759010.jpg?type=w773
900%EF%BC%BF1737222759379.jpg?type=w773
900%EF%BC%BF1737222759675.jpg?type=w773

힌두 사원을 향하다가 라즈가트(Rajghat)를 마침 지나갔다.

가보고 싶었던 곳이라 충동적으로 차에서 내려 들렀다.


라즈가트는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의 마지막 순간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된 추모비가 있는 곳이다.

간디는 1948년 1월 30일에 뉴델리에서 암살당했다.

라즈가트 자리에서 유해를 화장했으며 추모비에는 간디의 마지막 말을 새긴 "हे राम" (헤 람: 오 신이시여!)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900%EF%BC%BF1737222759961.jpg?type=w773
900%EF%BC%BF1737222760279.jpg?type=w773

작년에 인도 로컬 국제학교를 다닌 첫째는 역사 시간에 간디만 배우고, 간디만 토론한다고 불평을 토로했었다.

그만큼 인도에서 간디가 차지한 비중은 큰 거겠지.

모든 지폐에는 오로지 간디 얼굴만 새겨져 있다.

900%EF%BC%BF1737222760571.jpg?type=w773


선으로 끄적인 간디 이미지가 앙증맞고 귀엽다.


900%EF%BC%BF1737222760864.jpg?type=w773


라즈가트는 고요하고, 평화롭고 한적했다.

엄청난 사람들이 방문하는 의미 있는 장소라건만 월요일 오전이라 사람이 많지 않았다.

900%EF%BC%BF1737222761160.jpg?type=w773

시크교 사원, 자인교 사원에 이어 라즈가트에서도 신발을 벗고 맨발로 걸어야만 했다.

오늘은 <맨발의 날>인가 보다.

라즈가트에서 신발을 벗으며 남편이 피식 웃는다.

900%EF%BC%BF1737222761439.jpg?type=w773

화장터 자리에 까만 대리석으로 추모비가 세워져 있다.


1948년 1월 30일 간디가 기도 모임을 위해 외출하던 중 나투람 고드세가 다가와 세 발의 총을 쐈고, 간디는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나투람 고드세는 간디의 평화주의와 인도-파키스탄 화해 정책에 반대하는 극단적인 힌두 민족주의자였고, 간디가 파키스탄에 대한 양보와 화해를 추구하는 것을 강력히 비판하며 그를 배신자로 여겼다.

평화와 비폭력을 중시하던 그가 총격으로 생을 마감했다니 참 안타까운 일이다.


900%EF%BC%BF1737222761819.jpg?type=w773
900%EF%BC%BF1737222762160.jpg?type=w773


그나마 깨끗하게 정돈되고 운영되는 길거리 노점상,

하지만 단 하나도 시도할 수 없는 우리의 현실.

900%EF%BC%BF1737222762495.jpg?type=w773


힌두 사원까지 방문해서 오늘의 종교 여정을 마무리하고자 했으나, 일부러 찾아간 힌두 사원이 생각 외로 너무 작았고, 더 이상 신발을 벗고 싶지 않았던 우리는 주린 배를 채우러 식당으로 발길을 돌렸다.

900%EF%BC%BF1737222762887.jpg?type=w773


오늘의 식사는 산투스티의 Diggin


아기자기한 공간에서 치킨 햄버거와 치킨 깔조네를 먹었다.

900%EF%BC%BF1737222763523.jpg?type=w773
900%EF%BC%BF1737222763772.jpg?type=w773
900%EF%BC%BF1737222764003.jpg?type=w773
900%EF%BC%BF1737222764312.jpg?type=w773


초록 초록한 산투스티에서 가장 팔자가 좋은 건 이 개인지 모른다.

철망에 기대어 두 다리를 쭉~ 뻗고 햇볕을 즐기며 낮잠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개팔자가 상팔자다.

뱀처럼 똬리를 틀고 자는 개들은 많이 봤는데, 이렇게 세상 편한 자세로 자는 개는 처음일세.

900%EF%BC%BF1737222764630.jpg?type=w773

아이들 하교 시간까지 시간이 남아 근처 네루 파크를 걸었다.

로디 가든은 나름의 스토리가 있고, 인도 전통 건축물이 있어 이국적 느낌이 가득했는데

알록달록 원색적인 페인트로 칠해진 운동기구가 있는 네루파크는 도대체 왜 가는 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인도에서 걸을 만한 장소가 많지 않으니 그나마 정돈된 네루파크에서 산책이라도 하는 걸까.

900%EF%BC%BF1737222764991.jpg?type=w773


네루 파크 안에 오렌지빛 풍선이 가득했던 묘한 분위기에 힌두 사원.


900%EF%BC%BF1737222765306.jpg?type=w773


시크교, 자인교, 힌두교 사원을 둘러보고, 간디의 발자취를 곱씹어보고 너른 공원에서 산책까지 했던 알찬 인도 탐험기였다.


다음엔 월요일이 아닌 날 길을 나서 국립 박물관을 가봐야겠다.


올드 델리 재밌어? 란 질문에

여기가 진짜 인도 같아. 란 답으로 마무리.


종교적 색채가 가득하고

빈부의 격차를 여실히 느낄 수 있으며

엄청난 소음과 냄새, 더러움으로 나의 인내를 시험하는 곳.

살면서 또다시 겪지 못할 극강의 난이도의 삶의 현장.


궁금하다면 올드 델리로 향해보자.


keyword
작가의 이전글다시 인도! 2025년 새해 인도 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