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욕실 문이 부서졌다.
아파트 관리 사무실 보수팀에 고쳐달라고 요청을 하고, 카펜터를 기다려야 해서 그날 학교를 못 갔다.
아저씨는 부품이 없다며 내일 다시 방문하겠다고 가버렸다.
나에게 주어진 하루의 시간
해야 할 일에서 자유로워진 하루.
난 그냥 길을 나섰다.
요즘 뒷머리가 너무 가렵다.
참을 수 없는 가려움에 머리를 긁고, 긁다가 결국 피가 날 정도다.
흰머리가 날 때면 머리가 그렇게 가렵다는 조언
(그래.. 인도 와서 적응하느라 힘든 아이들의 스트레스를 내가 온몸으로 받아주다 보니 그 사이 내 머리의 흰머리가 많이 늘긴 했지)
더워서 뒷머리에 땀이 차서 가렵다는 조언
지루성 피부염일지 모르니 병원을 가보라는 조언
많은 조언들을 뒤로하고, 우선 미용실로 갔다.
남편이 자주 가는 꾸뜹 로컬 미용실 perfection
남성 커트 250루피+샴푸 50루피
발, 다리 마사지 250
자르고 싶은 머리 스타일 사진을 들고 가서, 인도 미용사에게 보여주며 쇼트커트를 요청했다.
성실하게 사진과 비교하며 가위질을 하는 미용사.
휴대폰 화면이 꺼져서, 다급하게 화면을 켜는 내 모습을 보며 미용사 아저씨가 피식 웃는다.
말이 잘 통하지 않아도 몸과 표정에서 보이는 분위기와 느낌만으로도 서로가 긍정적 소통을 하는 건 참 신기한 일이다.
쇠가위 특유의 서걱거림 없이, 아이 장난감 가위 소리가 귓가에 들린다.
그의 성실함에 내 머리는 어느새 긴 머리에서 짧은 쇼트커트가 되어 있다.
아르준(Arjun)
한동안 자주 찾았던 아르준.
애들 옷을 사려고,
장을 보려고,
생일 초대를 받았을 때 생일선물로 보드게임을 사려고,
딸들과 메헨디를 받으려고
찾았던 곳이다.
오랜만에 장을 볼까 싶어서 아르준을 갔다.
혼자 인도 로컬 몰을 가서, 인도인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이런저런 일을 하다 보면
꽤 내가 용감한 사람이 된 것 같다.
칸마켓(Khan Market)
델리 도착하자마자 유명하다는 곳이랑 가족과 함께 휘리릭~ 둘러보고는....
여기 왜 유명해?! 하고 의아해했던 곳...
다시 생각해도 웃긴다.
골목골목을 다 탐험하고 나서도 그 이유를 찾지 못해 답답해하며 집으로 돌아왔는데
이번에 지인을 만나기 위해, 카페를 들어가곤 그 이유를 찾았다.
곳곳에 숨겨진 꽤 괜찮은 레스토랑과 카페...
그곳에 유유자적 앉아 공간과 시간을 느끼기 꽤 괜찮은 곳이라는 것을.
레스토랑과 카페를 좋아하지 않는 남편과 다니는 나들이는
가끔
이렇게 좋은 기회를 놓치곤 한다.
그저 괜찮은 카페에 들어가서 커피 한 잔을 시키곤
이야기를 나누고,
맛있는 걸 나누고,
시간을 나누고,
추억을 나눌 수도 있는 것을.....
칸마켓에서는 발길이 닿는 대로
그저 걷자.
그러다 괜찮은 간판을 발견하면
그냥 들어가서
메뉴판에 보이는 괜찮은 것을
그냥 시키고
그 순간을 즐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