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있는 한 가지 외엔 도저히 시작을 못 하겠다! 날 죽여라!
근황: 할일을 매일 해 버린다. 잠 잘 자고 밥 잘 먹는다. 슬슬 내 삶에 <장기계획>이란 걸 세우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하기 시작했고(살아 계신 엄마 보고 계신가요? 전 달라졌어요!), ADHD란 놈이 무엇이며 어떡해야 이놈과 잘 살 수 있을지 공부 중이다.
ADHD란 놈의 특성은 이 병의 존재를 어렵고 재밌게 느껴지게 하는 동시에… 존재여부 자체를 모호하게 느껴지게도 한다.
요새 즐겨보는 유튜버 @lifeactuator 의 쇼츠 일부를 가져왔다. 이 사람 쇼츠 진짜 웃김.
“ADHD의 증상을 경험해 봤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이따금 증상을 겪지만 ADHD인 이들은 항상 겪는다. 당신이 내 영상 중 일부에 공감한다고 해서 ADHD가 있다는 뜻은 아니며 당신이 일부에 공감하지 못한다고 해서 ADHD가 아닌 것도 아니다.”
그래서 어쩌란 거야? 하나마나한 소리 아냐? 싶다. 하지만 전부 진짜다.
이건 스펙트럼이고(이러면 또 누군가는 “요새는 스펙트럼 아닌 게 없네!“ 할 것 같음), DSM5상 진단 기준은 분명 존재하나 각자가 보이는 양태가 상이하기 때문이다.
ADHD는 공식적으로 발견/인정된 지 오래된 병이 아니며, 그만큼 어떤 부분의 연구는 아직 부족하거나 모호한 면이 있고, 심지어 성인 ADHD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정신과 의사도 여전히 존재한다.
키트로 ADHD 바이러스를 추출해 내서 판단 가능한 것도 아니고, 진단을 내리는 기준 중 하나인 자가문진은 환자의 판단에 의지하는 부분이 크며, 실제로 미국에서는 ADHD가 없는 사람도 나쁜 마음만 먹으면 해당 진단을 받기가 수월하다는 연구 결과가 도출된 바 있다. '도파민'과 '중독'에 과잉 노출된 현대인이 가장 많이 관심을 갖고 이야기하는 병 중 하나기에 수많은 사람이 '나 너무 집중 못 하는데... 나 ADHD인가 봐!'라고 각자의 진심을 담아, 혹은 전혀 진심 없이 이야기하고, 또 한편으론 이미 진단을 받은 사람들이 '나 ADHD 아닌데 잘못 진단받은 거 아냐?'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 골치아픈 것.
주제로 들어가기에 앞서 병명의 뜻을 짚어 보자. 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다. 주의력도 딸리고 행동이 과하단 소리다.
메인 증상을 보자. 현재 ADHD는 세 가지 타입으로 분류된다. 이름에 들어가 있는 ‘주의력장애’와 ‘과잉행동’을 각각 다른 갈래로 본다.
과잉행동/충동을 우세하게 보이는 타입. ADHD라고 했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다. '모터가 달린 것처럼' 쉬지 않고 움직이고, 멈추지 않고 이야기하고, 충동을 참지 못해 다른 사람이 말할 때 불쑥불쑥 끼어들고, 질문을 끝까지 듣지 않고 답한다. 흔히 '남자 ADHD'라고도 이야기된다.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는 성향이 우세히 보이는 타입. 1이 '남자 ADHD'라면 이쪽은 '여자 ADHD'로 통한다. 1이 아동들에게 많이 보이는 모습인 한편 이쪽은 주로 성인에게 나타나는 양상이기도 하다. 물론 그런 경향이 있단 거지, 모든 남자/여자, 아동/성인이 그렇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 타입은 주의를 오래 유지하지 못하고, 정리 및 체계화에 약한 모습을 보인다. 예전에는 2번 타입은 'ADHD'가 아닌, 하이퍼의 H가 빠진 'ADD'라고 불렸다.
1과 2의 증상이 일정 비율 이상 혼재되어 나타나는 타입.
애초부터 1과 2가 완전히 다른 선상의 인과관계로 인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1 타입이 주요 증상이라도 2 타입의 증상을 보일 수 있다. 그 역도 물론 가능하다. 3으로 분리될 정도의 높은 비율이 아니더라도 혼재는 한다.
전문성 없는 사람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이쯤에서 마무리.
이렇게, 병명 자체에 '주의력 부족'이 들어간다. 그런데 황당한 점.늘 주의력이 부족하기만 하다는 게 아니라는 거다. ADHD 커뮤니티에서 많이 언급하는 또 다른 증상이 있다. 과집중이다. 언제는 주의력이 부족하다더니 또 이제는 과잉이랜다. 오늘 글의 진짜 주제다.
약이 내게 준 놀라운 약빨 중 하나는 이거다.
위의 밈처럼 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한 가지에 지나치게 몰두해서 그것만 생각하느라 하루를 다 보내는 행위를 그만뒀다! ADHD라는 이유로 ADHD에 과집중하며 온갖 정보를 알아보는 데 하루를 다 쓰지 않고 관심을 적절한 때 끊어냈다! 그럼으로서 그날 해야 할 다른 일들을 다 마칠 수 있었다!
과집중은 대략 이런 느낌으로 묘사된다:
지 느낌 오는 일 있으면 다른 할일 다 무시한다. 시간의 흐름이고 음식이고 잠이고 뭐고 인간에게 필요한 기본적인 욕구들 무시하면서 폭풍처럼 몰아친 뒤 지쳐서 쓰러진다. 그 시간 동안 본인이 꽂힌 일 외에는 뇌를 살짝 닫아 놓는다.
안타깝게도... 나 역시 전혀 낯설지 않은 이야기다. 누가 내 인생 감시하냐?
뭐 말할 것도 없다. 그게 내 인생 전체를 지배하는 키워드다.
이전 글에서 적었듯 소싯적엔 '활자중독'이었다. 그 중독 혹은 과몰입은 이후 30년에 걸쳐 정말 많은 것들로 가지를 뻗었다. 난 그때그때 관심이 생기는 걸 했다. 진짜 졸라 했다. 그것만 했다. 다시 말하지만 농담이나 과장이 아니다. '그것만' 한다. 그리고 흥미가 떨어지는 순간 그 시기가 끝난다. 그래서 '꾸준히'는 못 한다. 그냥 내 인생 스토리 전체가 그렇다.
자연히 장래희망/전공/직업 등을 계속 바꿨다. 일단 바꾸면 과몰입을 하니 '나름' 괜찮은 성과를 보였고, 일부 긍정적인 측면도 있었고(쉿. 그렇게 믿고 싶다), 그래서 사람들을 속일 수 있었고, 그렇게 나 자신마저 속였고, 안 보이는 데서 쌓이고 쌓인 문제가 졸라 크게 되어 돌아왔다. 한탄하자면 끝도 없어서 일단 여기까지.
(유도는 안 그만두고 하고 있다. 내 인생에서 제일 오래 꾸준히 해 온 행위다.)
슬슬 진단도 받고, 같은 진단명으로 묶이는 다른 사람들도 이런다는 걸 알고 나니 궁금해졌다. 대체 왜 ADHD인들은 <극단적 몰입>과 <극단적으로 질려서 손 놔 버리기>를 반복할까?
과집중이란 말은 다양한 상황에서, 다양한 의미로, 다양한 형태로 쓰인다. 자로 잰 것처럼 딱딱 떨어지게 정의된 용어가 아직 아니란 얘기다. 영어로는 주로 hyperfocus라고 하며, 'hyperfixation', 'in the zone', 'flow' 같은 말도 비슷한 의미를 갖는다. 이 글에서는 지금부터 '과집중'으로 통일해 쓰도록 하겠다.
신경다양인 커뮤니티 내에서 과집중은 때로 자학적으로, 때로는 긍정적으로 이야기되는 흥미로운 아이템이다. 어떤 사람들은 신경다양인의 '초능력'이라고도 이야기한다. 공통적으로 언급되는 건 이런 특징들이다:
극심하고 강렬한 집중 상태.
자신을 둘러싼 외부 환경의 변화 등 외부 자극을 잘 인지하지 못함. 본인의 기본적인 욕구도 무시할 수 있음.
재미있고 흥미로운 일을 할 때 일어남.
관련된 밈을 소개한다.
분명히 ADHD는 집중 못 한댔는데, 왜 과집중이 일어나는가? 우리 친구들은 집중 자체가 불가능한 게 아니라, 스위치를 통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잘 생각해 보자. 한 가지 일에 지나치게 집중(+)한다는 건, 다른 일에 그만큼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다(-)는 뜻이다. (+)와 (-)가 동시에 각각 다른 방향으로 존재하고, 뻗어가는 플러스와 마이너스 둘 다 통제 못 하는 상황이 돼 버린다.
세 그림을 잘 보자. 전부 혼돈이 담겨 있다. 즐겁지만은 않다. 정신나간 것처럼 즐거운 고양 상태다. 힘들기도 하고, 필연적으로 다른 불능 상태와 공존하며, 즐거움의 대가로 찾아올 재앙이 예고되는 상태다.
흔히 <몰입>은 즐겁고 유익한, 추천할 만한 경험으로 이야기된다. 잘 활용만 하면 지식과 경험을 끌어올려 주는 도구라고도 한다. 이건 다르다. 몰입이 아니라 과몰입이다. 도구가 아니라 그냥 특정 상태에 휩쓸려서 처박혀(stuck) 있는 거다. 과유불급이라던 옛날 사람들 말에 틀린 거 하나 없다.
'수행 불능 상태'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 보자. 해당 일 외의 일을 하지 못하는 부분.
성인 ADHD 환자들은 (...) 자신의 의도대로 행동에 옮기는 것을 어려워합니다.
동기의 결여와도 연관되어 있습니다. 동기라는 것이, 어떤 일의 즉각적인 보상이나 결과에 상관없이, 그 일에 몰입할 수 있게 감정을 만들어 내는 능력임을 고려해 볼 때 (...)
ADHD들은 실행 기능에 손상이 있다. 참 생각하면 할수록 갑갑한 노릇이다. 살아가기 위해 그때그때 요구되는 것들을 하려면 '실행'을 해야 하는데, 애초부터 내 자신에게 그 '동기'를 부여할 능력이 대부분의 사람에 비해 부족하게 태어났다는 것이다. '동기'에 대한 부분을 더 읽어 보자.
동기는 (...) 당장 할 이유가 없어도 해야 할 일을 하고 싶다고 느끼게 만드는 능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인 ADHD 환자들은 일을 시작함에 있어 긍정적인 감정(동기)을 유발하지 못할 뿐 아니라(...)
요약하자면 우리 친구들은 뭘 시키면 '할 기분이 안 난다'가 되겠다. 좀 더 상세히는 '내 자신으로 하여금 할 기분이 들게 할 방법을 모른다' 정도일까? (적으면 적을수록 이 순수 폐급같은 소리는 뭐냐 싶죠? 하지만 진짜입니다.)
기쁨, 만족, 보상-이런 것과 밀접하게 관련된 화학물질인 도파민과의 상관관계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ADHD 환자는 뇌 일부가 다르게 작동하기 때문에 기본적인 뇌내 도파민 레벨이 낮다. 때문에 많은 ADHD 약물이 도파민과 노르에피네프린의 레벨을 올리는 식으로 작동한다. 정확히는 그 신경전달 물질이 시냅스 내에서 오래 머물며 강해지게 만들어 준다. 현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도파민에 중독되기 쉬운 환경에 노출돼 있겠으나, ADHD는 거기에 더해 애초부터 머리 안에서 도파민이 제대로 작용 못 하게 태어났다는 것이다.
종합하면 이렇다:
단기적인 보상, 눈앞에 보이는 보상에만 예민하다.
당장 눈앞에 안 보이는 장기적 목표를 위해 노력할 동기를 찾지 못한다.
그 와중 하고 싶은 게 생기면 충동 조절을 못 한다.
이런 부분이 ADHD인들의 과몰입에 있어 마이너스 방향 특성, 즉 해야 할 일에 집중하지 못하는 특성의 요인이 된다. 물론 정도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말도 안 되게 심각해서 당장 치료가 필요한 사람도 있고, 어느 정도 조절이 되거나 '동기 없음'을 다루는 자신만의 방식을 찾아낸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다음 글에서는 (+) 방향의 특성이 어떤 것인지, (+) 라고 표기했지만 긍정적 결과와 더불어 어떤 문제를 유발할 수 있는지, (+)와 (-)를 모두 컨트롤하지 못해 나타나는 '과집중' 양상을 내가 어떻게 컨트롤하기 시작했는지 적어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