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칠이칠 Apr 21. 2019

실패한 여행이 되어버렸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행복했던 나의 첫 해외 여행.

그렇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실패한 여행이었다. 원래 계획했던 것을 못하게 됐으므로.

여행을 계획했을 땐, 찍어온 사진들로 사진집을 만들어 독립출판을 하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런 생각으로 짐 한가득 필름도 가득 채워 떠났고, 그게 부족해 유럽 현지 사진 숍에 들려 필름을 구매하기도 했었다.


부푼 기대를 하며 한 장 한 장 필름 속에 담았고, 한국에 돌아갔을 때 그것들이 어떻게 나올까 상상하며 기분 좋아하기도 했다. 그렇게 처음으로 떠난 해외여행에서 유럽의 도시를 누비며 그곳의 순간들을 카메라에 담았고, 그런 여행을 즐겼다. 원래부터 사진 찍는 걸 좋아했으니, 새로운 걸보고 그걸 담아내는 과정들은 정말이지 행복한 순간들이었다.


그렇게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기대했던 필름들을 받아본 순간 망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유럽에서 촬영한 모든 사진들의 포커스가 다 나가 흐릿했던 것이었다. 단 한 장도 남김없이.

물론 그 사진 들을 찍은 나는 그것만 보고도 그곳이 어딘지, 어떤 느낌이었는지 생생히 기억해낼 수 있지만

이 사진들을 가지고 사진집을 만드는 것은 어렵겠다 싶었다.


그래서 그 사진들은 결국 나름의 만족을 얻고자 인스타그램, 블로그에 올리는 용도로 사용했는데, 꾸준히 이런 사진들을 올리는 것에 궁금증을 갖고 의미와 의도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런 반응들을 보면서 사진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의도의 과정이 어찌 되었건, 결과물만 놓고 보자면 마치 눈이 좋지 않은 사람이 여행을 떠나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도 같다는 느낌이 들었고, 이를 활용해 사진들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보자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그런 생각들이 이어진 끝에 '보이지 않는 여행'이란 이름의 여행기를 시작하게 됐다. (동해님 덕분입니다.)


- 추가 1. 사진을 처음 확인했을 때, 원했던 결과물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이런 사진들로 인해 내 사진들이 그냥 보는 사진이 아니라 생각하게 만드는 사진이 된 것 같아 좋기도 했다. 사진의 장소를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저 그런 사진일 테지만, 그곳을 가보거나 아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기억 혹은 추억 속의 장소를 다시 떠올리게 만드는 사진이 된 것 같았다.

- 추가 2. 모든 사진의 포커스가 나간 이유는 아직까지 오리무중이다. 카메라의 고장인가 싶어 다시 필름을 넣고 찍은 사진들은 모두 정상. 아직 의심 가는 건 필름 현상을 맡겼던 현상소가 잘못된 게 아닌가 하는 것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