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으로 떠나는 박물관 여행. 그 첫 번째 여정은 강화역사박물관인데요, 먼저 건축 조감도를 살펴볼까요.
많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고 즐겨 찾고 있는 강화도는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고 할 정도로 역사와 문화유적이 섬 전체에 펼쳐 있고, 구석기부터 근현대까지 시대별로 주요한 역사의 발자취가 새겨져 있는 곳입니다. 시대별로 간단하게 나열만 해도 모두가 무릎을 탁 칠 정도입니다.
강화역사박물관에는 영상실이 있어서 주제영상이 상영되는데, 영상의 주인공은 ‘부근리 고인돌’과 초지진 돈대에 있는 ‘노송’입니다. 부근리 고인돌은 설명이 필요 없고, 초지진 돈대 노송은 약 600년 된 노송으로서 구한말 일본군을 비롯한 외세가 침입해 올 때 외세가 쏜 포탄을 맞은 흔적을 가지고 있는 노송입니다.
[부근리 고인돌, 초지진 돈대 노송, 영상 시나리오 콘티 이미지]
즉, 영상의 주인공은 3천 년 전 강화에 세워진 고인돌과 600년 된 노송이 대화를 하며 서로 보고 느낀 강화의 역사와 문화유적을 소개하는 영상입니다. 그만큼 강화도는 한반도 역사의 축소판이라고 할 정도록 역사콘텐츠가 수 없이 산재한 땅입니다.
먼저 하점면 장정리에서 발견된 약 1만 년 전 구석기시대 출토유물인 “쌍날찍개"를 보더라도 강화도는 구석기시대부터 살아왔던 오래된 시원의 땅임을 알 수 있겠고, 한민족 정신의 구심점이자 남쪽 유일의 단군 유적지로써 고대인의 천지관을 엿볼 수 있는 마니산 참성단(사적 136)이 있습니다. 전국체전의 채화를 이곳에서 하게 되죠.
그리고 강화하면 모두가 떠올리는 부근리 고인돌이 있습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고인돌로서 전체 높이 2.6m, 덮개돌의 길이 5.6m, 무게 약 50톤으로 추정되는 거대한 탁자식의 고인돌(사적 제137호)입니다.
삼국시대의 각축장이었던 강화도는 신라 절인 보문사, 고구려 절인 전등사 등 삼국의 불교유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고려로 가볼까요. 모두가 알고 있듯이 몽고의 침략기였을 때 강화도는 39년간 고려의 수도로서 대몽항쟁을 전개했고 이때 강화도는 ‘강도’로 호칭되었으며 그에 따른 많은 유적(궁궐, 성곽, 왕릉, 고려대장경과 고려대장경을 판각했던 선원사, 금속활자, 고려문학, 고려청자(청자진사 연화문 표형주자) 등)이 분포해 있습니다. 하나하나가 역사의 증인이라 할 수 있겠죠.
조선 및 근현대를 살펴보면, 조선시대 군사요충지임을 알 수 있는 돈대가 있고 임시수도로서의 역할을 위한 강화 행궁이 건립됩니다. 조선 숙종 때는 강화산성이 축조되고 효종 때 강화 전 지역을 요새 화하려고 5진과 7보, 53 돈대와 8포를 구축합니다. 또한 왕립도서관인 외규장각의 사고가 건립되고 문학적으로는 새로운 사상의 싹인 강화학파가 형성되고, 강화동종도 빼놓을 수 없는 주요 유물입니다. 그리고 격동의 시간에는 강화도에서 많은 사건이 일어납니다. 프랑스 함대의 조선 원정이 있었고 신미양요가 강화도에서 일어났으며(드라마 ‘미스터 선샤인’ 참고) 민족의 아픔인 일제와의 조약(강화도조약)이 강화도 ‘연무당’에서 일어납니다.
이러한 시대별, 테마별로 펼쳐진 강화의 역사와 문화유산 앞에서 어찌 보면 강화의 아름다운 갯벌과 저어새, 순무 등은 속칭 명함마저 내밀기 어려운 콘텐츠라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오늘도 강화에 가서 갯벌의 아름다움과 저어새의 날갯짓에 감탄하고 순무의 맛에 도취되곤 합니다.
위에 언급한 내용은 강화역사박물관에 가시면 관련 유물과 함께 잘 성명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강화도에는 왜 시대별로 주요 역사콘텐츠가 산재해 있을까요? 유독 강화도에만....
그 이유는 바로 강화의 지정학적 위치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근현대 이전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물길, 즉 바닷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지금처럼 기차와 비행기가 없을 때는 국가와 국가가 이동할 수 있는 길 중 주요한 것이 바닷길입니다. 아래 지도를 보시면 이해가 빠를 것 같습니다. 강화는 한반도 최대의 만이자 해양교통의 결절점인 경기만의 중심에 있을 뿐만 아니라 한반도 중부 전체와 이어지는 한강을 비롯하여 임진강, 예성강 등이 을러 들어오고 나가는 주요 길목에 위치해 있습니다.
고려시대 수도 개경으로 들어가는 길목 역시 강화 앞바다이고, 조선시대 한양으로 들어가고 나오는 길목 역시 강화 앞바다를 거쳐 한강으로 이어지는 물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강화라는 지정학적 위치를 한반도에 국한하지 않고 조금 더 국제적으로 확장해보면 그 중요성은 더욱더 잘 나타나게 됩니다. 중국과 한반도 일본을 잇는 물길에 강화도는 그 중심지 적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근대의 격동적인 역사(병인양요, 신미양요, 운양호 사건, 강화도조약 등)의 현장이 하필 강화도가 아니라, 강화도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같은 이유로 인해 강화도에 성공회, 감리교, 천주교 등 기독교 문화가 일찍부터 자리 잡아 내륙으로 전파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강화 앞에 흐르는 물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역사의 과정, 전개가 우연히는 있을 수 없습니다.
[강화 고지도 이미지]
강화도는 물리적 위치에 입지 하여 마치 운명처럼 묵묵히 역사적 사건을 받아들였습니다. 강화도가 원치 않는다고 도도히 흐르는 바다의 물길을 돌려보낼 수는 없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삶의 물길, 인생의 물길은 나의 의지에 따라 막을 수도 있고 돌려 나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선택을 해야 하고, 그 선택에 따라 각기 다른 길로 향하는 물길에 몸을 맡기곤 합니다. 그 선택의 기준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요?
저는 미래의 이익과 유불리보다는 현재의 양심적 판단과 대의명분이 기준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떠하신가요? 삶의 줄기가 확연히 갈라지는 그때.
좋은 결정, 유의미한 결정을 하고 그 물줄기에 올라섰으면 좋겠습니다. 그 물줄기에 올라타서 열심히 노를 저으면 힘들어도 힘들지 않고 외로워도 외롭지 않으며 칠흑같이 어두울 때에도 내 옆에 누군가가 길동무가 되어 주지 않을까요?
강화 앞바다에 흘렀던 거칠고 모진 역사의 물길을 헤치고 이겨내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든 우리의 선조들처럼요.
강화역사박물관은 2층에서부터 관람이 시작돼 내부계단을 타고 1층으로 내려와 관람을 하는 동선이다. 복층 구조인 2층에서 1층 아래를 내려다보게 되는 구조인데, 이때 1층에 연출된 1:1 연출 모형이 눈에 들어온다. 신미양요의 전투 장면을 재현한 전시연출이다,
2층은 선사시대를 주제로 한 내용으로 켜켜이 쌓인 역사의 흔적을 모티브로 한 벽면 인테리어가 눈에 띈다. 1층으로 내려오면 고려시대의 유물을 중심으로 한 쇼케이스가 연출 포인트이고 이후 조선 및 근현대의 다이내믹한 역사를 소개하는 모형연출이 흥미를 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