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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형 Aug 16. 2023

현충사 충무공이순신기념관

왜 천재들은 세상을 일찍 떠나곤 할까?

충남 아산에 가면 이순신 장군을 모시는 사당, 현충사가 있습니다. 또한 충무공을 기념하는 이순신기념관도 건립되어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럼 왜 아산일까요?

이순신 장군은 1545년 서울 건천동에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 대부분을 외가인 아산에서 보냈습니다. 어찌 보면 아산은 이순신 장군의 진정한 고향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곳 아산에서는 이순신 장군이 살았던 집도 있고 죽어서 묻힌 묘소도 있습니다. 어찌 보면 이순신 장군을 기리는 사당과 기념관이 있어야 할 곳을 잘 찾은 듯합니다.


아산 현충사는 충무공이 순국하신 지 108년이 지난 1706년(숙종 23년)에 충무공의 넋을 기리기 위해 사당을 세웠습니다. 이후 숙종임금이 현충사라 사액하였으며 이후 박정희 정부 때(1966년~1974년) 성역화 사업을 해서 지금의 현충사가 조성되고 이후 이순신기념관 건립까지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현재의 이순신 기념관은 내부 전시실 리노베이션이 결정돼서 내년 봄에 새롭게 개관할 예정입니다. 그래서 지금 보시는 전시실 내부는 아마 역사의 기록으로 남게 될 것 같습니다. 내년 이후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은 랜선 여행(관람)이라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럼 기념관 건물을 같이 볼까요.


건물이 참 독특합니다. 주변 지형을 해치지 않겠다는 건축가의 의도가 보입니다. 2011년 건축가 이종호 선생님이 설계해서 완공한 기념관입니다. 기념관 위로 잔디가 있어서 주변 자연경관과의 조화가 잘 이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건축물이 웅장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내부로 들어가면 1층과 지하 1층으로 조성되어 전시규모는 작다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층 전시실은 2개의 전시실이 있습니다.

   1 전시실 : 임진왜란과 조선수군

   2 전시실 : 충무공 이순신

지하층은 기획전시실과 4D영상실이 있습니다.


1 전시실을 살펴볼까요



1 전시실(임진왜란과 조선수군)은 말 그대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기간 동안 조선수군의 전투와 각종 무기 및 조선수군 전술전략에 대한 소개를 하는 공간입니다.


아래 보시는 이미지와 같이 조선과 왜군의 무기 및 전투함선을 실물과 모형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조선수군의 전술전략이 기록된 문서도 보입니다. 그 유명한 학익진을 비롯해서 다양한 전술도가 보입니다.



이렇게 임진왜란 7년간의 조선수군 전투를 통해 이순신 장군이 얼마나 위대한 전략가인지를 보여주는 스토리입니다.


실제 이순신장군은 7년간의 전투에서 단 한 번도 왜군에게 패한 적이 없었습니다.

45전 40승(5 무)의 전적이라고 합니다. 5 무는 아마 왜군이 피해 가서 생긴 일이지 않나 합니다.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기록이라고 하네요.


주요 전투를 보겠습니다.


임진왜란에서는 옥포해전과 한산대첩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옥포해전 : 왜군과 붙은 첫 전투인데, 단 한 명의 아군 사상자도 내지 않은 완벽한 승리가로 합니다. 거제도 옥포, 웅천 합포, 고성 적진포에서 벌인 전투로 전과로는 적군 대선 26척, 중선 9척, 소선 2척, 기타 7척 등 총 44척을 파괴했다고 합니다.


한산대첩 : 그 유명한 학익진 전술로 승리한 전투입니다. 임진왜란 3 대첩의 하나로 꼽히는 전투로 전과로는 적군 대선 36척, 중선 24척, 소선 13척 총 73척을 격파했다고 합니다.


정유재란(강화교섭의 실패로 왜군이 재 침략한 전쟁)에서는 명량해전과 노량해전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명량해전 : 울돌목의 기적으로 불리는 전투로서 13척의 조선함선으로 명량에서 일본 수군 함선 330여 척을 거의 전멸에 가깝게 격퇴했던 전투입니다.


노량해전 : 퇴각하는 왜군을 쫓던 전투로서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라는 유언을 남겼던 조선수군 최후의 대규모 전투이자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해전입니다.


2 전시실도 살펴보겠습니다.

1 전시실이 임진왜란 해전 중심의 스토리라면 2 전시실은 인간 이순신의 생애를 소개하는 공간입니다.

전시실은 쇼케이스를 중심으로 그 안에 다양한 충무공과 관련된 전시물을 전시하면서 충무공의 나고 자람, 무과에 급제하여 국가에 충성을 다하고 생을 마감한 이야기를 시간의 흐름으로 소개합니다.



이 전시공간은 이제 새롭게 기획되고 설계 후 시공하여 내년 봄에 새롭게 재탄생될 것입니다.

무척 기대가 됩니다.

어떠한 새로운 스토리와 전시연출로 만나게 될지.


하지만 이순신 장군의 역사는 변함이 없으니깐, 이순신 장군의 극적인 인생스토리는 지금처럼 변함없이 전달될 것 같습니다.


왜 천재들은 세상을 일찍 떠나곤 할까?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운명과 같았던 마지막 전투, 노량해전.

54세의 나이로 왜군의 총탄에 쓰러져서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필 그 전투는 도망가는 왜군을 토벌하기 위한 전투였습니다. 꼭 하셔야 했을 전투였을까?라는 생각이 아니 들 수 없는 전투입니다. 더군다나 거기서 유명을 달리하셨기에...


13척으로 왜군 330척을 물리친  명량해전에서도 끄떡없으셨는데.


어찌 보면 충무공은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을 본인의 운명처럼 여기고 진두지휘를 하신 건 아닌가 생각됩니다.


임진왜란 말기에 이순신 장군은 모함을 받고 장군 직위를 박탈당하고 고문을 받으시다가 겨우 백의종군이라는 치욕을 받으신 경험도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 그리 사랑하던 모친도 돌아가시고.


아마도 전쟁이 끝나면 본인의 성정상 쉽지 않은 길이 기다리고 있지 않나 라는 생각을 했을 것도 같습니다.


그렇다고 이순신 장군의 죽음이 변질될 순 없겠지만...


그리고 그와 함께 이런 생각도 이내 해보게 됩니다.


왜 천재들은 세상을 일찍 떠나곤 할까?


세계 해전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의 전략가인 이순신 장군도 54세로 돌아가시고, 모두가 아시는 바와 같이 천재작가 이상은 20대에 생을 마감했고,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시인 윤동주 선생님도 서른이 되기 전에 유명을 달리하셨습니다.


어디 이뿐일까요...


천재뿐 아니라 대중들이 많이 사랑했던 분들도 젊은 나이에 사고와 사건, 질병, 본인의 선택으로 너무나 빨리 세상을 떠나신 것 같아 안타까움 그지없습니다.


그만큼 본인을 둘러싼 상황과 여건이 평범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어제는 광복절이었습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비롯하여 자의든 타의든 왜군과 일제에 의해 희생당하시고, 빼앗긴 나라를 찾기 위해 또는 나라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본인의 목숨까지 아끼지 않고 내놓으신 순국선열과 일제에 의해 희생당하신 선조들의 명복을 조용히 빌어봅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대한민국의 존재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비롯하여 일제강점기 하 숱한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독립운동을 펼치신 독립운동가와 민초들에 있지 않나 합니다.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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