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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형 Mar 11. 2022

감귤을 금하다, 금물과원(禁物果園)

제주감귤홍보관

랜선으로 떠나는 전시 이야기 세 번째는 제주도에 자리한 감귤홍보관으로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제주에는 감귤을 테마로 한 전시관이 두 군데 있는데 감귤박물관과 오늘 소개하는 감귤홍보관이 있습니다. 두 군데 모두 서귀포에 있습니다. 차이점이 있다면 감귤박물관은 감귤의 역사를 중심으로 하는 종합박물관 성격으로 서귀포시에서 건립 운영 중이며, 감귤홍보관은 감귤의 재배와 효능 중심으로 홍보하는 전시관으로서 서귀포농업기술센터에서 건립 운영 중에 있습니다.      


전시규모로는 감귤박물관이 더 크지만, 전시관 주변의 환경(감귤농장 등)을 본다면 사귀포농업기술센터 내에 위치한 감귤홍보관이 더 크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더욱이 이곳(서귀포농업기술센터)에서는 ‘제주국제감귤박람회’가 열리기 때문에 박람회 기간 에는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더욱 풍성해지곤 합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 있는데, 오늘 소개하는 감귤홍보관 바로 옆에는 조선시대에 조성된 ‘금물과원(禁物果園)이라는 국영과원이 있습니다. 최근에 복원도 했고요. 이게 주요 포인트가 되겠습니다.     


제가 종종 전시기획으로 전시관 건립 프로젝트에 참여하면 자문위원회를 개최합니다. 제가 전시기획자로 업무를 담당한다고 해서 저의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전시기획안이 나오면 관련 자문위원회를 개최하여 자문을 받고 승인하에 진행합니다. 이때 꼭 논의되는 사항이 있는데, ‘차별화는 무엇인가’ ‘여기서만 볼 수 있는 콘텐츠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곤 합니다.     


그렇습니다. 전국의 수많은 박물관이 기획될 때 피할 수 없는 사항이 있다면 바로 차별화이고, 여기서만 볼 수 있는 콘텐츠 찾기가 될 것입니다.      


이곳 감귤홍보관은 이러한 질문에 이렇게 답을 합니다.


여기에 오신 분은 조선시대의 국영과원인 ‘금물과원’을 직접 보시고 느낄 수 있습니다. 이곳이 바로 그 역사의 현장입니다,라고          



제주민들의 눈물, 감귤     


제주 하면 첫째로 떠올리는 것은 아무래도 감귤일 것입니다. 오죽하면 ‘대학나무’라고 불릴 정도로 제주도민에게 있어 감귤은 효자 작물이긴 하지만 아쉽게도 과거의 감귤은 제주도민에겐 눈물의 과실이요 고통의 열매라 할 수 있습니다.     


과거의 감귤은 지금처럼 그리 호락호락하고 흔하디 흔한 작물이 아니었습니다. 아무나 먹을 수도 없었고, 아무 곳에서나 재배도 할 수 없었습니다.      


고려시대를 시작으로 조선시대 제주는 감귤을 왕실에 진상했는데, 왕실에서도 감귤은 귀하디 귀한 진상 품목이었습니다. 종묘 제사상에 올리는 제수품이었고, 신하에게 내리는 하사품이었으며 나라의 일을 좌지우지할 귀한 외국 사신을 접대했던 과일이자 약재로도 사용을 했습니다. 오죽하면 황감제라고 하여 매년 제주 특산물인 감귤이 진상되면, 성균관의 명륜당에 유생들을 모아놓고 감귤을 나눠준 뒤에 시제를 내려 치르고 관직을 주던 시험도 있을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조정에서도 귀하디 귀하게 대접받던 감귤 물량을 원활하게 충당하기 위하여 조정은 제주목에 23, 정의현에 8, 대정현에 6개소 총 37개소의 국영농장을 설치하여 조정이 관리하는 과원으로 운영했습니다. 백성들의 출입을 금하는 ‘금물과원’인거죠.     


제주감귤홍보관이 위치한 서귀포농업기술센터 일대에는 중종 21년인 1526년에 ‘금물과원’이라는 국가과원이 가장 먼저 설치되어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금물과원에는 당유자, 유자, 진귤, 금감, 청귤, 석금귤, 동정귤, 당금자, 탱자 등 감귤뿐만이 아니라 뽕나무, 동백, 매화, 모과 등을 재배하였으며 방풍수로 대나무를 심어 바람을 막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귀하디 귀한 감귤로 인해 오히려 제주도민들은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는 것입니다. 조정은 미리 감귤 수량을 정해 놓고 이에 미치지 못하면 제주도민들은 갖은 핍박을 받았다고 합니다. 따라서 제주도민들은 감귤을 먹을 수도 없었을뿐더러 작황이 좋지 못하면 온갖 고초에 시달리곤 했다고 합니다. 당연히 과원은 병사들이 주위를 출입금지 구역으로 하고 창을 들고 지키는 금지된 과원이 되었습니다.      



임금님의 진상품이었던 감귤이 제주도민에겐 눈물의 감귤이고 과일의 주황빛 알갱이와 과즙은 제주도민들의 피와 땀방울과 같이 돼버렸습니다. 다행히 지금 우리가 먹는 온주밀감은 1911년 프랑스 선교사(타쿼신부)에 의해 전래되어 자리를 잡고 1970년대 전후부터 ‘대학나무’로 불릴 만큼 높은 소득 작물로 자리하여 조선시대 조상들이 흘린 눈물을 조금이나마 보상하고 있습니다.          



제주도의 눈물은 계속되고 있다, 제주 4.3 사건     


이렇듯 제주를 상징하는 감귤의 고통에서 벗어나려던 그때, 제주에서는 민족의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나고 말았고 현재도 그 눈물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오늘이 3월 11일인데 며칠 후면 4월 3일이 됩니다. 바로 근현대사의 비극, 제주 4.3 사건을 기억하는 날이죠.     

제주 4.3 사건에 대해서는 여기서 자세히 언급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제주 4.3 평화기념관’과 ‘제주 4.3 평화공원’을 검색해보시면 자세한 내용을 아실 수 있겠습니다.     


중요한 건 제주 4.3 사건의 아픔이 74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최근 들어 특별법이 제정되고 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가 설치되어 진상조사가 실시되었지만 가해자와 피해자가 한 하늘 아래 같은 숨을 쉬며 살아가고 있는 작금의 현실이 모두에겐 고통의 숨결과 같다고 생각됩니다. 한마을의 이웃이 누구는 피해자가 되고, 누구는 가해자가 되어버린 거죠.     


그렇습니다. 제주 4.3 사건의 비극은 희생자와 가해자가 같은 민족, 같은 제주도 사람, 같은 마을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선량한 피해자라고 볼 수도 없겠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처형을 당해야만 했던 상황도 아니었을 것입니다. 주민들이 집단으로 살상당하고 마을이 방화되어 초토화되는 상황. 영문도 모르고 죽임을 당했던 사람이 하나라도 있었다면, 이는 비극 중의 최고의 비극일 것입니다. 더군다나 그 가해자가 같은 나라의 같은 국민이고 같은 제주도민이었다면... 충격과 생채기는 더욱더 클 것입니다.     


그래서 제주의 아픔은 고려시대부터 조정에 진상되기 시작한 감귤이라는 특산품으로 시작되어 근현대사의 너무나도 가슴 아픈 사건인 4.3 사건으로 이어져 지금에 이르고 있음이 너무나도 안타깝고 가슴이 아려옵니다. 우리 모두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합니다.     


다행히 제주도는 2005년 노무현 정부에서 ‘세계 평화의 섬’으로 지정되었습니다. 그저 말로만이 아닌 진정한 평화가 제주에 찾아왔으면 좋겠습니다. 4월의 따스한 봄햇살처럼요.       



누구에게나 ‘금물과원’은 있다.     


귀하디 귀한 감귤로 조선시대 제주도민들은 피눈물을 흘리게 되었습니다. 차라리 감귤나무가 없었다면 다른 작물로 자급자족하며 오순도순 살았을 텐데 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이렇듯 우리도 감귤같이 아주 귀하디 귀한 것으로 인해 오히려 고통과 눈물을 흘리고 있지는 않나 생각해봅니다.     


전 그중의 하나가 자식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자식은 너무나 소중한 존재입니다. 그냥 있기만 해도 너무 좋고 그저 생각만 해도 너무나 기분 좋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아무리 무서워도 내 자식이 코로나에 확진됐다고 피하는 부모는 없습니다. 오히려 코로나에 감염될 줄 알면서도 옆에서 챙겨주는 것이 부모입니다.      


그러나 시큼 달큼한 감귤이 제주도민들에게 고통이 됐던 것처럼 어느 순간 자식은 부모에게 있어 ‘금물과원’이 되어버리곤 합니다.     


성장한 아이는 저마다의 울타리를 치고 들어오지 말라고 합니다. 부모의 뼈와 살이 거름이 되어 크고 열매를 맺었지만 이내 부모의 발걸음을 외면합니다. 어쩔 땐 아예 오지 말라고 합니다. 금줄을 치고 담을 쌓아 부모의 발걸음을 차단시키곤 합니다.      


부모는 알면서도 발만 동동 거릴 뿐 자식이라는 과원에 발을 들여놓지 못합니다. 그렇게 정성껏 키운 자식이라는 나무는 ‘금물과원’이 되어 버립니다.     


제겐 지금 12살과 10살이 된 딸과 아들이 있습니다. 이 아이들이 언젠간 제게 ‘금물과원’이 될 것이란 걸 알고 있습니다. 자기의 울타리를 치고 저의 발걸음을 거부할 것입니다. 그래도 좋습니다. 부디 좋은 열매와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튼실한 나무로 커주기를 기도합니다.     


비단 자식뿐이겠습니까?

너무나 소중한 것이 오히려 독이 되는 것은 많을 것입니다. 종교가 그럴 것이고 자기 확신의 철학, 취미활동 등이 오히려 나와 내 가족, 지인에게 고통을 안기는 ‘금물과원’이 될 수도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의 ‘금물과원’은 과연 무엇일까요?     



P.S. 1 감귤홍보전시관의 전시 스토리를 소개합니다.

       주제 : 금물과원 (금지되었던 귀한 감귤을 이제는 당신과 함께 나눕니다)

       테마 1 : 귀하다(고귀한 감귤)

                  과거의 귤의 위상

                  과거 귤 재배의 어려움

                  진상, 조정에 도착하다

                  탐라순력도 속 귀한 감귤

                  감귤의 어제와 오늘

                  감귤재배현황

                  감귤재배환경

                  세계의 감귤 분포

       테마 2 : 흐르다(땀의 감귤)

                  제주 근현대 감귤 60년 사

                  대학나무이야기

                  신 탐라순력도

       테마 3 : 나누다(나눔의 감귤)

                  감귤 품종과 관리법 배우기

                  감귤의 품종분류도

                  감귤의 자람과 재배관리

                  미래 감귤농장-스마트팜

                  계속되는 감귤 연구체험

       로  비 : 디지털 감귤밭 체험

                 맛있는 제주감귤 고르기

                 감귤의 영양성분과 효과

                 알아두면 좋은 감귤 상식

                 나만의 감귤 처방전


P.S' 2 감귤 상식 퀴즈를 풀어볼까요.

   

           감귤은 구워 먹기도 한다? (○ 또는 Ⅹ)

           감귤 꼭지에 하얀 가루가 있는 것은 몸에 안 좋다 (○ 또는 Ⅹ)

           감귤은 당도만 높으면 맛이 있다? (○ 또는 Ⅹ)

           제주감귤은 겨울에만 먹을 수 있다? (○ 또는 Ⅹ)

           품질 좋은 감귤을 생산하기 위해서 열매솎기를 한다? (○ 또는 Ⅹ)

           감귤은 수확하고 난 후 시간이 지나면 더 맛있어진다? (○ 또는 Ⅹ)     

           감귤을 벗기면 알맹이를 감싸는 하얀 속 껍질은 깨끗하게 벗겨 먹어야 한다? (○ 또는 Ⅹ)     

           제주감귤은 비타민 C가 풍부한 산성 식품이다? (○ 또는 Ⅹ)

           타이벡 감귤은 일반 노지(자연) 감귤보다 당도가 높고 맛이 좋다?(○ 또는 Ⅹ)     

           감귤 중에는 껍질에 단맛이 있고 향기가 풍부해 껍질도 먹고 과육도 먹는 금귤이 있다? (○ 또는 Ⅹ)     


정답은 제주감귤홍보관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조금은 멀지만 제주에 가시면 금물과원과 감귤홍보관 그리고 4.3 평화공원과 기념관을 꼭 둘러보세요.


많은 생각이 스치는 좋은 여행이 되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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