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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가벼움을 문자의 무거움으로, 국립세계문자박물관

by 김태형

국제도시 송도의 중심부에는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상설전시실로 내려가는 벽면에는 '문자와 문명의 위대한 여정'이라는 문장이 연출되어 있습니다.


문자와 문명의 여정이라. 문명의 발달에 문자의 기여가 큰 것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됩니다.



그래서 그런지 전시의 첫 시작은 동굴의 벽화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문자가 없던 그 이전에는 그림과 기호가 문자의 역할을 대신한 것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역시 박물관의 프롤로그 메시지는 '인류, 삶의 기억'이라는 주제였습니다. "동굴벽화와 암각화는 인류가 남긴 최초의 기록이다. 선사시대 사람들은 그들의 일상과 생각과 소망 등을 바위나 동굴 벽에 그림으로 그렸다. (중략) 동굴벽화와 암각화는 인류 삶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며, 인류의 예술과 종교 생활의 시작이었다. 인류의 사고력이 발달할수록 그림은 점차 간략해져 추상적인 기호로 변화해 갔고, 이는 문자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지금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서 잠자리에 들기까지 끊임없이 말하고 문자를 주고받고 있습니다.

사회에서는 말로 회의와 보고회 등을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문자를 통해 회의내용과 보고회 내용을 문서로 남깁니다. 공식적인 기록은 말이 아닌 문서로 남게 되는 거죠.


그 문자가 이제 인류에게 생기게 되는 과정을 박물관은 조형물과 영상 그리고 문자로 소개합니다. 아래와 같은 모습으로...



마야문명부터 전 세계의 문자와 문명이 소개됩니다. 위대한 인류문명사의 파트너인 것이죠.


그리고 중간 흰 벽면에 21자의 명문이 새겨진 것을 만나게 됩니다.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그리고 그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한글은 문자를 만든 목적과 원리를 알 수 있는 세계유일의 문자이다.(후략)'

참 가슴 뭉클해집니다.


그 외 세계문자박물관답게 세계의 다양한 문자와 문서가 소개됩니다. 그 유명한 '드레스덴 문서'도 있네요.



이곳은 무척 조용하고 아늑한 박물관입니다. 물론 박물관 자체가 대부분 조용한 곳이지만, 왠지 이곳은 훨씬 더 정적이며 무게감 있는 공간으로 다가서는 느낌을 받습니다.


문자가 주는 묵짐함이 느껴진다랄까..


사실 말은 문자에 비해 생각의 깊이가 옅은 상태에서 나와 대화 상대의 뇌와 가슴에 박히게 합니다. 대신 문자는 쓰고 난 후 지울 수 있다는, 그래서 보내기 전에 한번 더 읽어보면 지웠다가 다시 쓰거나 아예 보내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내가 쓴 문자를 보면 볼수록 생각의 깊이가 훨씬 더 깊어지는 것을 느끼곤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말보다는 문자를, 문자보다는 아예 직인을 날인한 문서를 요구하곤 합니다. 공적인 관계일수록 더욱더.


그런데 우리는 살아가면서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는 문자를, 문서를 주고받기보다는 말의 대화를 주고받으며 삶의 여정을 보내는 것 같습니다. 친구와 , 연인과, 부부와, 자녀들과... 무엇을 먹을지 어디로 여행 갈지 각자 오늘 어떻게 살았는지 말로 소통합니다.


그러다 삐끗하는 경우가 생기죠. 말싸움. 말다툼.

의도하지 않았는데, 내 입에서 나온 말을 주워 담을 수 없는 상황. 그로 인해 다투고 냉랭해지고..

그리고 다시 말로 사과를 하게 됩니다.


말로 싸우고 그 말싸움이 해결되지 않으면 친구와는 의절하게 되고 부부간엔 냉랭함이 이루 말할 수 없는 상황으로 까지 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듭니다. 말보다는 문자를, 편지를 주고받는 건 어떤가. 그런데 그러기에는 또 정이 없는 것 같고.

데이트와 모임에 와서 말을 안 하고 문자를 주고받을 수도 없는 법.


그래서 저의 결론은 이렇게 내려지게 됩니다. 말을 하되 머릿속에 문자로, 문장으로 먼저 쓴 후 말을 하자.

좀 소통이 느려지고 상대가 답답하게 느껴질지 언정.

그러다 보면 머릿속에서는 말을 지울 수 있는 기능이 있으니, 바로바로 뱉는 속사포가 아니라 한 자 한 자 머릿속에 적은 후 말로 보내는...


이 글을 보지는 않겠지만, 오십 평생 살아오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과 대화를 했는데, 혹 저의 경솔한 말로 인해 상처받으신 분들... 용서를 빕니다.


박물관의 엔딩 쪽 공간에 아래와 같은 형태의 전시부스가 있습니다.


내 머릿속 공간 같다... 내 머릿속에 말의 텍스트를 채워 넣을 공간. 용량은 무제한.

머릿속 뇌가 오케이 하면 입을 통해 보내자. 말을.


내 머릿속 흰 여백의 종이 위에 내 말을 새겨 넣고, 딜리트로 지울지 엔터 쳐서 보낼지. 내 머릿속의 희디 흰 서재에 차곡차곡 문자와 문장을 채워 넣으며 살아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문자와 내 삶의 위대한 여정을 위하여.라고 오늘도 나의 작은 기록을 문자로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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