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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형 May 11. 2022

청자에 소주 한잔, 백자에 탁주 한 사발

부안청자박물관

지난주 황금연휴에 서해안 고속도로를 달려 보신 분들은 전북 부안 인근에 새롭게 조성된 휴게소를 보신 분들이 계실 겁니다. 특이하게도 휴게소 건물이 온통 청자 도판으로 덮인 청자 건물인데요. 바로 ‘부안고려청자휴게소’입니다. 이미지는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한번 상상해 보시죠.      


고속도로 휴게소는 각 지역의 대표 콘텐츠를 휴게소 명칭에 사용합니다. ‘입장거봉포도휴게소’ ‘고창고인돌휴게소’ 등이 대표적인 예겠죠. 그렇다면 변산반도를 품은 천혜의 고장 부안에서는 많고 많은 지역 콘텐츠 중에 왜 하필 고려청자를 내세웠을까요?     


고려청자의 고장, 부안 그리고 청자박물관     


모두가 알고 있는 우리나라 대표 문화유산 중 하나인 고려청자는 전남 강진과 전북 부안에서 생산되었습니다. 오늘은 그중 한 곳인 부안청자박물관으로 랜선 박물관 여행을 떠나보도록 하겠습니다.     


전북 부안군 보안면 유천리 798-4번지 일원에 조성된 부안청자박물관은 2011년에 개관했습니다. 박물관 건물은 지상 2층 규모의 건축물로서 청자의 사발(완)을 본 딴 형태로 디자인했고 외부를 청자의 빛깔로 마감하여 마치 거대한 고려청자 사발이 대지 위에 있는 듯한 형태로 완성하였습니다.      


전시 동선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먼저 2층으로 올라가서 ‘청자역사실’, ‘청자명품실’을 관람한 후 1층으로 내려와 ‘청자제작실’, ‘청자체험실’, ‘특수영상실’, ‘기획전시실’을 관람하는 동선 흐름이 되겠습니다. 이 외 부대시설로 별관에서는 청자를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는 ‘청자제작 체험실’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그럼 건축물 형태와 내부 전시실 완성예상도를 살펴볼까요.

                                                                                                                                                         

왜 부안과 강진이 고려청자의 고장이 됐을까?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청자는 굉장히 고급스러운 최첨단 기술 중 하나였습니다. 일반인이 쉽게 만들 수도 없을뿐더러 국가가 놔두지도 않았습니다. 당시 청자를 만드는 곳은 국가가 지정하여 관리하는 ‘관요(예전에 관청에서 필요로 하는 사기 제작을 위한 가마를 지칭)’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고려시대 그 많은 지역 중에 왜 부안과 강진 두 곳에 관요를 지정하여 청자를 만들게 했을까요? 그것은 지정학적 위치와 자기를 만들기 좋은 흙이 있는 지역이 바로 부안과 강진이었기 때문입니다.      


박물관 위치를 볼까요. 부안 유천리 일대입니다. 즉 이곳은 고려 시대의 가마터가 있었던 곳으로써 11세기 말에서 13세기 전반에 걸치는 도자기 조각이 발견되었던 도요지입니다. 연구에 의하면 왕실과 귀족이 사용하는 도자기를 생산한 곳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이 일대에는 약 40여 곳의 가마터 흔적이 발견됐고 사적지로 지정되었는데 명칭은 ‘부안 유천리 요지’입니다. 당시 발굴 책임자는 윤용이 교수님으로서, 부안청자박물관 전시 설계 및 제작설치 작업에 있어 자문을 해주셨습니다.     


부안과 강진의 지정학적 위치의 공통점은 바로 서해 바닷길을 끼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제작된 고려청자를 고려왕조의 수도인 개경으로 옮겨야 하는데 육로가 아닌 해로를 이용해서 배로 운반을 한 것입니다. 따라서 서해 바닷길을 끼고 있는 지정학적 위치가 제일 중요한 것으로 보이고 그다음으로는 자기를 만들 수 있는 좋은 흙이 있느냐일 것인데 아마 부안과 강진의 흙이 자기를 만들기에 최상의 질을 가졌기에 이 두 곳이 고려의 관요로 지정되어 관리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문화재청 블로그 인용

                               

당시 물류의 이동경로는 육로보다는 해로를 이용했고 상대적으로 동해보다는 서해의 뱃길이 중국, 일본과 이어지는 루트다 보니 더욱더 서해 바닷길과 맞닿은 부안에서의  고려청자 제작이 용이했다고 보입니다. 참고로 신안 보물선도 서해뱃길을 이용하다가 좌초되어 수많은 도자기가 바닷 뻘에 묻혀 있다가 최근에 발굴되는 재밌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참고로 중국의 최대 도자기 생산 지역은 경덕진 이란 곳입니다. 길가의 가로수도 도자기로 만들어져 있을 만큼 도시 자체가 도자기 제작소라고 봐도 무관할 정도입니다. 경덕진이 중국의 도자기 중심지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찾아보면 결국은 지리적 관점이 크다 할 수 있겠습니다.      


경덕진 주변은 울창한 수목과 드높은 산들, 수많은 호반에 둘러싸여 강줄기가 뻗어 있는데, 이곳 역시 중국 전 도시로 통하는 해운의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소성(가마에 불을 지펴야 함)에 필요한 소나무가 풍부했고 자토(瓷土)의 채취도 용이하다고 합니다. 특히 이곳에는 고령산이 있습니다. 이 산에서 나는 흙이 도자 원료로는 최고의 질이라고 인정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현재 고령토(高嶺土)라 불리는 흙인데, 우리가 어렸을 때 학교에서 도자기 만들 때 사용한 찰흙 브랜드가 고령토로 기억됩니다. 그 브랜드가 경덕진의 고령산 흙에서 따왔다고 생각되어집니다.      


중국 최고의 도자기 지역 ‘경덕진’이나 고려청자 제작의 핵심지인 ‘부안’, ‘강진’이나 중요한 것은 좋은 흙과 풍부한 땔감이 있어서 도자기를 잘 만들 수 있고 그것을 운반할 수 있는 해로가 있다는 것일 겁니다.          

   

지금 나의 지정학적 위치는 어떤가요?     


문득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최고의 도자기를 만들기 위한 최고의 지정학적 위치가 있듯이 우리가 살아가는 것 역시 이런저런 상황을 고려해서 최고의 지정학적 위치를 찾아서 살아야 하는 게 아닌가.     


사람이 선택할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부모(자식)이고 따라서 태어나는 곳 역시 선택 불가 영역 아닌가 합니다. 지금의 부모님이 좋아서 선택적으로 태어난 사람은 지구 상 어느 누구도 없을 것이고, 반대로 지금의 자식이 좋아서 선택하여 낳은 후 키우는 부모 역시 지구 상 누구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따라서 출생지역 역시 선택의 영역은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아주 특별한 경우 아니면 출생 이후 성장하면서 살아갈 곳은 본인의 의지에 의해 정해질 것 같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지도를 잘 봐야 합니다. 작게는 우리나라 지도, 넓게는 세계지도를 펼쳐 놓고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위치, 과연 지금 내 상황에 맞고 내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지정학적 위치에 내가 포지셔닝(위치)헤 있는지 잘 생각해봐와하지 않나 합니다.     


아주 예전에 중심지 이론이란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 신대륙에 최초로 이주해온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본인이 살기에 가장 좋은 위치에 집을 짓고 살 것입니다. 그리고 그다음에 이주해온 사람은 어디에 정착할까요? 아마도 먼저 자리한 사람의 집 옆에 집을 짓고 정착을 한다고 합니다. 그다음에 온 사람도 역시... 그리고 자연스럽게 집 옆으로 학교, 관공서, 은행, 교회 등의 공공건물이 형성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의 마을이 형성되는데, 그 중심지는 맨 처음 정착한 사람의 집이 된다는 것이죠. 이렇게 마을이 커지면서 중심지가 형성된다면 당연히 중심지를 감싸고 지원하는 배후지도 있겠죠. 요즘으로 치면 위성도시가 될까요?     


그런데 이런 중심도시, 배후도시와 같이 눈에 보이는 지정학적 위치 말고 나만이 누릴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는 그런 중심지에 사는 게 더 좋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언제까지 집값에 울고 웃고 해야 하는지. 언제까지 자가인지 셋방인지 구분하며 살아가야 하는지. 어디에 어느 형태의 주거지인지, 거기다가 어떤 브랜드인지를 서로 묻고 답하며 하하 호호해야 하는 건지.     


이제 우리는 물리적인 지정학적 위치에서 벗어나 훨훨 자유로이 살아가야 하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나부터 그래야겠죠.


청자의 꽃 상감청자     


청자 이야기를 시작했으니 부안 청자 중에서도 으뜸으로 평가받는 "청자상감용도문대매병"에 대한 얘기를 아니할 수가 없겠습니다. 위 청자 이름에 용이 들어갑니다. 용(龍)은 예로부터 신령스러운 영물(靈物)로 일반 서민이나 귀족들이 문양(紋樣)으로 사용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용 문양은 왕실 또는 황실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그런 귀한 문양이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용문양이 새겨져 있는 고려청자가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부안 도요지에서 제작된 '청자상감용도문대매병'인데,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용의 모습이 흡사 원(元) 나라 황실에서 사용하였던 용문양과 매우 흡사하여 주목받고 있습니다. 부리부리하게 뜬 두 눈과 날카로운 이빨, 몸에 선명하게 새겨진 비늘 등 '청자상감용도문대매병'의 용문양은 원나라의 '청화용봉문매병'과 매우 흡사하다고 합니다. 이는 황실 또는 왕족만 사용할 수 있는 용문 청자가 부안도요지에서 제작되어 원나라로 수출되었다고 유추할 수 있겠습니다. 

청자상감용도문대매병

"청자상감용도문대매병"은 상감기법으로 만든 청자입니다. 상감청자는 10세기 후반경에 매우 드물지만 그 실례가 있어 그 발생을 알 수가 있습니다. 10세기 후반 경에는 아주 단순 소박한 문양 이 있고 11세기에는 명문을 상감으로 나타낸 경우가 있을 뿐 그 기법이 아직 거칠고 문양 효과도 두드러지지 못하였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합니다.     


그러나 상감청자는 이때부터 이미 음각ㆍ양각 문양과 병행하여 각 문양 구성원 중에 종속문으로 등장하거나 절지문형식의 단독문으로 조금씩 나타나지만 이미 그 기술이 숙련되고 문양 효과가 두드러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고려청자는 인종 연간에 은은한 비색의 아름다움과 더불어 예리한 기품이 있으면서 부분적으로 유연한 선을 지닌 형태를 갖추기 시작하였으며 곧 그 절정기에 이르렀습니다.


청자의 유약이 더 맑고 투명해지면서 유면에 빙렬이 생기고 기형의 예리함은 내재적인 정신으로 숨겨지고 표면은 은근한 양감이 있는 가운데 부드럽고 유려한 형태로 변모합니다. 이때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청자상감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고 청자유약이 한층 맑고 밝아진 시기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곧 12세기 중엽으로부터 후반기에 들어서면서 고려 도자기는 청자상감 중심으로 급격하게 발전되어 양산되었으며 이러한 청자상감 전성시대는 몽고군의 내침으로 고려의 국토가 그들에게 짓밟히고 고려 정부가 강화도로 들어가서 40년에 걸치는 저항을 시작하는 1220년대 무렵까지 약 80년간에 걸쳤졌다고 합니다.     


청자상감 법은 이 기간 중에 다양화되고 청자 전체가 양산되었으며 특히 그 상감 의장 무늬에 있어서 12세기 전반기에 양인각 문양 등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운학문 등 단독 문양과 모란ㆍ국화 절지 등 절지 문양, 사실적이면서 회화적인 모란 당초문 등이 상감으로 시문 되어 세련되는 등 독자적인 주제와 내용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상감 전성시대의 유조(釉調)는 유질의 경도(硬度)가 높아짐에 따라 서빙렬이 유면 전체에 분포되는 것이 일반화되었으며 이것은 12세기 전반기 순청자 전성시대의 빙렬이 없는 유조와는 대조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청자에 소주 한잔 백자에 탁주 한 사발     


청자의 전성기도 어느덧 고려의 쇠락과 함께 쇠락하여지다가 자연스럽게 백자로 이어지게 됩니다. 고려청자와 조선백자를 놓고 본다면 당연히 화려한 면에서는 고려청자를 따라가긴 힘들 것 같습니다. 그러나 백자의 은은함은 보면 볼수록 그 빠져드는 숨은 매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전 가끔 생각합니다. 화려한 청자에 소주 한잔, 수수한 백자에는 탁주 한 사발이 어떤가. 하지만 전 맥주를 즐겨하기에... 맥주는 투명한 유리잔이 제격이겠죠.     



 P.S. 1 부안청자박물관의 전시 스토리를 소개합니다. (기획 당시 기준. 내용이 많이 2개 실만 소개합니다)

         1)청자역사실 : 한눈에 보는 도자사

                             고려 도자의 편년

                             중국 및 일본의 청자

                             고려청자의 역사

                             부안 청자의 역사 (발생, 전성, 쇠퇴기)

                             청자의 고장 부안 (자연환경, 특징, 도요지)

                             유천리 도요지 (개괄, 현황, 토층)

                             고려도경과 청자

                             고려청자 박사(정보검색기)     


           2)청자제작실 : 천년 전 유천리에선

                               태토의 채취

                               달구지를 몰고...

                              수비와 연토

                              청자제작실

                              가마의 원리와 구조

                              십이동파선

                              청자를 싣고(운반 루트)

                              비안도 앞바다에서 깨어난 고려청자               


 P.S. 2 청자 명칭 짓는 것도 나름 방법이 있다고 합니다.

         1) 재질 : 청자, 백자 등

         2) 장식기법 : 상감, 음각, 양각, 투각 등

         3) 문양 : 연화, 용, 봉황, 운학, 포류수금, 모란 등

         4) 모양 : 매병, 대접, 잔, 주자, 연적, 기와 등     

         위 순서에 의거 청자의 이름이 완성됩니다

         예) 청자인데 음각기법으로 연꽃문양을 새겨 매병을 만들었다면 ‘청자음각연꽃문매병’이 되겠습니다.




부안은 바다도 아름답고 흙도 부드러우며 바람은 더없이 시원한 아주 좋은 곳입니다. 


싱그러운 5월, 아이들과 함께 연인과 함께 지인과 함께 부안으로 콧바람 한번 쐬러 가시는 건 어떤지요. 기회가 되시면 고려청자휴게소와 부안청자박물관을 잠깐이나마 들러보실 것을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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