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워지기 시작하면 어김없이 몸살이 찾아온다. 이번에는 조금 심했다. 한 달간 지속되던 감기기운은 독감으로 정점을 찍었고 이후에 얻은 건 탈모와 혓바늘, 그리고 무기력.
adhd를 가진 성인으로서 무기력은 인생의 동반자라 할 수 있다. 침대에서 일어나 물을 한 잔 마시고 몸을 씻고 옷을 갈아입는 일련의 과정이 마치 매일매일 치르는 시험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겨울에는 특히 심한데 (내게만 해당되는 사항일 수도 있다.) 추워서 이불 밖으로 나가기가 몇 배는 어려워진다. 약을 먹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약을 먹으려면 침대 밖으로 나가 약을 챙기고 물까지 떠야 하니, 그게 참 쉽지 않다.
무기력을 이기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보았다. 매일의 루틴을 정해 스케줄러에 적어두고 해낼 때마다 체크를 했고 잠자리에 들기 두 시간 전부터 휴대폰을 보지 않기도 했고 매일 밤 11시에는 꼭 잠들 수 있도록 노력도 해보았다. 물론 효과는 있었다. 그러나 강력한 스트레스는 이 모든 노력을 허사로 만든다.
최근 소소하게 사기를 당했으며 (정말 소소한 금액이고 일부분 돌려받았다.) 어느 직원과 학부모의 트러블로 중간에서 등이 터졌고 갑작스러운 퇴사처리와 인사영입이 급박하게 이루어져야만 했다. 그 와중에 배려를 당연히 여기는 학부모에게 된통 당했고 아끼던 학생이 학원을 그만두었으며 학원의 매출은 신통치 않다.
무기력과 스트레스는 합이 좋다. 나는 또다시 무기력에 빠져있다. 방은 쓰레기장이 되었고 식사는 마지못해 때우며 집 밖은커녕 방 밖으로도 나가지 않는다. 출근하지 않는 날에는 삼일이고 사일이고 씻지 않았다. 안식처가 되었던 글쓰기도 내내 피했다. 이제는 pms탓도 할 수 없다. 얼마 전 생리는 이미 끝났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이러한 감정기복에 익숙하다. 그치지 않을 것처럼 쏟아지는 눈도 금방 녹아 내리 듯 무기력도 영원하지 않다는 걸 안다. 네 개씩이나 났던 혓바늘은 어느새 한 개가 되었고 탈모로 휑하던 이마는 잔머리로 빼곡해졌다.
인생은 늘 예측불가하다. 힘든 일을 겪고 또 겪으며 비로소 깨달음과 안정을 되찾더라도 인생은 계속되기에 또 다른 힘든 일은 꼭 찾아오고야 만다. 완전한 결말은 죽음에서야 이룰 수 있다. 인생이 계속되는 동안 나는 앞으로도 수없이 많은 나쁜 일과 무기력을 경험하겠지만 늘 그래왔던 것처럼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깨달음이 마법처럼 무기력을 없애주지는 못한다. 다만 이 글은 지금 당장 방청소를 하기 위한 다짐이다. 완벽할 필요는 없다. 일단 침대에서 일어나 쓰레기를 버리고, 널브러진 옷들을 정리할 것이다. 그걸로도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