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 윤 Jan 25. 2023

파안대소가 필요해

데이비드 개릭과 함께 웃다

세익스피어 희곡을 연기한 배우로 18세기를 풍미한 데이비드 개릭. 그는  새뮤얼 존슨의 제자 중 한 명이었다. 세기의 천재로 불리는 그 새뮤얼 존슨(3세때 성공회 기도서를 달달 외우고 옥스퍼드 재학 시절 알렉산더 포퍼의 시 <메시아>를 하룻밤만에 라틴어로 번역했던. 6명의 보조원을 제외하고는 거의 단독으로 8년 만에 표제어 4만 2773개의 최초의 영어 사전을 편찬하기도 했던 그 새뮤얼 존슨)


개릭은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은 아니었던 것 같다. 오히려 선생의 집에서 기숙하던 이 장난꾸러기 제자는 선생과 부인의 정사를 훔쳐보고 흉내내기를 좋아하는 익살꾼이었다. 개릭의 아버지는 개릭이 법조인이 되기를 바랐으나 그의 마음은 언제나 무대에 있었다. 결국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1740년 후반부터 소극장 무대에 서기 시작했다.


그가 연극계의 뉴튼이라는 별칭으로 관객을 몰고 다니기 시작한 것은 셰익스피어의 <리차드 3세>를 연기하면서부터였다. 그의 연기는 그 시대로선 급진적이었다. 당시 연극에서는 관객으로부터 올바른 감정을 끌어낼 수 있도록 계획된 자세와 고양된 발성법을 강조했던 것과 달리 개릭은 미묘한 발성과 사실적인 표현, 자연스러운 반응에 더 신경을 쓰는 진심이 느껴지는 연기를 보여주었다고 한다. 하여튼 18세기 그의 인기는 하늘을 찔러서 하나의 종교로 불릴 정도였다. 그의 장례식에는 50개의 마차가 뒤따르고 온 나라가 추모의 대열에 동참했을 정도였고.


 개릭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갈갈거리며 웃었던 건 어느 무더운 여름날 개릭의  실패한 공연 때문이었다. 비극을 개콘으로 만들어버린 공연이었으니. 그는 그날 리어왕을 연기하고 있었는데 처음 네 막은 무난하게  흘러갔다. 그러나 다섯 번째 막에서 코델리아를 두고 리어가 가장 회한의 울음을 터뜨려야 할 순간 이 명배우의 얼굴이 갑자기 역할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변해 버렸다. 그는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을 참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었던 것. 기미를 알아차린 무대 위의 다른 배우들도 숨죽여 웃기 시작했고, 죽어가던 코델리아마저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알아차리기 위해 실눈을 뜰 정도였다. 곧이어 연기자 모두가 무대에서 뛰어내렸다. 그것은 다름 아닌 푸줏간 주인이 데리고 온, 객석 맨 앞줄에 앉아있던 개 때문이었던 거...


그 개는 마스티(몸집이 크고 털이 짧은 맹견종)인데 주인의 무릎 위에 앉아서 오케스트라 가로대 위에 앞발을 내려놓은 채였다. 극장에 가는 것을 한밤의 기분 좋은 외출로 생각한 푸줏간 주인은 후텁지근한 극장 온도를 생각지 못하고 그가 가진 최고의 옷과 가발을 쓰고 왔다. 사우나에 온 듯 뻘뻘 땀을 흘리다 더는 참지 못해 머리의 열을 식히고 닦으려고 벗은 가발을 개 마스티프의 머리에 들씌워 놓았다. 연극에서 가장 슬프고 감동적인 순간, 코델리아의 몸에서 시선을 돌린 개릭은 법률가 가발을 쓰고 맨 앞줄에 다소곳이 앉아 있는 개의 모습에 그만 평정을 잃고 말았던 것이었다.


나라면 무대에서 아마 웃다가 배꼽이 빠져서 그거 주우려다 다시 자지러졌을지도. 그래서 내가 연극배우가 못 되었는지도. 삶은 순간순간 파안대소가 필요해!

매거진의 이전글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