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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최집사 Aug 09. 2022

폭우, 그 다음날

아침일기 챌린지 08

아침에 눈을 뜨니 믿을 수 없이 고요한 세상이 나를 반긴다. 세상이 멸망할 것 같던 어제는 다 잊었다는 듯이. 그렇게 많은 사상자를 내고도 자기는 마치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태연하게 시원한 바람을 불어내는 자연이 정말이지 신기하면서도, 무서웠다. 


지난 저녁. 원래대로라면 나는 강남 대치동에 있었어야 했다. 뉴스로 대치동이 물에 잠긴 모습을 보면서 이건 '하마터면 집에 못 돌아 올 뻔 했다' 정도가 아니라 '죽을 뻔 했다' 수준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하루 전 취소 된 일정 때문에 오후에는 내내 집에서 글을 썼다. 하루 종일 비가 오고, 컨디션이 좋지 않아 일정이 취소된 게 다행이라고, 그렇게만 생각했던 어제. 우리 동네도 하늘에 구멍난 것 처럼 비가 쏟아졌지만, 강남쪽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는 걸 퇴근 시간 이후에야 알게됐다.


잠깐의 고요함. 곧 다시 폭우가 시작된단다. 창문을 열자마자, 방충망으로 작은 날벌레가 앉는다. 내가 후- 한 번 불면 몸이 찢겨져 나갈 것 같은 아주 작은 벌레. 이 작은 녀석이 간밤의 폭우를 견뎠다니. 놀라웠다.


살아남았니? 나도 살아남았어.


그 작은 벌레와 나 사이의 묘한 동질감이 느껴지는, 이상한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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