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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최집사 Jun 14. 2023

프롤로그 : 펫 로스 증후군

떠난 자리에 남은 것

꽤나 괜찮은 하루였다. 나의 일을 뿌듯하게 해냈고, 사람들을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아주 특별한 이벤트는 없었지만 소소한 행복이 가득했던 하루. 그런 하루를 마치며 불을 끄고 침대에 눕는다. 그리고 다른 세계가 열린다. 나의 손은 아무 것도 없는 허공을 향해 뻗어진다. 쓰담 쓰담. 


왈칵, 눈물이 난다. 그 부드러운 촉감을 더는 느낄 수가 없다. 더 이상 유자는 내 곁에 없다.




2023년 1월 21일 설 연휴의 시작날 새벽, 사랑하는 유자가 우리의 곁을 떠났다. 예정된 이별이었기도 하지만, 예상치 못한 타이밍이기도 했다. 유자는 '비대성 심근증(hcm)'이라는 불치병을 앓고 있었고, 그 병은 나을 수 있는 병이 아니며, 언젠가는 유자가 다른 고양이들보다 먼저 우리 곁을 떠날 거라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2020년 2월, 유자가 병이 있고, 손 쓸 수 없는 말기라는 사실을 인지한 이후 거의 3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유자는 의사 선생님도 믿기 어려워 할 정도로 수많은 위기를 극복해냈고, 도무지 아픈 고양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모습으로 우리 곁에 있어주었다. 병원에서는 유자의 남은 날을 '길어야 6개월'이라고 판단했지만 유자는 이후 보란듯이 3년을 살았다. '이젠 끝인가' 싶을 때 마다 보란듯이 이겨내 온 유자였기에, 또 다시 찾아 온 위기 앞에 우 마음 한 켠으로 희망과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급성 혈전증으로 괴로워하는 유자를 부모님이 황급히 병원으로 데려갔고, 하루 꼬박 입원에도 차도는 없었다. 나는 급하게 서울에서 집으로 내려갔다. 산소호흡기와 각종 링겔에 의존해 쳐져있는 유자의 모습에 가슴이 아팠다. 2주 전쯤 집에 내려갔을 때에는 너무나 건강한 모습으로 내 침대에서 뒹굴었는데. 병원에서는 계속해서 아이가 위독하다는 연락이 왔고, 우리 가족은 고민 끝에 유자를 집으로 데려오기로 했다. 


여기까지인 것 같다. 기적의 고양이 유자의 지구별 소풍은. 사랑하는 가족들 품에서 떠날 수 있게 해주는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유자는 저녁에 퇴원해서 새벽 5시 20분경 집사들 품에서 떠났다. 4살 생일을 앞두고 오늘 내일 했던 유자는 3년 동안 집사들과 예쁜 추억을 만들고, 7살 생일이 오기 전에 고양이 별로 돌아갔다.


유자의 투병 사실을 알게 된 후 머릿속에 수 만 번 유자와의 이별을 그려봤지만, 정작 그 아픔의 크기를 줄이는데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장례식장에서 그렇게 울었는데도 눈물은 멈추지 않고 계속 흘러나왔다. 일주일은 일상생활이 힘들었고, 한 달 동안은 아무 때나 눈물이 쏟아지는 걸 막을 수 없었다. 삼냥이 중에 가장 작은 유자의 빈자리는 너무나도 컸다. 이런 걸 펫로스 증후군이라고 하는구나.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유자를 떠나 보낸 지 어느덧 4개월이 더 지났다. 그 동안 유자와의 추억을 글로 남겨보려고 부단히 애를 썼지만 쉽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야 다시 시도해 본다. 이 이야기는 가족, 반려동물, 내 일부였던 고양이와의 이별담이자, 추억담이 될 것이다. 이별까지도 소중한 유자와의 추억을, 그 안에서 느꼈던 기쁨과 슬픔을 남겨보고자 한다. 








유자와의 추억, 펫로스에 대한 이야기. <떠난 자리에 남은 것>

매주 수요일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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