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에 남은 세 개의 상처
'몸이 다쳐서 부상을 입은 자리'
상처는 다치고 나면 그 자리에 '여기 다친 곳이야'하고 알려주는 흔적이다. 즉, 상처가 생긴다는 건 다칠 때 일어났던 모든 일이 추억처럼 몸에 새겨진다는 의미다. 유자는 생전에 내 몸에 세 개의 상처를 남겼다. 언젠가 상처에 새겨진 유자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흐뭇하게 웃다가 그런 생각을 했다. 나중에 유자가 떠나고 나면 이 상처가 나에게 정말 큰 아픔으로 남겠구나.
첫번째 상처는 우리의 첫만남에 강렬하게 새겨졌다.
라떼와 아기들을 아파트 지하실에서 구조하기로 했을 때, 우리를 잘 따랐던 라떼와 달리 아기들은 우리에게 잡히지 않으려 지하실 여기저기를 질주하고 날아다녔다. 진땀을 빼면서 겨우 아이들을 구조해 라떼와 함께 집으로 데려왔고, 길 생활 밖에 모를 라떼와 아이들이 편하게 집에 적응 할 수 있도록 우리 가족은 물과 밥, 화장실을 준비해주고 가까운 곳으로 1박 여행을 다녀왔다. 그리고 여행을 갔다 돌아왔을 때, 우리는 믿고 싶지 않은 현실과 마주했다.
지하실에서 삐약삐약 아기 고양이 울음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다. 라떼와 아이들을 몽땅 데리고 집으로 갔는데, 여전히 지하실에서는 누군가 목이 터져라 울고 있었다. 그리고 곧, 라떼의 아기들 중 하나가 구조되지 못하고 홀로 지하실에 남아 엄마를 찾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아가들 아빠로 추정되는 고양이 방울이가 지하실로 내려가 밥을 먹고 올라오자, 그 뒤를 따라 작은 아기고양이가 애타게 울며 따라왔다. '아빠, 가지 마요! 무서워요!'하는 것 처럼. 그리곤 우리를 마주하곤 소스라치게 놀라며 다시 지하실로 숨어들었다.
정말이지 울고 싶은 건 우리였다. 그렇게 고생을 해서 구조했는데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니. 한 마리가 더 있었다니! 하지만 지체할 수는 없었다. 인간들이 들이닥쳐 숨었는데, 정신차려보니 엄마는 물론이고 형제 고양이들이 몽땅 사라졌으니, 아가가 밤새 혼자 얼마나 무서웠을까. 얼른 구조해서 엄마 품에 안겨줘야 했다.
또 다시 시작된 피튀기는 구조작전 끝에, 겨우 아가를 잡는데 성공했다. (얼굴만 숨기면 다 숨은 줄 알았던 세상 물정 모르는 아가 덕이었다.) 하지만 아가를 이동장에 넣는 과정에서 나는 왼쪽 엄지 손가락을 물렸다. 물릴때야 정신이 없어서 몰랐는데 나중에 보니 그 작은 송곳니가 손톱을 뚫었다. 제딴엔 목숨의 위협을 느끼니 죽기 살기로 문 것이다. 그렇게 내 엄지 손톱과 맞바꿔서 가족이 된 마지막 아기고양이가 유자였다. 어릴 때 그런 일이 있어서인지 몰라도 유자는 다 커서도 유독 엄마 라떼 껌딱지였다. 그때 손톱 자리에 상처는 흔적도 없어졌지만, 그 때의 모든 건 아직도 생생하다.
두 번째 상처는 유일하게 여전히 흔적이 남아있다. 가족이 된 지 얼마 안 돼 유자를 안고 발톱을 깎아주던 중, 큰 소리에 놀란 유자가 발버둥치다가 내 허벅지를 긁은 것이다. 크고 붉게 세 줄이 그어 진 내 허벅지에서는 곧 피가 철철 흘렀다. 원래도 겁이 많고 예민한 유자 발톱을 깎는데 반바지를 입은 내 잘못이 반이고, 큰 소리를 낸 가족의 잘못이 반이었다. (유자는 죄가 없어요..) 흉터 방지 반창고를 붙였어도, 깊이 생긴 상처는 흉터를 만들어냈다. 너무 귀여운 건, 그 날 밤에 잠을 자려는데 유자가 자기가 가장 좋아하던 바스락 공을 내 침대 앞에 물어다 놓고는 세상 예쁘게 나를 바라본 것이다. 생전 그런 일이 없었기에 나는 그걸 유자 나름의 사과라고 믿기로 했다. 피를 보고도 다시 그 날을 생각하면 웃음만 나니, 나도 환자는 맞다.
마지막 상처는 손바닥에 생겼다. 이 역시 유자 발톱에 긁힌 것이었는데, 유자의 투병 사실을 알게 되고 약을 먹이다가 피를 봤다. 투병 초기, 집사들과 유자 모두를 가장 힘들게 한 건 약 먹이기였다. 유튜브에서는 한 사람이 붙잡고 입을 벌려서도 꼴딱꼴딱 약을 잘만 먹던데. 유튜브와 현실은 다른 법이다. 원래도 집사의 질척거림을 싫어하는 도도한 유자였는데, 하루에 두 번이나 붙잡고 보쌈을 해서 입에 억지로 뭘 집어넣으니 얼마나 싫을까. 눈치도 빠르고 똑똑한 유자는 약 먹을 타이밍을 기가막히게 눈치채고 높은 책장 위로 올라갔다. 초반엔 정말로 나 죽는다고 도망가고, 버티고, 하악질을 하며 집사와 대치했다. 최소 두 명 이상이 퇴로를 막고 붙잡아야했고, 입을 벌리는 것 부터가 일이었다. 집사는 약 먹일 시간이 다가오면 심장이 두근댔고, 내일 아침에 약을 먹일 수 있을까 불안해서 잠도 못 잤다.
그 날도 집사들에게 떠밀려 책장에서 내려온 유자가 캣타워로 도망가고, 캣타워에서 자신을 내리려는 나의 손을 할퀴었다. 할퀴어놓고 본인도 놀랐는지 눈이 동그래져서 곧 엄마에게 붙잡혔고, 나는 오른 손바닥을 크게 긁혀 또다시 흉터 방지 반창고를 붙이는 신세가 됐다. 정도로 따지면 그간에 생겼던 상처에 비해 심하지 않았지만, 오른 손바닥을 다친 자의 삶은 녹록치 않았다.
세 개의 상처는 세 가지의 추억이 되어 내 몸에 새겨졌다. 지금은 두 번째 상처만이 희미하게 내 허벅지에 남아있다. 몇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남아있는 흉을 보며 나는 왜 안도 하고 있을까. 왜 이 흉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기를 바랄까.
유자가 떠난 지금, 예상대로 나는 흉터을 보며 유자와의 추억을 떠올리고 있다. 그러다 이따금씩 슬퍼지기도, 작은 웃음을 짓기도 한다. 이 상처의 흔적마저 완전히 사라지고 나면 무척이나 서운하고 슬프리라고, 흉터를 만지며 생각해본다.
유자와의 추억, 펫로스에 대한 이야기. <떠난 자리에 남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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