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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최집사 Nov 26. 2019

퇴사는 잠시 유예하는 중입니다

예비백수의 사직서

이 곳에서의 2년은 정말 갚지고 의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많이 성장했고, 많이 얻었습니다.
하지만 이런식으로 계속 업무를 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11월 초, 월요일 주간회의를 마치고 대표님께 퇴사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오랜시간 생각해 온 일이고, 고민해 온 일이고, 집에서 수없이 연습했던 말인데. 막상 대표님 앞에서 퇴사를 고민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꺼내는데 목소리가 덜덜 떨렸다.


떨면서 생각했다.

대표님의 반응이 두려운건가?

아니면 퇴사를 하겠다고 말하고 있는 내 자신이 두려운건가.

아마도 후자겠지.


한 달이 가까이 지난 지금, 나는 아직 회사를 박차고 나오지 못하고 계속 출근하고 있다. 7시반에 눈을 뜨고, 30분을 침대 속에서 밍기적거리고, 부랴부랴 씻고 화장을 하며, 배차시간이 거지같은 버스를 놓치지 않으려고 달린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짜증니 나고 버스를 타고 회사로 가는 내내 오늘은 어떻게 이 놈의 직장생활을 버티나 한숨을 푹푹 쉬면서도 나는 여전히 출근중이다.


나름대로의 항변을 하자면, 나는 지금 퇴사를 유예하는 중이다.

대표님께 작은 회사에서 온갖 일을 도맡아 하다보니 처음 입사할 때 내가 하고자했던 일들과 점점 멀어지는 자신을 느꼈고 그에 대한 나의 솔직한 이야기를 전했다. 

그리고 논의를 하는 과정에서 좋든 싫든, 내가 벌려놓은 업무와 한 해 사업의 마무리는 해놓고 퇴사하자는 것이 나의 결론이었고, 한 해 정리를 하며 내년도 계획을 세우고 그 안에서 나의 자리를 다시 찾아보자는게 대표님의 결론이었다. 나의 결론에 따라 퇴사를 유예한 것일 뿐, 대표님의 바람과는 달리 나는 곧 백수가 될 것이다.



그 쥐똥만한 월급이 뭐라고..

퇴사를 고민해 온 건 꽤 오래됐다. 심지어 입사하고 6개월만에 나는 이 곳이 오래 머물 곳이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다. 입사 할 당시만해도 대표님과 홍보기획 팀장님, 그리고 나. 이렇게 3명이서도 회사가 굴러갈까 의심을 가졌는데, 지금은 그나마도 나와 대표님 뿐이다.


내가 머무는 2년간 회사를 거쳐 간 사람은 디자이너와 피디, 그리고 소소한 인턴 및 알바생까지 합치면 4명. 모두 들어오고 1년을 채우지 못하고 카톡 메시지도 받지 않는 지경이 되어 떠났다. 문제가 있는거지. 나도, 내 주변에서도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회사가 가지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는 모두 가진 이 회사는 일이 빡세면 돈을 많이 주거나, 돈을 많이 못주면 시간이라도 주거나. 둘 중 하나도 하지 못 한 채 사람을 갈아넣어 굴러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내가 진작에 이 회사를 때려치우고 나오지 못한 이유는....


뭐 여러가지 있지만 쥐똥만한 월급이 주는 안정감을 뿌리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저시급 정도밖에 안되고 수당도 보너스도 없는, 말 그대로 쥐똥만한 이 월급이나마 꼬박꼬박 내 지갑으로 들어온다는 사실이 대학시절 월급쟁이가 될 생각은 없다고 큰소리 치던 나에게 거지같은 안정감을 심어준다.


일이 밀려오는 성수기에는 "당장 때려치워야지" 싶다가도, 큰 파도가 지나가고 나면 "좀만 더 버텨볼까" 하게 만드는. 그 놈의 안정감이 나는 2년 동안 이 곳에 몸 담게 했다.


지금은 내 양 뺨을 올려쳐가면서 정신을 차리라고. 이제 벗어날 때가 됐다고. 스스로를 일으켜세우는 중이다.

용기를 내사 퇴사의 가능성을 회사에 알렸고, 어째되었든 누가 말리든 나는 3개월 뒤에 퇴사한다.

디데이가 가까워오고 있다. 당초에 세웠던 디데이보다 2개월이 밀렸지만, 더 유예됐지만, 나는 이미 모두 완성해 놓은 사직서를 언제든지 내밀 것이다.



20191126 예비백수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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