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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최집사 Feb 24. 2020

내 고양이가 아프고 나서야 깨달은 것

비대성 심근증 판정을 받은 내 고양이를 통해 배운 것

내 고양이 유자가 비대성 심근증이라는 심장병을 확진받은지 2주가 지났다.

건강한 줄만 알았던 유자가 식음을 전폐하고 구석에 기운없이 앉아만 있던 날, 우리가족은 그저 속이 불편한 줄만 알고 병원을 찾았다. 전날까지만 해도 신나게 사냥놀이를 하고 간식을 달라고 호통을 쳤던 아이이니.


우리 고양이들은 꼬박꼬박 건강검진을 받고 있고 율무, 유자가 4살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 크게 아파서 병원에 간 적이 없기 때문에 예상치도 못한 결과였다. 전문 검사를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는, 심근이 점점 더 두꺼워져 심장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는 끔찍한 병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삼냥이 중 누구보다 사냥놀이를 좋아했던 5개월령의 유자


유자가 병원에 갔을 때는 이미 폐에 물이 가득 차 병이 많이 진행 된 상태였다. 고양이가 아픈 걸 기똥차게 숨기는 동물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어떻게 폐에 물이 찰 때 까지 내색 한 번 없이 사냥놀이를 했는지. 평소에 삼냥이가 다니던 작은 동물병원 의사선생님은 애기가 가망이 없다고 말했다.

탈수 해결을 위한 수액조치와 체온을 올려주는 것말고는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말에 엄마는 울며 유자를 집으로 데려왔고, 나는 퇴근하자마자 고향집으로 내려갔다. 유자는 긴급조치로 기력을 조금 되찾았지만, 여전히 탈수와 호흡곤란으로 괴로워했다. 심장을 전문적으로 봐 줄 수 있는 큰 전문 병원이 필요했다. 인터넷에서 정보를 뒤져 큰 병원으로 아이를 다시 데려갔다.


큰 병원에서는 아이의 상태를 보더니 당장 검사를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며 산소방에서 산소치료와 체온조절, 이뇨제 투약을 진행했다. 폐에 찬 물을 빼는 것이 우선이고, 초음파는 그 다음에 가능하다며 집에서 먹을 약도 지어주었다. 큰 병원에서도 유자의 상태를 확신할 수 없다고 했다. 병원에 장기 입원을 시켜줄 수 있지만, 입원을 하다가도 갑자기 심장마비로 떠날 수도 있다는 것. 우선 이뇨제를 투약하며 흉수와 폐에 가득 찬 물이 빠지기를 바라는 수 밖에 없다고 했다.

그리고 2주가 지난 지금, 우리 유자는 살아있다. 오늘 내일했던 내 고양이는 여전히 살아서 내 곁에 있다.


병원에서 퇴원하고 5일간, 유자는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그저 늘어져 있었다. 이뇨제를 강하게 쓴 탓에 화장실을 자주갔고, 물은 스스로 먹었지만 사료도, 그 좋아하던 간식도 모두 거부했다. 강제급여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급사할 수 있다는 말에 적극적으로 먹이지도 못하고 5일이 지났다. 그리고 기적처럼 컨디션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폐에 찬 물이 모두 빠지자 호흡이 안정됐고, 식욕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먹지 않던 녀석이 스스로 사료를 먹는 모습을 보며 얼마나 울었던지. 이대로 정말 떠나는건가 싶었던 유자는 기특하게도 버텨주었다.


작고 소중한 내 고양이 유자. 자고 있다가 사진 찍으니 게슴츠레 :)


약을 쓰고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흉수와 폐 속 물이 모두 빠졌다. 상태가 호전 된 것에 대해 주치의도 활짝 웃으며 걱정했던 것보다 약이 잘 들었다고 기뻐했다. 다만 기운을 차리고 다시 병원에서 초음파를 제대로 진행해 본 결과, 예후가 좋지는 않다. 급사 할 확율도 높다. 심근 운동이 지나치게 빠르지만, 조절하는 약물이 오히려 생명을 단축시킬 수 있어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실제로 주변에 고양이가 멀쩡히 잘 놀다가 갑자기 쓰러져 심장마비로 고양이별로 떠나버렸는데 알고보니 아이가 유자와 같은 비대성 심근증을 앓고 있던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때까진 우리 유자가 그 병에 걸렸을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지. 고쳐지지 않는 병이고 남은 시간 해 줄 수 있는게 그저 행복하고 편안하게 있다 보내주는 것 뿐이라는 사실이 여전히 가슴이 미어지게 아프지만, 우리 유자가 그래도 집사들에게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을 주기 위해 급박했던 고비를 잘 넘겨 다시 예쁜 모습을 보여줬다는 사실에, 그 사실만으로 너무너무 감사 할 뿐이다.


2주가 지난 지금도 유자는 여전히 스스로 잘 먹지 않는다. 그래도 짜먹는 영양제는 종종 받아먹고, 적은 양이나마 강제급여를 해주어도 거부감이 심각하지 않다. 아주 조금이나마 음식물을 섭취할수록 호랑이 기운이 솟아나약먹이기와 밥먹이기가 힘들다는 아이러니가 있지만... 그래도 뭐라도 잘 먹어줬으면 하는 마음 뿐. 집사들 마구 할퀴어도 되니 잘 먹기만 하자 아가.


기운은 없어도 박스에는 꼭 들어가야해:) 왜냐면 나는 고양이니까! 


상상치도 못했던 내 고양이의 불치병은 나에게 일상의 소중함을 다시 일깨워주었다. 세 고양이가 간식을 서로 먹겠다고 겨루고, 우다다를 하고, 좋아하는 매트에서 구르며 골골송을 부르는, 정말 평범했던 그 일상을 다시 보기 어렵게 되자 얼마나 소중한 시간이었는지 몸소 느끼는 중이다. 


언제나 그대로 일 줄 알았던 평범한 시간들에 이렇게 빨리 균열이 생길줄이야. 여전히 잘 먹지도 않고 기운도 없고, 나을 수 없는 병을 앓으며 언제 훌쩍 고양이 별로 떠날지 모르지만, 이렇게 다시 니 숨소리를 듣고 너의 보송한 냥통수를 만질 수 있게 해줘서 고마워 유자야.

여전히 엄마와 오빠, 집사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예쁜 우리 막내. 너와 남은 시간을 소중히 할게.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오늘에 최선을 다 할게! 사랑해 유자야! 같이 이겨내자 :)







유자가 아프고 아이를 돌보면서 정신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여유가 없어 글쓰는 일을 잠시 내려놓았는데, 소중한 오늘의 이야기들을 다시 글로 옮기고자 합니다. 아픔도, 슬픔도 모두 소중한 나의 오늘이라는 걸 새삼 느끼게 되었어요.  <고양이의 온도>는 다음주말부터 다시 정상연재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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