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에서 컨설턴트로 일 하고 있는 절친한 대학 동기를 오랜만에 만났다.
우리 사이 기준 오랜만이었던거지, 사실 3주도 안 돼서 다시 본 얼굴이었다. 그런데 그 짧은 사이, 너무나 새롭고도 큰 뉴스가 생겼다.
"나 예식장 예약했어."
"뭐? 너 결혼해?"
나도 모르게 큰 리액션이 튀어나왔다.
친구는 7살 차이가 나는 남자친구와 1년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교제를 이어가는 중이었다. 20대 중반의 여자와 30대 중반을 바라보는 남자. 예견 돼 있었던 것 처럼 교제를 시작하면서부터 남자친구는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꺼냈다. 그것이 부담스럽다고, 친구는 종종 한숨조로 이야기했다.
"나는 아직 어린데. 아직 나는 결혼은 생각 안 해."
"그래. 솔직히 우리 나이에 무슨 결혼이야. 너도 이제 막 일 시작했는데."
친구의 말에 나 역시 동의했다. 우리는 아직 어리고, 사회초년생이다. 사회초년생 여자가 경제적으로 안정 된 연상의 남자와 결혼했을 때 너무 쉽게 자신의 사회적 자아를 포기하고 가정 안으로 편입되는 모습을 너무 많이 봐 왔다. 주변 선배들이 그랬고, 일찍 결혼한 동기, 친구들이 그랬다. 이유도 다양했다. 그냥 이제 일 하기 싫어서. 남편이 쉬라고 해서. 시댁에서 애는 누가보냐고 해서.
그래서 나의 친한 친구가 남자친구로부터 결혼을 닦달당하는(?)것이 속상했다. 너의 의견을 정확히 말하라고, 은근 옆에서 잔소리 아닌 잔소리도 많이 했다.
연애관계가 지속되면서, 친구의 사랑은 깊어졌다. 길지 않은 시간동안 롱디도 경험하고, 여행도 함께 하면서 친구의 마음 속에 그 사람에 대한 일말의 '믿음'과 '확신'같은 것들이 생겨났다.
그 변화는 내 눈에 명확히 보였다. 이제 더 이상 그 사람이 '한 번 만나보는 사람'이 아니구나. 그 때마다 농담조로 "너 이러다 금방 가겠다, 가겠어~" 라고 말하면 친구는 절대 아니라며, 자기는 여전히 결혼 생각이 없다며 손을 흔들었다.
최근에는 진짜 결혼 할 수도 있겠구나라고 느껴지긴 했지만, 친구가 나에게 직접적으로 결혼을 결심했다는 사실에 대한 언지를 준 적은 없었다.
그런데 오늘 친구는 나에게 해맑게 '예식장을 예약했다'고 말했다. '결혼할래.'도 아니고, 이미 예식장과 스튜디오를 예약했다는 말을. 갑자기? 이렇게 갑자기?
결정은 갑작스러웠지만 결혼 날짜는 1년 뒤였다. 하긴, 결혼 준비 최소 1년정도 잡고 하니까. 지금 결정해야 내년 3월에 할 수 있겠구나. 그래도 조금 서운했다. 아니 이상했다. 아니, 서운하고 이상하고 복잡하고 알 수 없는 진짜 처음 겪는 감정이었다. 내 친구의 결혼 소식을 갑작스럽게 접한 기분은 뭐라 말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친구와 있는 동안, 최대한 놀라고 당황한 내색을 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저 축하해주고, 축복해주는 것이 해야 할 일이자,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하지만 사실은 걱정스러웠다. 결혼 적령기의 남자를 만나 주변에서 분위기를 몰아가 등떠밀리듯 결혼을 결정한 건 아닐까. 똑똑하고 능력있는 내 친구가 결혼으로 인해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는데 어려움을 겪지는 않을까. 안다, 알아. 똑똑하고 능력있는 너니까 어련히 알아서 현명하게 판단하고 나아가리라는걸. 이 결정도, 내가 보기엔 갑작스러워 보이지만 충분히 생각하고, 고민하고 결정한 일 일 것이라는 걸. 나에게 그 고민의 과정을 이야기해주지 못 한 것도, 백번 이해한다.
그래도 너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기 전, 걱정부터 앞섰던 내 마음을 이해할까.
하여간 절친한 친구가 결혼을 한다는 건, 정말 묘한 감정이 드는 일이다. 결혼 한다는 말을 듣는 순간 수십가지의 생각이 동시에 스쳐갔다. 결혼했다고 나랑 안 놀아주진 않겠지. 니 결혼식날 내가 식장에서 대성통곡을 해 버리는 건 아닐까. 너는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구나. 세상에, 결혼 할 돈이 있단 말이야? 부럽다, 아주 조금은. 아니, 결혼 할 돈이 있다는 거 말고, 어쨌든 너, 행복해보여서.
스물 일곱. 주변 친구 몇몇이 '결혼'이라는 것을 하기 시작한지는 좀 됐지만, 이렇게 친한 친구가 결혼 하는 것은 처음이다. 이상하다. 정말 이상한 기분이야. 앞으로 1년을 더 이 이상한 기분을 느껴야겠지. 1년 뒤 너의 결혼식장에서 나는 어떤 모습일까. 걱정스럽고, 또 궁금하다.
"너는 언제 하게?"
라고 물으면
"글쎄에.."
라고 뒷말을 길게 끌어 대답하는 수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