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싸움이었나!

by 박지영JYP

'여명의 눈동자'라는 드라마가 1991년도에 엄청난 인기를 끌었었다. 탤런트 최재성 씨, 채시라 씨, 박상원 씨 주연이었는데 재미있었지만 집중해서 볼 시간이 없었던지라 구체적인 내용은 당시 잘 몰랐다. 일제강점기 때 이루어지지 못할 남녀의 사연 많은 사랑이야기라고만 생각했었다.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두 연인이 가슴 절절한 마지막 인사를 하는 장면을 정말 인상 깊게 봤던 기억이 있다.


오늘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를 보고 왔다. 165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을 스케일 큰 대형무대에 집중하면서 파란 많았던 한국의 현대사로 인해 평범했던 인간의 삶이 어떻게 비틀리고 꼬이는지를 보며 감동에 빠졌다. 특히 위안부 문제와 731부대의 생체실험, 제주 4.3 사건 등 역사적 아픔 앞에 마음이 숙연해졌다.


본인이 가는 길이 결코 본인이 선택한 길이 아니라는 사실은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가. 전쟁으로 인해, 이념으로 인해. 외부의 압력에 순응해야만 했던 그 시대의 비극에 전율이 한기처럼 몰려왔다. 후반부에 눈물을 찔끔거리고 있으니 딸아이가 자꾸 쳐다보는데 나만 울고 있는 것이 창피해서 괜스레 딸아이를 타박했다.


조선인 학도병과 일본군 위안부로 만나 서로의 아픔을 보듬으며 사랑을 키운 최대치와 윤여옥. 그리고 사이판으로 끌려온 여옥을 도와주며 그녀를 사랑하게 된 장하림. 일제치하의 굴욕과 해방 후의 혼란, 전쟁으로 처참한 삶을 살았던 세 사람의 이야기는 자신의 삶을 자신의 의지대로 살 수 없는 시대가 준 비극 앞에 한없이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 모습은 바로 우리들의 조부모님, 그리고 우리 부모님들의 이야기가 아닌가.


일제강점기인 1943년 겨울부터 한국전쟁 직후 겨울까지 동아시아의 격변기였던 10년의 역사를 노래한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 '를 통해 그분들의 희생으로 오늘의 안락함을 누리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시대가 준 아픔을 극복하고 평온한 오늘을 열어주신 우리 조부모님들과 부모님들께 감사드린다.


"어디서부터가, 날 위한 싸움이었을까?"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 '가사 중 한 구절이다.

자신을 위한 싸움이 어디부터였는지 모르셨을 그분들이 만드신 오늘의 대한민국이 앞으로도 영원토록 세계사에 자랑스럽게 빛날 수 있기를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