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의 다리처럼 무표정하게 함께 가라

by 박지영JYP

유튜브를 이것저것 돌리다가 수년 전 영국 BBC 방송에서 제작한 동물의 왕국 '펭귄'을 보게 되었다. 평소 가장 귀엽게 생각하는 조류였던지라 그들의 생활상을 보는 일은 뜻하지 않던 횡재였다. 사람처럼 서서 두 발로 아장아장 뒤뚱거리는 걸음걸이가 너무 귀여운 데다 좌충우돌 엉뚱하면서도 진지한 모습이 무척 매력적이다. 게다가 평생 같은 상대하고만 짝을 맺고 부부가 함께 열심히 육아에 전념하는 모습이 얼마나 기특하고 신기한지 모르겠다.


펭귄은 종류에 따라 사는 곳이 다양하다. 크기와 생김새도 조금씩 다르다. 내가 가장 좋아하고 흥미 있어하는 펭귄은 황제펭귄과 아델리펭귄이다. 키가 1미터 정도 되고 덩치가 큰 성격이 온순한 황제펭귄에 비해 아델리펭귄은 남극의 일진이다. 몸집은 황제펭귄의 절반도 안 되어 보이는데 과학자들이 깡패펭귄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을 정도로 상식 밖의 행동(?)을 잘한다. 작은 몸집은 재빠르고 호전적이어서 아무 하고나 시비를 걸며 싸우기도 하는 귀여운 악당이다.


남극이 어떤 곳인가?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혹한의 땅이다.

기온이 영하 50도에서 심할 때는 영하 80도까지도 떨어지는 극한의 땅 남극이 그들이 사는 곳이다

혹독한 추위 속에서 시속 140km로 거칠게 휘몰아치는 눈발을 뒤집어쓰고 발발 떨고 있는 황제펭귄을 보고 있자니 생명에 대한 경이로움으로 탄성이 절로 난다.


알을 육아낭에 넣고 부화되는 동안 거의 석 달 이상을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아빠펭귄과 태어난 새끼에게 줄 먹이를 구하기 위해 그 짧은 다리로 100km를 걸어 바다로 나가는 엄마펭귄.

천신만고 끝에 먹이를 배에 가득 채우고 집에 돌아온 엄마펭귄과 아빠펭귄이 똑같이 생긴 무리 속에서 서로를 알아보는 일은 내게는 거의 기적처럼 보였다.


부화한 새끼에게 먹이를 토해서 주는 엄마펭귄. 새끼를 아내에게 주고 교대하여 먹이를 찾아 바다로 나가는 아빠펭귄. 그들의 아가사랑이 인간 못지않은 것에 미소가 나온다. 바다로 나서기 전 자신이 품었던 새끼를 어미에게 선뜻 내어주지 못하고 염려와 애정이 섞인 눈빛으로 망설이는 모습은 펭귄의 부성애와 따뜻한 마음을 엿보게 한다.


그런데 정말 놀랄 일은 바로 이거다. 그들이 그 춥고 배고프고 고달픈 환경을 불평 한 번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견뎌내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말을 못 하니까 당연히 그렇지"가 아니다.


뒤뚱대며 걷다가 넘어지면 바로 일어선다. 폴짝폴짝 뛰다가 얼음길에 미끄러지면 가던 길에서 한참을 떠밀려도 벌떡 일어나 다시 걷는다. 눈보라가 몰아치면 함께 뭉쳐 둥그렇게 원을 만들어 소리 없이 체온을 나눈다. 온몸이 얼어버린 눈으로 하얗게 덮여도 꼼짝 않고 서로를 의지하여 밤을 맞는다.


바다로 나가는 길에 실수로 집단에서 이탈되어 홀로 남아도 묵묵히 갈길을 끝까지 간다. 혼자서도 길을 알고 무리를 찾아내는 것이 신기하다. 바다에서 뭍으로 뛰어오를 때도 실패하면 바로 다시 시도한다. 하얀 포말 속에서 그들은 망설임이 없다.


몰범에게 희생당한 동료가 수연 위에서 패대기침을 당해도 그저 바라보고 있다. 소름 끼치는 장면 앞에서 그들은 체념과 삶의 의지, 책임 어디쯤서 운명과 자신을 타협시키느라 혼돈스럽게 서있다. 한참을 바라보다가 동료의 모습이 수면아래로 깊숙이 가라앉자 돌아서서 다시 가야 할 길을 서둘러 간다.


해야 하는 일을 그냥 한다. 가야 하는 길을 그냥 걷는다. 싪수하면 망설임 없이 바로 다시 시작한다. 그때 그들의 표정은 무표정이다. 숙명 앞에 굴함 없이 당당하게 다시 시작한다.


남극의 황제펭귄과 같은 의연한 행동은 내 사전에 있을 수 없는 이야기다. 그동안 얼마나 불평하고 고민하고 한숨지으며 살아왔는가. 펭귄이 나보다 나아 보인다거나 내가 그들 앞에서 부끄럽다거나 그런 것이 아니다.

앞에 닥쳐있는 혹독한 환경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자연스럽고 강하게 혹은 무심한 듯 맞짱 뜨며 살아가는 그 단순함이 놀라울 뿐이다. 내가 그들이라면 키우던 아가펭귄을 독립시킨 이후 다시는 남극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 같다. 발가락 위에 있던 알이 실수로 떨어지기라도 했을 때 2분 안에 주워 올리지 못하면 바로 얼어버리는 기막힌 긴장을 견뎌내지 못할 것 같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한다. 말하고 생각하며 혹독한 자연을 정복하는 힘이 있다. 그러나 말 못 하고 심오한 생각은 없으나 단순함과 우직함으로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정복하며 살아가는 동물들이 어떤 면에서는 진짜 만물의 영장일 수 있지 않을까?

조금만 기온이 올라가도 조금만 기온이 떨어져도 "더워서 죽겠네" "추워서 죽겠네" 하는 약한 소리는 앞으로 자제하려고 한다.


표정 없는 펭귄의 삶이 앞으로 내 삶의 멘토가 될 것 같다. 나는 앞으로 단순하고 무심하고 우직하게 나의 삶을 받아들이고 걸어가련다.

공지영 작가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아니다.

"펭귄의 다리처럼 무표정하게 함께 가라"

이것이 남극의 황제펭귄으로부터 발견한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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