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나 식당에서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을 두고 자리를 비워도 그대로인 것이 외국인들에게는 놀라워 보인다고 한다. 나는 그런 현상이 우리나라 사람틀이 특별히 법을 잘 지킨다거나 도덕심이 강해서라기보다는 곳곳에 설치되어있는 CCTV의 영향이라고 생각한다.
환경이 의식과 행동을 키워낸 결과이다.
엄마와 딸아이와 함께 오랜만에 사우나에 갔다. 한 시간 내내 주인이 안 보이는 대야와 목욕용품들이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내 자리이니 넘볼 생각은 꿈도 꾸지 말라는 무언의 경고다. 목욕탕 주인은 탕 안에 "자리를 맡아놓고 찜질방에 가지 마세요"라고 큼지막하게 써붙였지만 자리욕심은 그 안내문을 무시하게 만든다.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서 주인 없이 한가하게 빈둥거리고 있는 대야들을 보면 황당하지만 어쩌겠는가. 미리 점찍어둔 자기 자리이니 사용하지 말라는데 당해낼 재간이 없다. 온탕 가장자리에 겨우 비집고 앉아 씻고 나오는 동안에도 대야의 주인은 보이지 않는다.
물질이 풍족해지고 시민의식이 발달하고 국민윤리와 예의도 누구 못지않다. 하지만 CCTV가 없는 곳에서도 이기심이 발동해서 남을 불편하게 하는 일이 없다면 얼마나 좋을 일인가.
아무도 안 보는 곳에서도 우리의 선한 양심이 살아 움직이면 좋겠다.
목욕을 끝내고 나오면서 하얗게 늘어서있는 대야들을 본다. 붐비는 탕 안에서 떡하니 자리 맡아놓고 찜질방에서 쉬고 있는 주인들이 어서 양심을 찾아가기를...
바쁘고 당장 씻어야 하는 사람들을 위해 자리를 양보하기를... 바라본다.
양심은 CCTV가 없는 곳에서 빛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