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무수리

by 박지영JYP

이상하게 어느 날부터 라면이 싫어졌다. 싫다기보다는 먹고 싶은 생각이 없어졌다. 한입 먹으면 맛있기는 한데 일단 먹고 싶은 마음이 안 드니 내손으로 끓여 먹을 일이 없어졌다.


오늘 아침 집 정리를 하다가 먹지 않아 쌓여있는 라면상자를 발견했다. 먹지 않는 라면을 보니 아깝고 처치할 일이 난감해젰다.

"아, 당근에 무료 나눔 하면 되겠다."

생각이 떠오르는 순간 지체 없이 손발이 움직여지는 내 동작은 누가 봐도 무수리과다. 좀 여유 있게 느긋하게 움직이고 싶은데 손발이 생각과 동시에 움직인다. 가끔은 생각보다 손발이 먼저 움직여 실수할 때도 많다.


당근앱에 라면이 있으니 드리겠다고 올렸다. 올림과 동시에 울리는 신청신호들... 딱히 누구를 주어야 할지 몰라 가장 먼저 신청한 분과 채팅을 했다. 그런데 대화도중 언제 올 수 있느냐는 질문에서 답이 없었다. 잠시 기다리다가 재빨리 같은 동네분을 찾아 채팅하고 라면을 그분에게 드리기로 했다.


약속시간을 정하고 폰을 내려놓는데 처음 신청했던 분에게서 답이 왔다. 오는 데 걸리는 시간을 체크하고 내게 줄 뭔가를 준비하느라 답이 조금 늦었다는 것이다. 미안했다.


오후에 브런치에 어느 분이 올리신 글을 읽다가 내 행동이 부끄러워 뜨끔해졌다.

기다림이 사라진 너무 빠른 디지털시대. AI시대에 대한 서술에 나도 끼어있었다.

아니다 싶으면 당장 대상을 갈아치우는 부담 없는 익명보장의 공간. 대화를 하다가 답을 잠시 기다리는 배려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스피디한 처사. 그 공간에서 ''빠름 빠름'에 젖어 잠시의 여유도 매너도 지키지 못했던 일이 떠올랐던 것이다.


너무 빠른 시대를 살아내고 있다. '선착순'이라는 단어가 주는 불안감, 자판이 늦어 답이 늦는 것에 대한 오해, 각자의 사정으로 잠시 머뭇거리는 것을 기다려주지 못하는 조급함... 기기가 주는 편리함 속에서 자신의 편의대로 관계를 맺고 끊는 일이 마치 게임판 속의 전쟁터 같다.


천천히 기다려주는 여유와 친절이 내게 필요하다. 기계의 편리함 속에서 인간다움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방법이다. 생각과 동시에 움직이는 손발을 잠시 묶어놓아야 할까? 잘됐다. 이번일을 계기로 무수리에서 중전마마로 변신하는 연습을 해봐야겠다. 최소한 우아한 무수리라도 되어보련다.


차분하고 여유있게 상대방을 배려하는 기다림!

로봇화 되어가는 미래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인간다움이 아닐까 싶다.



작가의 이전글비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