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행운아다

by 박지영JYP

낮에 엄마에게서 톡이 왔다. 이사오기 전 윗집에 사시던 아주머니의 연락을 방금 받으셨는데, 암으로 호스피스 병동에서 투병 중이시던 아주머니의 남편분이 결국 세상을 떠나셨다는 것이다. 우리 집 궂은 일이나 고장 난 것들을 기꺼이 봐주시던 참으로 친절한 분이셨다.


작년부터 이상하게도 엄마 주변분들의 부고가 유독 잦았다. 엄마의 지인분만이 아니라 티브이를 주름잡던 대스타들의 사망소식이 연이어 전해지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엄마의 우울이 깊어지시는 것 같다. 지인들의 죽음에 따른 상실감도 그렇거니와 당신의 세월도 얼마 남지 않았으리라는 생각에 지나온 날들이 허망하고 다가올 미래가 쓸쓸하신 것이리라.


백세시대라고는 하지만 실제 백세를 사시는 분은 그리 많지 않다. 팔십 세 정도 되면 그 이후의 삶은 진심으로 감사하며 살아야 할 '덤의 세월'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니 몇 해 전 팔순을 넘기신 엄마의 우울은 어쩌면 남겨진 생의 당연한 그림자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마지막을 위한 준비란 어떤 것일까?

쓰지 않는 물건들을 나누어주거나 버려서 손이 가지 않게 치워두는 것? 알 수 없는 내일을 위해 늘 단정한 차림으로 지내는 것? 자식들이 재산싸움 하지 않도록 상속문제를 깔끔하게 정리하는 것? 주변의 엉켰던 관계를 원만하게 매듭짓는 것?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나조차도 마음이 무거워진다.


나라면 어떤 준비를 할까? 나누어줄 것도 버릴 것도 없으니 정리할 수고는 미리 던 셈이다. 복잡한 재산도 없으니 상속문제로 머리 아플 일도 없다. 옷은 늘 단정하고 깨끗하게 입으려고 노력하니 그도 문제는 안 된다.


단절됐던 관계 회복? 이것이 문제다. 그런데 과연 이미 엉킨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무조건 좋은 것인가? 옳은 것인가? 내 생각에는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성경에는 원수도 사랑하라 했고, 형제와 화목하라 했지만 혹여 그렇지 못했다 하더라도 자책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시절인연에 가고 오는 마음의 흐름을 인위적으로 막거나 되돌릴 수는 없는 일이다. 불화했던 인연이 있다면 그가 어디서든 평안하기를 기도해 주면 그만이다.


그러고 보니 난 특별히 준비할 게 없다. 준비할 게 없으니 마음이 한가하다. 내일도 오늘 그랬던 것처럼 재미있게 여유 있게 마음 넉넉하게 살면 된다.

비울 게 없으니 나중에 비워야 하는 수고가 필요 없다.

그러고 보니 나는 참으로 행운아다. 감사한 밤이다.


돌아가신 이웃집 아저씨의 명복을 빈다.

내일은 엄마와 따뜻한 차 한잔 하며 엄마의 우울을 덜어드릴 '몸개그'라도 보여드려야 할까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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