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 이영광
안경을 잊어버리고 출근하였다
집으로 돌아갈까, 잠시 망설였지만
간밤 취해서 부딪혔던 골목 귀퉁이가
각(角)을 잃고 편안히 졸고 있는 걸보고 발길을 돌렸다
길이 뿌옇게 흐렸으므로 무단횡단도 하지 않았다
나의 약시가 담 모서리의 적의를 용서한 덕분일까
새 학기 들어 처음 흡족하게 강의를 마쳤다
미운 놈 고운 놈 제각각이던
학생들도 모두 둥글둥글 예뻐 보이고
오늘따라 귀를 쫑긋 세우고 열중하는 것 같았다
담배를 피워 물고 창 밖을 내다보니
황사 며칠, 서울도 그럭저럭 봐줄 만하다
흐릿해진 풍경 어딘가에 봄 내음이 스며
조용조용 연둣빛으로 옮겨내는 중이다
나는 세상을 너무 자세히 보려 했던 모양이다
살아 있는 것은 모두 어딘 가로 번져가는 중이기에
수묵 같은 흔적을 남기는 것이기에
안경 도수가 높아갈수록 모든 것은 자취를 감추고
나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던 것이다
어두웠던 눈에 봄이 처음
연둣빛 투명한 안경을 씌워준 날, 봄날
ㅡ 이 시를 읽고 나니, 누군가의 단점을 찾기보다 조금은 '둥글게' 세상을 바라보고 싶어진다. 선명하고 확실하고 정확한 것들이 찬사를 받는 동안, 뿌얘서 확실하지 않아서 정확하지 못해서 질타받았던 어떤 것들의 서러움을 토닥여 주고 싶다. 그 속에서 울고 있던 어린아이 하나를 안아주고도 싶어진다.
새로 맞춘 안경을 끼고 걸었을 때 땅이 솟다가 돌다가 꺼져 보여 어지러웠는데 안경에 적응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일이 오히려 더 어지러웠던 세월을 떠올린다.
송곳을 버리자.
저울을 치우자.
안경을 벗어보자.
날카롭고 선명해서 느끼지 못했던 진심과 진실이 수묵으로 그린 구름처럼 뭉클하게 가슴에 닿아올 것 같다. 안경을 벗으면 미처 보지 못했던 봄날의 연둣빛이 따뜻한 아지랑이처럼 스멀스멀 차가운 내 가슴을 적셔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