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절규 / 박지영
몽롱한 조명아래 새하얀 목장, 계약서엔 새를 품은 초록이라고 했지요
음역 높은 지저귐 가짜인 걸 알지만 키위새를 흉내 내는 피콜로가 어색해요
브로콜리, 파슬는 싱싱한 연두
조화(弔花) 이파리처럼 다소곳이 앉아있네요
포도나무 체액은 이름표가 소중하죠
출신, 나이, 혈액검사 결과까지 폭로되거든요
손가락이 체액의 아랫도리를 더듬어요
불룩한 배가 자줏빛 탄성으로 출렁일 때
시계방향으로 세 번 돌려주는 예(禮)
내게도 백년 쯤 살아온 이름표가 생긴 것 같은
조금은 위로받는 기분
바다를 건너온 경험으로
짙푸른 파도에 흔들린 살점들이 화가 난 걸 알아요
고향서 맞은 최후의 경직이 풀리기도 전에
한파를 맞고 폭염을 맞고
밀폐된 감옥에서도 웃어야 했거든요
국적 다른 이방인 저울에 무시로 기우뚱 대먼서도 웃엇지요
계약을 이행해야 할 시간
핏물이 흥건한 살점 위에 갈색 팥죽물이 흘러요
그럴 때 생각합니다
고향 북섬의 초원서 풀꽃을 뜯던 최후의 만찬을요
비가 곤죽처럼 흐를 때
이미 많은 것이 결정되었다는 것을요
떠나온 고향마을에서 어미 찾는 울음이 들려요
다른 배가 출항했다는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아기 달맞이꽃을 떠올립니다
평온한 종점이 예약된 이들은 많이 즐거울까요
살과 뼈로 태어나는 둥근 우주에서
씹히는 세계. 음미되는 기쁨이 온전한 나의 것이기를
다음 생에는
입속의 꽃이 되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