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사는 일에 어지간히 진력이 난 것 같다. 그러나 이 짓이라도 안 하면 이 지루한 일상을 어찌 견디랴. 웃을 일이 없어서 내가 나를 웃기려고 쓴 것들이 대부분이다.
ㅡ 친절한 복희 씨(박완서) '작가의 말' 중에서
박완서 씨의 단편소설집 '친절한 복희 씨'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60 언저리의 인물들이다. 좀 더 나이 든 주인공도 있고 젊다고 해봐야 40대 말 정도다. 과연 노년문학의 대가라고 해도 될 듯하다. 그녀 소설 속 주인공들은 평범하면서도 각자에게는 특별한 우리네 살아가는 일상을 보여준다. 게다가 주인공들은 경제적으로 꽤 안정적인 모습들이다. 소설의 결말이 대체적으로 크게 비극적이지 않은 것이 내게는 참으로 다행스럽다. 클라이맥스에서 감당하기 힘든 결말이 예상되었다가도 마지막에서 힘을 빼준다. 나이가 들수록 내일이건 남의 일이건, 설사 그것이 소설일지라도 불행으로 끝나는 것을 견뎌낼 에너지가 고갈된 이유다.
"이 짓이라도 안 하면~"에서 '이짓'이란 글을 쓰는 창작행위이다. 작가인 그녀에게 '이 짓'이외에 폭포처럼 쏟아지는 지루할지 모를 시간을 견딜 수 있게 해 줄 다른'짓'이 있을 수 있겠는가.
스스로를 웃기려고 글을 썼다는 박완서 씨의 고백에서 깊은 내면의 겸손한 울림이 들린다. 나이 들어 할머니들끼리 모여 앉아 화투치고 손주자랑 며느리흉으로 시간 보내는 넉넉한 여유도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박완서 작가의 '이 짓'을 닮고 싶다. 글을 통해 스스로 위로받는 충만함이 일상이 되는 할머니가 될 수 있다면 바랄 것이 없겠다. 그런 할머니가 되는 꿈을 꾸면서 오늘도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