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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바닥 여행

by 박지영JPY

지구를 특별히 사랑하는 나는 중력의 법칙에 순응한다. 내 몸 어느 한 부분이라도 지구에서 멀어지지 않기 위해 하루 종일 방바닥에 등을 붙이고 누워있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시속 약 1,670km의 속도(적도 기준이니 우리 집 방바닥 속도는 약간 느릴 것이다)로 스스로 빙글빙글 돌고 있는 방바닥 여행은 돈도 안 들고 힘도 안 든다. 관성의 법칙으로 난 어지러움도 느끼지 않고 그냥 누워있기만 하면 저절로 낮과 밤을 경험하는 공짜 여행을 하는 것이다. 중력의 법칙에 반하는 비행기 승객들이 유명한 관광지를 찾아 하늘을 나는 동안 난 방바닥에 등을 붙이는 선택을 한다. 지구를 사랑하므로 지구 중력의 법칙을 거스를 의도가 전혀 없기 때문이라고 이해해 주시라.


개인적인 사정으로 2월의 마지막 주 달력을 빼곡히 메운 빨간 날들을 한가하게 지워가다가 드디어 방바닥 여행이 지겨워졌다. 빨간 글자가 검어지자마자 숨도 안 쉬고 도서관으로 돌진. 많은 책들에 둘러싸여 있으면 나만 왕따가 된 것 같은 군중 속의 고독을 느낀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니다. 제목에 눈이 번쩍 뜨였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이었다.

캐나다 토론토에 살고 있던 스물네 살의 작가 제이미는 대학원 진학을 앞두고 있었고 사랑하는 로버트와 결혼할 예정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신문광고에서 '해외에서 가르칠 교사 구함.'이라는 문구를 발견한다. 부탄이라는 히말라야 왕국에서 대학 영어 강사를 구하는 광고였다. 토론토 이외 다른 곳에서 살았던 경험이 전혀 없었고, 여행 경험도 거의 없었던 제이미는 선택에 대해 갈등한다. 하지만 낯선 곳에 대한 두려움도 새로운 세계를 항한 그녀의 열망을 이길 수 없었다. 할아버지와 로버트의 강한 반대를 이기고 결국 제이미는 부탄행을 결심한다.


부탄, 히말라야 동쪽에 위치한 조그만 탄트라 불교 왕국. 북쪽에는 티베트, 남쪽과 동쪽에는 인도, 서쪽에는 시킴이 국경을 접하고 있음. 전체가 산악 지형이고 수도는 탐 부. 언어는 종카 어로 티베트 어와 관련이 있음. 그리고 매우 많은 방언이 있음. 북쪽과 서쪽은 티베트 계통의 종족이고, 동쪽은 인도 몽골 인. 남쪽은 네팔 인으로 구성되어 있음. 국가적인 스포츠는 활쏘기. 정부 형태는 세습 군주제로, 1907년 종교와 정치 지도자가 공존하는 이원 정부제를 폐지하면서 군주 제가 세워짐. 수백 년 동안 외부 세계에 문을 닫고 살아왔음.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은 적이 없음.


불교 국가인 부탄은 수백 년 동안 외부 세계에 문을 닫고 살아온 이력으로 그들만의 문화를 보존하고 있었고 한 번도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은 적이 없는 국가였다. 생명에 대한 존중으로 길거리에는 들개 떼들이 몰려다니고 있었고 수십 종의 벌레들이 집을 점령해도 그들을 몰아낼 폭력은 생각할 수 없다. 밤마다 양철통을 건드려 자다가 놀라 깰지언정 쥐떼들의 올림픽을 막아낼 어떤 방도도 강구하지 않는다. 폭우로 물이 넘쳐나고 산사태로 길이 막혀도 그저 참아내고 기다린다. 편하고 자유롭게 살던 문명의 이기를 포기해야 했던 제이미는 과연 부탄에서의 생활을 견뎌낼 수 있을까? 고민한다. 그러다가 어느 날 길을 잃고 헤매다가 마주친 부탄의 아름다운 자연에 마음을 빼앗기고 부탄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다. 교수로서의 계약기간을 연장한다. 제이미는 대학교수로서 대학생이던 체왕을 사랑한 것을 자책한다. 국제결혼이 법률로 금지되어 있던 부탄에서 그들의 사랑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결혼하고 예쁜 딸아이와 함께 부탄에서 행복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

여행이라는 제목에 마음이 끌렸지만 혹시라도 죽음과 관련된 내용이 아닐까 의심스러웠던 것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이라는 형용사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순박하고 생명을 존중하는 부탄인들과 아름다운 자연을 묘사한 제이미로 인해 나도 부탄에 가보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다.

그러나 그곳에도 갈등은 있다. 이민을 허용해서 들어왔던 남부 인도인들과 북부 순수 부탄인들과의 갈등이다. 대학 축제에서 남부 학생들은 그들의 전통의상을 입으려 했고 총장은 북부 부탄학생들과 같은 부탄의 전통의상을 강요한다. 숨어있는 민족적 갈등이 심각한 정치적 상황으로 연결되지만, 저자가 밝히고 있는 사건의 전말을 난 살짝 건너뛴다. 난 전쟁이 아닌 여행을 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름다운 부탄에서도 갈등은 존재한다는 사실과 인간의 이기심은 역시 어디서나 똑같다는 실망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것이 인간의 본성인 것을...

길게 말하진 않았지만 작가는 결혼생활에서 체왕과의 문화적 차이를 살짝 언급했다. 그것이 부부 갈등으로 이어지지 않기만을 개인적으로 소망한다.

바닥에 누워 경험해 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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