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청년처럼 사는 어르신을 줄여서 '청어'라고 한답니다. 각계각층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계시는 많은 청어들이 계시고 자신의 삶을 진심으로 즐기고 사랑하시는 청어들을 존경합니다. 그분들의 삶을 통해 저도 도전받고 진정한 '청어'가 되기를 꿈꾸어봅니다. 구십 세, 백 세까지 건강하고 호기심 왕성한 의욕적인 청어로 살 수 있다면, 언제가 될지 모를 이생에서의 마지막 순간에 정말 아쉬움 없이 행복하게 눈 감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영화 '소풍'은. 남해마을에서 꿈 많은 청소년기를 보낸 두 할머니와 한 할아버지의 이야기입니다. 말년에 고향에서 만나게 된 그들의 우정과 사랑이 흐뭇합니다. 그렇지만 고향 마을에서의 그들의 말년은 만만치 않습니다. 할아버지는 얼마 안 있어 뇌종양으로 돌아가시고 두 할머니는 파킨슨병과 허리병으로 고통스럽습니다. 자신들의 마지막을 자식에게 의지하지 않기 위해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티고 있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자신이 처한 상황에만 집중하느라 어머니의 고통은 모르는 채 어머니의 재산 상속만 바라는 자식들...
낮에 함께 누워 있다가 허리 때문에 움직이지 못하는 할머니가 친구에게 갑자기 기저귀를 청합니다. 파킨슨이 많이 진행된 친구 할머니는 손이 떨려 기저귀 찾기를 실패하고, 기저귀를 기다리던 할머니는 그만 누운 자리에 실례를 하고 맙니다. 오줌도 누고 똥마저 싸버리고 결국 울음을 떠트립니다.
며칠 후 두 할머니는 결심을 합니다. '소풍'을 가기로요.
"우리 소풍 가자" 담담하게 말하는 친구를 향해 "그래, 그러자꾸나" 하고 미소 지으며 담담하게 대꾸하는 친구 할머니...
집안을 대청소하고 목욕탕을 다녀옵니다. 김밥을 싸서 집을 나섭니다. 높은 산을 오릅니다. 오르던 도중 준비해 온 김밥을 꾸역꾸역 드십니다. 얹히지 않게 천천히 먹으라고 친구를 걱정하는 할머니와 그 걱정을 의미 있게 받아치는 친구 할머니의 높은 웃음소리가 괴기스럽게까지 느껴집니다.
김밥을 다 드시고 힘겹게 힘겹게 산 정상에 다다른 두 할머니 앞에 남해바다의 푸른 물결이 아름답게 흐르고 있습니다. 소풍을 끝내야 할 시간이 다가온 거지요.
두 손을 꼭 붙잡고 두 할머니는 활짝 웃으십니다. 그리고 영화는 끝이 납니다.
어깨까지 들썩거리면서 울어보기는 근래 들어 처음이네요. '존엄사'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에 잠기게 합니다. '청어'가 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어르신들과 그들의 안타까운 비극이 남의 일 같지가 않습니다. 수명 연장을 가능하게 해주는 의료기술의 진보에 대한 양면성도 보입니다. 자식은 끝까지 보듬고 내어 주어야만 하는 존재인가
영화가 끝나면 마지막까지 자리를 뜨지 않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알든 모르든 영상 마지막까지 흐르는 누군가의 이름을 끝까지 읽습니다. 오늘도 그러고 있는데 가수 임영웅 씨의 '모래 알갱이'라는 노래가 영화를 끝까지 품어주고 있었습니다. 울다가 듣는 그의 노래에 빠져 한동안 일어서지를 못 했네요. ‘모래 알갱이’처럼 한없이 작은 존재이지만 모래사장에 누워 햇살의 위로를 받은 듯 몸과 마음이 따뜻해지고 있었네요.
모든 이의 바람이지만 그리 되기 쉽지 않은 '청어'입니다. 청어가 되기 위해 스스로 건강을 돌보며 긍정적으로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소풍 떠나기 전에 책상 한편에 놓아두고 나온 할머니의 옥색반지와 그녀의 '시'에 등장하는 서럽도록 아름다운 해당화가 잔영이 되어 오래도록 남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