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깝게 지내던 동생이 있었다. 심리학 저서를 백여 권 읽고 나서 많은 것을 깨우쳤다고 늘 주장하는 동생이 내게 말했다.
"언니, 왜 글을 쓰는 거야? 써서 왜 블로그에 올리는 거야? 그건 자신을 다 내보이는 행위야. 위험해. 빨리 싹 다 지워버려"
이런 식의 충고는 난생처음 들어보는 것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무척 당황스러웠다. 동생의 말을 듣고 보니 갑자기 불안이 밀려왔다. 블로그에 들어가서 너무 개인적인 생활이나 감정이 드러난 글을 선별했다. 지우고 나서 잠시 편안하던 마음이 다시 불안해졌다. 백여 권의 심리학 저서로 인해 항상 당당한 자신감에 차있는 동생이 글을 내리라고 자꾸 충고했기 때문이다.
"이참에 블로그를 아예 없애버릴까?" 하는 심정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지금도 블로그와 브런치에 글을 올리고 있고 여럿이 모여있는 톡방에도 올린다.
"읽고 나서 나를 싫어하면 어쩌지? 귀찮게 왜 자꾸 이런 걸 올리는 거야, 잘 쓰지도 못하면서 잘난 척하는군. 너무 나대는 군... 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들이 물밀듯 몰려오기도 한다. 하지만 일단 써놓으면 그냥 혼자만 간직하지를 못한다. 나도 모르게 어느새 여기저기 써놓은 글을 올리고 있는 내 손가락은 나의 불안과 걱정보다 속도가 훨씬 빠르다.
사람들이 글을 쓰는 목적은 무엇일까? 말하고 싶은 욕구와 같은 것이리라. 말한 것을 다 녹음해놓지는 못하지만 글은 써서 간직할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일기'이다. 하지만 일기는 자신만 볼 수 있도록 꼭꼭 감추어놓은 글이다. 일기를 목적으로 쓴 글이 아닌 이상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쓴 글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은 심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림을 그려 전시하고 음악을 만들어 발표하고 대중 앞에서 노래하고 춤을 보여주는 행위와 무엇이 다를까.
모든 예술은 자신의 내부에서 끓어오르는 열정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그것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함께 공감하고 공감받기를 원한다. 그로 인해 이루어지는 정서적 유대감과 만족감, 안정감은 최상의 보너스다. 그러나 그 보너스가 누구에게나 주어지지는 않는다. 이름 없이 사라져 가는 많은 작가들은 보너스는커녕 노력에 비해 형편없는 대접을 받으며 유유히 무대에서 사라진다. 무대에 서기라도 했다면 다행이다. 그만큼 예술의 세계는 엄정하고 불공평하다.
그러나 생각한다. 무대가 무슨 상관인가. 무대 없는 길거리에서의 버스킹이었다 하더라도 이름 모를 그 누군가와 정서적 유대감을 가질 수 있다면 그 일이 감동이 되고 희망이 된다. 그리고 그 작가의 소명은 성공한 것이다.
누구든 자신의 표현물을 내보일 때 최상의 것을 보여주기를 원한다. 쓴 것을 고치고 또 고치고 백 번이라도 고쳐서 발표한다. 그러나 그것도 어느 정도 성격의 영향을 받는 것 같다. 벼락치기, 노(No) 인내, 오토바이 등으로 대변되는 내 성향으로는 휘리릭~써놓고는 다시 들여다볼 의지도 용기도 없다. 그러고도 냅다 여기저기 SNS에 던져놓는 나는 내가 생각해도 참 용감하고 희한한 인류(?)다. 잘못된 걸 알면서도 고치기가 힘드니 이것은 타고난 성향이 맞다.
이 나이에 성향을 바꾸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퇴고는 성향 운운할 단어가 아니니 찬찬하게, 여유 있게 고심하는 노력이 내게는 절대적이다.
이름은 생각나지 않지만 어느 작가가 말했다고 한다. "글을 쓰는 행위는 나 자신을 벌거벗겨놓고 네거리에 세우는 일이다"라고... 이 말을 되새길 때마다 불안과 염려가 밀려온다. 그러나 내가 비하될지 모를 이 위험한 행동을 통해 나는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누가 죽은 자에게 돌을 던지겠는가? 나는 살아있음으로 인해 돌을 맞을 수도 있고 꽃다발을 받을 수도 있으니 아직은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죽은 자는 불안도 걱정도 없다. 나는 살아있음으로 인해 끊임없이 불안하고 걱정도 하지만 그것이 피드백이 되어 때로 주저앉고 하염없이 넋이 빠진 나를 일으켜 세운다.
빈 속에 영양제 한 줌 털어 넣고 사랑하는 믹스커피 한 잔 마시며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시간이 살아있는 내게 얼마나 행복한 시간인지 모르겠다.
글을 써서 어디든 응모해 보라는 말을 가끔 듣는다. 응모해 놓고 간이 졸게 기다리는 고통이 싫다. 내 실력은 내가 잘 아는 만큼 분수를 지키고 살아야 힘을 늘 염두에 둔다.
글 잘 쓰시는 분들이 넘쳐나는 세상에 나까지 심사위원의 에너지를 뺏을 수는 없지 않는가...
지금 KBS FM에서 얼마 전 읽었던 '시대의 소음'의 주인공 쇼스타코비치의 왈츠 2번이 흘러나오고 있다. 장엄하면서도 귀여운 면모가 있는 여왕을 알현하고 있는 듯한 느낌의 곡이다. 황홀한 음악이 있고, 읽고 쓰고 들을 수 있는 나는 살아있어서 행복하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