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꿈과 좋은 세월

by 박지영JYP

주민센터에서 운영하는 체력단련장은 경쟁률이 무척 세다. 새벽 5시 30분에 나와 줄을 서고 있는데 오늘은 웬일로 사람이 많지 않은 편이라고 한다. 7시부터 번호표를 나누어주면 사람들은 흩어질 것이고, 9시부터 시작하는 정식등록을 위해 다시 모일 것이다. 사설 헬스클럽에 비해 저렴하면서도 시설도 그에 못지않으니 그럴 만도 하다. 부지런한 새가 모이를 먹는다는데, 부지런한 사람이 운동할 수 있는 것이 당연하다. 이 새벽에 잠 안 자고 줄 서있는 한겨울의 부지런함이 건강을 향한 갈망을 훈훈하게 달구고 있다.


체력단련장은 물론이고 몇 개 인기 있는 강좌는 어지간히 신경 쓰지 않고서는 등록이 힘들다. 주위에 복지관이나 문화센터, 직업개발 훈련원 등에서 보다 나은 자기 계발을 위해 부지런을 떠는 사람들은 보통 50대 이상의 분들이시다.

바쁜 일상 속에서 나름 시간을 쪼개 자기 계발에 힘쓰는 일이 당연한 사회적인 분위기가 된 데에는 각종 문화시설의 힘이 크다. 젊어서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았던 보상으로 자기 자신에게 눈을 돌리는 일은 멋지다. 젊어서 못 다 이루었던 꿈을 위해 그림이나 글쓰기, 댄스, 악기, 독서, 외국어 등을 배우면서 늦은 도전을 하는 시니어들의 열기는 20대 청년 못지않게 뜨겁다.


재작년에 팔순을 기념해 자신의 문예집 출판 겸 미술작품 전시회를 여신 분의 초대를 받은 적이 있다. 교회 건물 사방에 그분의 그림이 걸려있었고, 어머니의 작품 전시회를 기획하고 실현해 낸 자식들의 이야기를 담은 그분의 글을 읽으면서 참으로 복 많으신 분이라는 생각을 했다. 성악을 전공한 딸과 사위가 부르는 축하노래는 80여 년의 세월을 한순간에 부드럽게 녹여내리는 힘이 있었다. 그날 이루어진 그분 생애 최고의 시간은 문화센터의 도움과 10여 년간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꾸준히 배움의 길을 놓지 않았던 그분 의지의 결과였다. 존경스럽기 그지없다.


내 주위에는 늦은 나이에 배움의 열정을 불태우시는 분들이 많다. 내년에 초등학교 정년퇴직이신 친한 언니는 작가의 꿈을 위해 편입한 사이버대 문예창작과 졸업을 앞두고 있다. 이번에 문우들과 함께 벌써 두 번째 수필집을 발간하셨다.

지난 5년여간 함께 공부하고 있는 5분의 톡방 영어스터디 멤버는 나의 소중한 보물들이다. 톡방에서 함께 공부하고 결과물을 서로 인증해 준다. 다음 카페에서 만났지만 얼굴을 한 번도 뵙지 못한 분도 두 분이나 계신다. 나머지 분들도 직접 뵐 기회는 거의 없다. 하지만 내가 아플 때 보내주신 그분들의 위로의 문자는 정말 따뜻했다. 이번에 공동시집을 냈는데 보내달라고 하셔서 우편으로 보내드렸다. 오늘 아침 대문 앞에 생각지도 못했던 새콤한 선물박스가 앉아있어 나는 이 겨울에도 새콤달콤한 꿈을 꾼다.,


가끔 생각한다. 이 좋은 시대를 살고 있는 내가 너무 감사하다고... 일제치하의 굴욕이나 6.25 전쟁의 아픔,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투쟁했던 고통 등을 극복해 낸 윗 세대의 희생으로 인한 축복이다. 평안한 이곳에서 노년의 예쁜 꿈을 이루어갈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사회공동체의 결속과 SNS의 긍정적 유대감을 활용할 수 있으니 결코 외롭지 않은 노년을 지낼 수 있다. 우리는 지금 복 많은 세월을 살고 있으니 참으로 감사하다.


그런데 지금 발가락이 곱아오고 등이 으슬으슬 추워온다. 번호표 받으려면 7분을 더 기다려야 한다. 길거리에서 우두커니 추위와 맞서는 이 고통을 몇 줄 글쓰기로 경감할 수 있으니 이 또한 감사한 일이 아니겠는가.


ㅡ한 시간 반의 기다림으로 콧물이 졸졸 흐른다.

아침 먹고 보약 같은 감기약 한 알 먹어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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