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과 팩 마사지

by 박지영JYP

프랑켄슈타인이 만들어낸 괴물은 그냥 괴물로 불린다. 이름이 없다. 괴물을 만든 프랑켄슈타인이 그의 흉측한 외모를 보고 공포에 질려 달아난 이후 이름도 돌봄도 교육도 받지 못했다. 외로움에 시달리던 괴물은 자신을 만든 프랑켄슈타인을 증오하게 되고 그의 동생과 친구를 죽이는 파괴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고독이 만들어낸 비극이다. 만일 괴물의 외모가 미남이었다면 결과가 달랐을까? 아마도 그럴 것 같다. 프랑켄슈타인은 그를 버리지 않았을 것이고, 그는 인간이 창조해 낸 최초의 인간으로 큰 관심을 받았을 것이다. 인간이 따를 수 없는 큰 키와 엄청난 힘이 사람을 죽이는 도구로 전락한 데에는 그의 흉측한 외모가 가장 큰 윈인이었다고 생각한다.

그가 만들어질 때부터 원래 악한 존재였는가, 아니면 인간의 배척이 만들어 낸 소외감이 불러온 증오로 생긴 것인가? 는 그 이후의 문제이다. 외모에 대한 편견이 타당한가 그른가라는 문제 제기는 별로 도움이 안 된다. 우리는 시각을 통해 1초 만에 전달되는 표면적인 정보를 통해 상대를 판단하는 데에 익숙해져 있는 것이다. 괴물의 경우는 잘생기고 못 생기고의 문제보다는 그의 외모가 공포를 일으킬 만큼 흉측했다는 데에 있었다. 그러나 결론은 같다. 그를 만든 프랑켄슈타인은 고생해서 만들어놓은 자신의 창조물에게 말 한마디 걸어보지 않은 채 그를 버리고 달아났고, 그 이후로도 내내 그를 만든 자신의 책임과 의무는 간과했다. 그 이유는 혐오스러운 괴물의 외모였다.


흉측한 외모로 고통받는 주인공에 관한 이야기는 많다. 미녀와 야수, 노트르담의 꼽추, 오페라의 유령, 벤저민 버틀러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등등... 주인공들의 사연은 한결같이 눈물겹다. 미에 대한 기준은 시대마다 지역마다 꽤 다른 양상을 보이지만, 아름다운 외모가 사회적으로 유리한 경우는 어디를 막론하고 비슷하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이왕이면 예쁘게 귀엽게 매력적으로 생기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프랑켄슈타인을 비난할 용기는 없다.


요즘 우리는 외모 지상국에 살고 있다. 미를 추구하는 여자의 본능을 일깨우다 못해 이제는 남자들의 잠자던 본능도 자극한다. 스킨조차 바르기 귀찮아하던 남자들이 얼굴에 화장을 하고 성형외과를 찾아간다. 큰 키를 위해 어릴 때부터 주사를 맞히느라 극성인 부모도 있다. 결혼한 지 10년 넘은 여배우가 아이를 둘 낳고도 아가씨 적의 몸매를 그대로 간직하게 한다는 다이어트 약이 불티나게 팔린다. 넘쳐나는 성형외과들은 고객 유치를 위해 막대한 광고비도 불사한다. 이왕이면 다홍치마지만 단순한 다홍치마가 되기 위한 노력이 도를 넘는다 싶을 때도 있다. 그래도 세상은 잘 돌아간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 원하고 바라보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흘러가는 물길에 몸을 맡기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리라.


프랑켄슈타인의 무책임함과 괴물의 일탈된 범죄의 원인이 외모지상주의로만 확대해석된 감은 있다. 그러나 당장 눈에 보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이지 않는 내면의 것, 무형의 것을 바라볼 줄 아는 지혜가 중요하다는 말이 하고 싶었다.


그나저나 어젯밤에 '배종옥 팩'을 만들어 냉장고에 넣어 두었는데,,, 희고 고운 피부를 위해 아침저녁으로 바르려고 만들어놓은 팩이 굳지는 않았는지 걱정된다. 이 글을 다 쓰고 나면 팩 마사지를 해야겠다.

돌아보면 나 또한 흘러가는 물길에 몸과 생각을 맡기는

'다홍치마'추앙론자다. 그래도 팩 하면서 책 한 권 옆에 놓고 들여다보는 수고쯤은 해야 할 것 같다.

안 보이는 것들을 보기 위한 작은 노력이라고 말하면 얄미워 보일까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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