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이는 작별

by 박지영JYP

피 흐르는 눈 2 / 한 강


여덟살이 된 아들에게

인디언 식으로 내 이름을 지어달라 했다


펄펄 내리는 눈의 슬픔


아이가 지어준 내 이름이다


(제 이름은 반짝이는 숲이라 했다)


그 후 깊은 밤이면 눈을 감을 때마다

눈꺼풀 밖으로

육각형의 눈이 내렸지만

그것을 볼 수 없었다


보이는 것은

피의 수면


​펄펄 내리는 눈 속에

두 눈을 잠그고 누워 있었다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1860년대 미국 서부 개척 시대를 배경으로 그려진 영화 '늑대와 춤을'은 정말 재미있게 보았던 몇 편 안 되는 영화 중 하나다.

'늑대와 춤을'이라는 이름은 주인공인 북군장교 던바 중위가 두 발이 하얀 늑대 '두 삭스'와 함께 춤추는 모습을 보고 수족 친구가 그에게 지어준 인디언식 이름이다.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봤던 영화였는데 기대 이상의 흥미로운 스토리에 완전히 몰입되었었다. 특히 '늑대와 춤을'이 아내와 함께 수족을 떠나는 장면에서 오열을 했던 기억이 있다. 사랑하는 친구들을 뒤로하고 말을 타고 떠나는 장면과 수족의 삶의 터전이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는 암시가 나의 눈물샘을 건드렸던 건데, 아마 지금 이 영화를 본다면 그때처럼 한없이 꺼억꺼억 울지는 않을 것 같다.

아무래도 한창 감성이 말랑말랑했던 시절에 본 느낌이랑 조금 다르지 않을까 싶다. 같은 책도 언제 읽었는지에 따라 감상이 다른 것처럼 말이다.

모닥불을 피워놓고 늑대와 함께 춤을 추는 던바의 모습이 인상 깊게 남아있다.


​그때 영화를 통해 인디언들의 이름 붙여주는 방식을 처음 알게 되었다. '늑대와 춤을' '주먹 쥐고 일어서' '발로 차는 새' '머릿속의 바람' 등 인디언식 이름은 특이하다. 그 사람의 특징과 행동이 묘사된 문장이라는 점이다. 한 사람을 아주 주의 깊게 관찰하였을 때 지을 수 있는 인간적이고 자연친화적인 이름인 것이다.


​여덟 살이 된 시적 화자의 아들은 엄마를 '펄펄 내리는 눈의 슬픔'이라고 인디언식 이름을 붙여주었다. 자신의 이름은 '반짝이는 숲'이라고 한다. 너무 아름다워서 많이 슬픈 이들의 이름에는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


​한강 작가의 소설 '작별'을 읽고 난 직후 이 시를 읽어서 그런가? 소설 '작별'을 떠올리게 된다.


​공원 벤치에 앉아 잠이 든 엄마는 자신의 몸이 점차 눈사람으로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날 이후부터 연인과 아들과의 이별을 서서히 준비한다. 자신의 몸이 완전히 눈사람으로 변해버릴 때까지의 시간은 그들에게 허락된 소중한 시간이다. 갑작스러운 작별이 아닌 '서서히'라는 시간의 완성은 그래서 더 가슴 짠한 사랑의 마무리로 보인다. 떠나는 자와 남아있는 자를 위한 시간은 '서서히'라는 부사를 통해 익어가는 것이다. 사랑하는 엄마가 눈사람이 되어 '서서히' 사라져 가는 과정에서 아이는 펄펄 내리는 눈이 슬펐을 것이다.


​하얀 눈이 펄펄 내릴 때 그것을 슬픔이라고 말해주는 여덟 살 아들의 눈빛이 궁금해진다. 강물이나 바닷물이 반짝일 때의 '윤슬'도 아름답지만 나무와 나무 사이에서 작열하는 태양이 숨을 쉴 때마다 숲이 반짝인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아이의 눈빛이 더 아름답다.


​눈이 내릴 때 눈사람은 슬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아야 할 숲은 반짝여야만 한다.

눈 쌓인 나뭇가지는 햇빛이 비추일 때 반짝이겠지?

햇빛에 녹은 눈물이 똑똑 떨어질 때마다 아이의 눈물도 반짝이겠지...

그래서 숲은 반짝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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