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에 / 최승호
누에들은 은수자다. 자승자박의 흰 동굴로 들어가 문을 닫고 조용히 몸을 감춘다. 혼자 웅크린 번데기의 시간에 존재의 변모는 시작된다. 세포들이 다시 배열되고 없었던 날개가 창조된다. 이 신비로운 변모가 꿈의 힘 없이 가능했을까. 어느 날 해맑은 아침의 얼굴이 동굴을 열고 나온다. 회저처럼
고통스러웠던 연금술의 긴 밤을 지나 비로소 하늘 백성의 날갯짓이 시작되는 것이다. 밖에서 구명을 뚫어주는 누에의 왕은 없다. 누에들은 언제나 자신들이 벽을 뚫어야 하며 안쪽에서 뚫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최승호 시인은 '누에'를 운둔하고 있는 수도자로 표현했다. 스스로를 결박 지어 동굴로 들어가 웅크린 번데기. 고통스럽던 긴 밤이 지나고 돋아나온 날개로 날갯짓을 하는 나비가 된 누에. 누에들은 언제나 자신들이 벽을 뚫어야 한다. 밖에서 구멍을 뚫어주는 이는 없다. 벽을 뚫는 일은 누군가의 도움 없이 오롯이 혼자 감당해내어야 할 누에의 몫이다. 고치의 벽은 안쪽에서 뚫어야 하는 것이다.
하나의 사물을 보는 각자의 생각은 각자가 가지고 있는 개성과 외모만큼이나 다르다.
예를 들어 떨어지는 나뭇잎을 보면서 삶의 끝자락에 관한 허무와 애상이 떠오르는 사람이 있고, 다음 세대를 위해 자리를 내어주고 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떨어져 나가는 나뭇잎의 희생을 떠올릴 수도 있다. 또는 바람에 그네 타다가 스카이다이빙 하듯이 땅바닥을 물 삼아곤두박질치는 장난꾸러기 같은 나뭇잎을 생각할 수도 있겠다.
최승호 시인의 '누에'를 읽다가 문득 오래전에 써두었던 '잠자던 재단사'가 떠올라 다시 읽어보았다. 나비가 되려던 꿈이 뜨거운 물에 삶아져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린 번데기의 비극!
비록 나비는 못 되었어도 화사한 나비옷이 된 번데기를 위로하고 싶은 심정으로 쓴 시이다.
스승님도 없이 그저 마음 내키는 대로, 펜 가는 대로 혼자 멋대로 써내는 신출내기의 시라 최승호 시인의 시와는 비교할 수도 없겠다. 다만 같은 누에, 번데기라는 대상이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른 이야기가 되어 써진다는 사실이 흥미로와서 소개해 본다.
잠자던 재단사 / 박지영
나의 언어를 꼭꼭 눌러 너를 쓴다
너는 나의 일기
백 개의 서럽게 백 개의 침묵이 개켜있는
백 년의 밀실, 밀봉된 호흡이 숨을 쉬면
살았어도 티 나지 않는 잔물결이 출렁이는
유리그릇, 거울, 첫사랑, 힘센 자의 약속
깨져도 반짝이는 그럴듯한 위로지
견사에 둘둘 말린 추락이지
침실은 깔끔하고 천정은 아치형
명주실 드리운 하얀 벽
못 먹어도 배부른 비단궁전에서
오래도록 꿈을 꾸고 있었구나
고귀한 여자의 스카프, 노란색 스카프
다림질은 뜨거운 바람에 내맡겼지
어둠의 갑옷 벗어던졌지
나비가 될지 몰라 참았던 울음이
나비 옷 되어 날아가고 있었지
너는 나의 일기
나의 언어를 꼭꼭 눌러 너를 다시 쓴다
하여 잠에서 깨어나지 말기를
꿈꾸는 자는 영원히 아름다우리
나비꿈 꾸다가 나비 옷 되어 날아가는
뜨거운 파도에 내던져진
잠 자던 재단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