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에게 던지는 가장 본질적이며, 날카롭고도 따뜻한 질문
우리는 태어났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우리가 선택한 것이었나? 그렇지 않다. 내가 이 지구에 속한 생명체라는 사실을 인지하기 전까지, 우리는 스스로를 자각하지 못한 채 단지 '존재하는 의식'이었다. 누군가의 보살핌 없이는 이 지구라는 터전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던 채로, 생존 본능만 존재한 채로, 그냥 의식 그 자체로 말이다.
1분 1초, 시간이라는 틀로 가장한 의식의 변화 속에서 우리는 자각해 간다. 엄마와 아빠, 나무와 공기, 동물과 곤충, 음식과 친구 등. 언어라는 규정에 따라 정체성을 부여받은 존재들과 마주하며, 우리는 그들을 익히고 체험하고, 그렇게 자기 내면을 확장해 나간다.
그렇다면 '언어'는 뭘까? 위에도 언급했듯 규정이다. 우리가 태어난 순간 부모에게 이름을 부여받듯, "넌 앞으로 세상에 이런 이름으로 불릴 거야"라는 일종의 존재성 부여. 그 안에 수많은 정체성이 담겨 있어도, 특정 언어로 규정해버리면 그 존재는 그냥 그것이 된다. 나무와 꽃들이 본인들만의 문명을 짓고, 생명을 키우고, 바람을 조율해도 우리는 그 모든 사실을 "나무와 꽃"이라는 언어 속에 묻어버린 채, 그들의 생명력을 외면한다. 동물들이 감정을 느끼고, 집단의 중요성을 깨우치고, 그들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나눠도 우리는 그들을 "동물"로 규정해버리면 그들은 단지 인간에게 언제든 지배받을 수 있는 관찰 대상이 되어버린다. 한 마디로 미물이 된다.
모든 것이 물리로 이루어진 지구라는 행성 안에서 우리는 의외로 '보이지 않는 것'과 함께하며 살아간다. 특정 공간을 갔을 때 우리가 느끼는 분위기, 특정 사람과 대화할 때 느껴지는 느낌, 특정 상황에 느껴지는 감정. 이것들이 보이는가? 아니다. 느껴지는 거다. 만져지고, 시각적으로 보이고, 우리 손에 잡히는 물질이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보이지 않는 것을 느낄 수 있을까? 바로 이 모든 것은 '파동'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인식하는 모든 느낌, 분위기, 감정은 결국 진동하는 에너지, 즉 파동의 언어로 우리에게 말을 건네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파동이다. 그리고 그 진동은 스스로가 존재함을 인지하게 된 진동이다. 무(無)를 상상해 보자. 아무 소리도, 촉각도, 형체도 느껴지지 않는 검은 고요. 갈등도, 분리도, 경계도 없는 그곳은 곧 '통합의 상태'이자 '사랑' 그 자체다. 나와 너의 구분이 없는 것, 모든 것을 품고 있는 감각.
그러나 통합의 상태에서는 내가 누구인지를 알지 못한다. 쉽게 예를 들어, 우리는 스스로를 '직접' 보지 못한다. 거울이라는 반사판 물체를 통해서 본인의 모습을 들여다보거나, 타인과의 경험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해 간다. 무 또한 마찬가지다. 끝없는 어둠은 단지 알고 싶었다. '내가 누구인지'. 그 사소한 진동 하나가 파편처럼 퍼져 나가며, 스스로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시작된 반사와 인식의 장, 그것이 바로 '우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