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보다 글의 힘이 더 세니까
하루가 너무 힘들거나 너무 즐거울 때 일기를 종종 쓰는 편이다. 그런데 몇 달간 일기를 쓸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그 이유에 대해서 고민한 결과, 글로 쓴 내 감정을 인정하는 게 두려웠다. 내가 쓴 것들이 나에게 다시 상처를 줄까 봐 정말 무서웠다. 회피하고 회피하다가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수준이 됐다.
난생처음으로 심리 상담을 받았다. 내가 상담받는다는 걸 아는 사람이 몇 되지 않는데, 그중 한 명의 친구가 말했다. ‘네가 상담을 이제야 처음 받았다는 게 놀라워’ 나도 인정한다. 나는 나를 너무 괴롭히는 성격이고, 속이 병들어 가고 있었는데, 그걸 나만 제대로 몰랐다. 상담을 받으면서 내 마음을 말로 풀어내는 과정이 진짜 고통스러웠다. 그렇지만 내 두려움과 불안의 원인을 찾아가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갈수록 그 원인들이 또렷해졌다.
물론 지금도 완전히 마음이 편한 상태는 아니고, 나는 아무래도 평생 이렇게 살아갈 테지만 그래도 이제는 글로 마음을 정리할 정도로 많이 나아졌다. 어떻게 하면 나를 사랑할 수 있을지 계획을 세울 수 있는 정도가 됐다. 상담을 받으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가족들에게 꼭 설명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가족들로부터 오는 힘듦을 나 혼자 견디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덜어내고 싶어졌다. 가족들을 너무 사랑해서 자꾸만 내가 책임지려고 했던 것들을 내려놓기로 결심했다.
첫 상담을 한지 세 달 반이 지났고, 마지막 상담을 끝낸 지도 꽤 되었는데 이제야 글로 쓸 여유가 생겼다는 것이 한 편으로는 놀랍기도 하지만, 오늘 총 11장의 편지를 썼다. 30년을 살아오면서 우리 가족들이 서로 행복하기 위해 정말 여러 번의 부탁의 편지를 썼었는데, 그걸 오늘의 편지로 끝내보려는 마음이다. 나는 나를 지키는 방법을 찾아가고 있고, 세상 어떤 것 보다도 내가 소중해야 하기 때문에 마지막 편지를 썼다. 편지 쓰는 걸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편지 내용을 만들어내기까지 일주일 정도가 걸렸다. 그만큼 무겁고 힘든 글쓰기였다. 사실 내용은 그리 무겁지 않으나, 내 마음을 담아내는 게 어려웠다. 아무래도 글에는 힘이 강하기 때문인 것 같다.
더 이상 가족들의 문제에 개입하지 않고 내 인생의 소중함을 잃지 않기 위해 글을 쓴다. 이 편지가 나의 감정을 다 가져가고, 한결 마음 편한 삶을 살아가고 싶다. 앞으로 힘든 일이 생기지 않을 거라는 약속은 못하지만, 그런 일이 생길 때 나를 돌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 인생은 나 밖에 못 가지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