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 전문의를 만나고 왔다.
'밴쿠버의 한여름'이라 할만한 몇 번 없을 무더위에
일이 바빴다. 느긋하게 시간차를 두고 갈 수 있을 거로 생각하고 3시 30분 예약을 했는데
시간이 빠듯했다.
버스 배차 시간을 살짝 비껴가서
다음 차를 탔는데 조금 늦을 것 같아
조바심이 생긴다.
나는 시간 약속을 철저히 지키는 편이다.
무조건 일찍 가 있어야 직성이 풀리는
유난한 성격이다.
병원 진료에 늦을 상황이 되는 건
견딜 수 없어 전화를 걸었다.
"버스 안인데 여차저차해서 5-10분 늦을 것 같아요" 변명을 하고 양해를 구해야 하는
상황이 싫었다.
다음 진료 환자가 있어서 10분 이상 늦을 것
같으면 일정 변경을 하란다.
그게 마음은 편할 것 같은데
이미 버스로 이동 중이니 최대한 닿을 수
있도록 해보고 아니면, 다시 약속을
잡겠다고 했다.
유난히 정류장이 많게 느껴지고,
에어컨은 작동하지 않는 버스여서
땀은 범벅이다.
또 한 번 전화를 하고
버스로 이동 중임을, 노쇼나 늑장이
아님을 어필했다.
다행히 32분에 내려서 5분 정도 늦은 시간,
'헐레벌떡' 병원에 도착했다.
대기 중인 다른 환자가 숨 좀 고르라며 웃는다.
접수처 직원도 환한 미소로 맞아줘서
무더위에 진땀 흘린 수고가 헛되지는 않았다.
이런저런 검사를 받고 닥터 면담을 기다렸다.
소개받은 안과 전문의의 이름이 제임스 팍이다.
열심히 공부하셔서 전문의 되셨구나
교포출신의 한국 의사일 거라고 생각하고
막연히 내적 친밀감을 느낀다.
반갑게 인사를 건네며 들어오는 의사는
2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장신의
백인 의사였다.
풀네임을 보니 James Parkinson.
아... 괜히 머쓱했지만
친절히 꼼꼼한 설명으로
내 상태를 알려준다.
가족력을 고려할 때 썩 건강한 눈 상태는
아니다.하지만, 심각하지는 않으니
비타민 b12와 오메가를 매일 복용하고
지켜보다가 재 검사하자며 일정을 잡았다.
캐나다에 이민 와서 다양한 병원을 체험했다.
완벽하지 않은 언어가 주는 긴장감과,
오래 기다려야 하는 의료시스템에 피로감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다. 공감하는 부분이면서도
선택의 여지가 없기에 나는 그럴 때마다
발상을 전환하기로 한다.
닥터를 만나러 갈 때는 내 증상과
질의응답의 시뮬레이션을 한다.
고급 영어 구사의 연습 시간인 셈이다.
'기다림은 미덕' 까지는 아닐지라도
'쉬어가는 time이다' 라고 생각하며
책을 보고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는다.
그리고 병원 문을 나설 때면
무상 의료 받은 걸 가치로 환산해 본다.
'이 정도 검사에 의사 특진이면 얼마 번 셈이군'
웃프지만 내 나름의 고단한 병원 출입에 관한
처세술이고 위로법이다.
'피하지 못하면 즐기는 법' 일 수도 있겠다.
그렇게 무더운 여름날의 하루는
바빴던 반나절의 일과, 닥터를 만나는 일로
마쳤다.
30도를 넘어서는 뜨거운 대낮 기온과는
다르게 열어놓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밤바람이 차갑다.
열대야 없는 밴쿠버의 한 여름은
그렇기에 견딜만하다.
내 나라의 무더위가 맹위를 떨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습도가 더 곤혹스럽게 하고 있는 것도 안다.
한 여름을 지내는 일이 점점 버거워질 터이다.
숫제 버틴다는 말이 맞을듯하다.
폭염 속을 지나고 있을
내 나라의 가족, 친구가 유난히 보고 싶다.
그리운 마음을 알싸한 밤공기에 실어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