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우기

by Grace k

뒤지다 보니 속속들이 들어차 있다.
언제 사 둔 건지 모를 냉동 생선.
건어물 자투리.
파는 정성껏 썰어 지퍼락으로 두 개.
에어 프라이에 돌리기만 하면 될 제품들.
그걸 모르고 또 샀으니
묵은 것들은 과감히 쓰레기통 행이다.
아깝다고 묵히면 사온 신선한 것들도
구제품이 되기 십상이니
싹 버리고 온다.
무더위에 비워진 냉동고의 온도가
1도쯤 내려간 것이 체감될 정도다.

원래도 물건을 사거나 꾸미는데
취미나 욕심이 없는 편이다.
원체 사지 않기에 나눔을 해 주는
고마운 언니들이 있다.
내가 드물게 사는 것보다
양질의 것들이라 감사히 잘 사용한다.

이전에는 교회에서 바자회를 정기적으로 했다.
수익을 내어서 선교지에 보내고,
필요한 곳으로 흘려보냈다.
보람과 가치를 느끼고 실천할 수 있기에
늘 기쁜 마음으로 동참했었다.

아이들의 작아진 옷가지를 내놓았더니

한 번은 딸아이가 나를 불렀다.

"엄마, 내가 좋아하는 옷인데 왜 여기 있어?"
그래서 다시 사들인 적도 있었다.
'내돈내산'을 제대로 실천했던 웃지 못할
해프닝이었다.

치우다 보면 내가 뭘 이렇게 끼고사나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 현저히 줄었다.
그럴수록 내 짐이 남겨질 아이들의 짐으로
업혀 갈까 봐 우려가 된다.
이사를 한 번씩 하게 되면
짐 치우기기에 가장 좋은 타이밍일 것이다.
밴쿠버로 이민 와서 세 번을 옮겨 살았다.
지금 사는 곳에 정착하고 18년째를 맞다 보니,
쟁여져 있는 묵은 짐이 많은 건 어쩔 수 없다.

때마다 덜어낸다.
꼭 필요한 것들이 얼마나 될까.
채우면서 아름답게 꾸며가는 분들의 성취도
존중한다.
다만, 내 취향이 반대이니까
그런 라이프 스타일은 대리만족으로
대신할 뿐이다.

일기처럼 매일 써 내려가는 글도 마찬가지이다.
초고를 쓰고, 다시 읽어보면 더할 것보다는
덜어낼 것만 눈에 보인다.
말을 해도 그런 것 같다.
"엄마, 했던 말 또 해?"
중언부언, 첨언
간결해지는 연습, 퇴고, 짐 줄이기
내 요즈음 삶의 화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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