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이지 영어를 잘할 줄 알았다.
나는 전형적인 문과 재질이다.
학창 시절 국어, 영어, 일어,
음악등의 과목을 좋아했다.
국어는 문학이 좋은 내게 모국어라서
당연했다.
음악은 노래 부르기와 피아노를 취미로 하기에 즐거운 과목이었다.
영어는 외국어를 시작하는 대부분의
이들에게 로망이지 않을까.
그랬다. 외화를 더빙 아닌 원어로 듣고 싶었고,
영어로 된 원서를 막힘없이 읽고 싶었다.
무엇보다 프리토킹을 유창하게 하고 싶은
바람은 단연 컸다.
영어 선생님은 곧잘
책의 문장을 읽을 때 나를 일으켜 세우곤 하셨다.
발음이 괜찮았고 좋아하는 영어니
수학이었으면 진땀을 흘렸을 '스탠덥'이
싫지 않았었다.
24년 전 캐나다로 이민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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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 후인 지금의 나를 들여다본다.
내 영어실력은 일취월장했을까.
좋아했고, 심지어 꾸준히 쓰려고 노력했다.
타 언어이지만 언어 전공자로서의 부심이
있는 나였다.
하지만 내 영어 실력은 제자리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애써 스스로를 위로한 적도 있다.
"그래, 혼자 병원도 다니고 일도 하고
일상 생활 하는데 큰 지장 없을 정도면 되잖아."
그건 내가 이민으로 밴쿠버에 첫 발을
디뎠던 24년 전이면 충분할 멘트였다.
그때는 그래도 되었다.
"이제 막 와서 영어는 못해요..."
2년, 5년, 그리고 10년쯤 되어
강산이 한번 '들썩' 하게 되니 밑천이 보였다.
아이들이 자랄 때는 내 발음으로
책도 곧 잘 읽어 주었다.
늘 내 수준에 딱 맞을 법한 만화를
아이들과 함께 봤다.
지금도 영어를 써야 할 자리에
아들 딸을 앞세우지는 않는다.
내 최소한의 자존심이다.
하지만 24년간의 캐나다 살이와 영어 실력의
간극이 크다.
노력한 만큼 성장하는 건 젊음이 주는 특혜였다.
그만큼 열심히 했고, 잘했던 내 전공어를 두고 하는 말이다. 나는 일찍이 '수포자'였다.
그러나, 그때나 지금도 영어는 자존심과
애착 과목으로서의 부심으로 놓을 수가 없다.
어느 날은 넷플릭스의 영어가 술술 귀에 들어온다."늘기는 했군, 어라? 뭐래?"
이런 식의 반복이다.
영어가 나를 흔들더라도 이민 24년 차의
살아온 내공이 있다. 현타 오면 오는 대로
맞닥뜨리면서 가 보기로 한다.
살아오면서 가장 많이 하는 것 중의 하나가
이런저런 '다짐'이 되었다.
나이 들어가면서 더디 가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래도 티브이를 틀어서 로컬 뉴스로 하루를 연다.
'영어' 그 만만하지 않은 오랜 친구와
동행하며 오늘도 잘 지내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