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철 은퇴 목사님 그리고 가수 이승윤 이야기>
나이 들어가면
늙은이,어르신 두 부류로 나뉘어 불리는 것 같다.
물론 후자라야 잘 나이들어 가는 것 일테다.
전에는 “어휴, 저 노인 왜 저러지?” 하고 판단하는 부류였다.
이제는,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곱게 나이 들어가야지.”라고 생각하는 나이가 되었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어르신이 계신다.
젊은 시절 사회적으로 많은 것을 이루고, 어느 날의 회심으로 그것들을 다 내려놓으셨다.
그리고 본인이 생각하는 소신의 길을 가셨다.
그 약속을 지키는 것은 70 중반이 되신 지금도 여전하시다.
그 어르신의 책을 통해 인생을 배웠고, 또 살아갈 길을 모색해 왔다.
그러다 우연히 노래 경연 프로그램을 보는데, 신선한 아마추어 가수를 만났다.
살짝,하는 이야기만 들어도 보통의 패기가 아니다.
자기만의 세계관이 화면을 통해서도 튀어나올 것 같다.
싱어송라이터라는 그 가수의 가사를 들었을 때,
“아, 이 친구 범상치 않구나.” 하고 느꼈다.
그 친구는 경연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방송과 트렌드를 따라가기보다는
공연과 페스티벌 위주로 자신을 맘껏 드러낸다.
그의 열정은 공연을 통해 아낌없이 쏟아부어졌다.
Shorts를 선호하는 시대에 LP를 제작하고, full album을 꾸준히 낸다.
대중적인 인기 면에서는 주류이지 못하다.
그런데 앨범 제작에 들이는 스케일과 공이 어마어마하다.
“수입보다 지출이 많은 거 아냐?” 하는 팬심과 오지랖이 따른다.
그러나 그 친구는 너무 행복해 보인다.
하고 싶은 일을 맘껏 하며, 여느 때보다 충실한 삶이라고 스스로 말한다.
위의 어르신과 이 친구는 부자지간이었다.
우연히 알게 되었을 때는 소름이 돋았다.
기분 좋은 납득이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
팬심과 캐내기 좋아하는 기자들의 들추기로 알려진 관계였다.
단 한 번도 그들은 서로의 관계를 대외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묵묵히 각자의 길을 갈 뿐이다.
그것은 그들에게서 풍겨 나는 그윽한 향기이다.
덧) 올해 6월에 써서 발행한 적이 있는 글을
발췌해서 붙였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어르신이 밴쿠버 교민을
위해 말씀을 전해주셨다.
편치 않으신 몸으로 장거리 비행을 하셨지만
10년 전 밴쿠버를 찾아주셨을 때와 말씀의
깊이가 동일하다.
여전히 예수 잘 믿는 일은 드러나지 않고
실천하는 이름없는 이들의 역할이 크다는 취지의 말씀이었다.
건강하셔서 육성으로 전하는 귀한 말씀
또 들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합정동에 소재한 목사님의 시무교회도
몇 번을 찾아서 예배드리곤 했었다.
가수 이승윤도 초기 무대는 홍대의 소극장이었다.
목사님은 은퇴와 동시에 낙향하셨고
음악인으로 도약한 이승윤의 무대는
큰 자리로 옮겨갔다.
내 팬심이 머무는 곳은 유형의 장소는 아니지만
뵙고 말씀을 직접 듣는 감격은 여전히 특별했다.
이승윤의 공연도 더 직관하고 싶어졌다.
내게 건강한 덕질은 삶의 에너지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