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보면 엄마나 이모가 내 나이쯤 되셨을 때는 뭐든 손 가는 음식도 척척 만들어 내셨다.
요즘은 밀프렙도 잘 되어있고
냉동식품은 해동만 해도 되는
완제품이 많다.
게다가 유튜브 클릭만으로도
초간단, 다양한 레시피들이 홍수처럼 쏟아진다.
우리 세대는 집밥이란 좀 더 투박하고
소박했던 음식으로 기억된다.
장 종류는 집에서 메주 띄워 만든 토종이었다.
국 간장도 거기서 나왔으니 간 배인 음식의
맛은 참 담백했다.
그런 귀한 옛 맛을 반 이상은 재현시켜 주는
친구의 손맛으로 입이 호강을 했다.
샤부샤부라면 고기가 메인이 되겠지만
다채로운 야채가 상차림 한가득이었다.
물론 고기도 넉넉히 준비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흔히 사용하지 않을
타로, 면을 닮은 두부, 박 등의 야채가 구미를 돋웠다.
야채를 듬뿍 넣어먹으니 살찔 걱정은 덜겠다는
합리화와 함께 양껏 먹었다.
공휴일을 맞아 모처럼 벗들과 한자리에 모였다.
늘 모이면 벌이는 윷판으로
한껏 흥을 발산했다.
승부에 열을 내면서 게임에 열중했다.
저녁시간이 되었다.
심심한 집 된장이 끓는데 냄새부터가 다르다.
묵힌 거라며 내놓은 김치도 제대로 곰삭았다.
언제 과식을 했는지는 금세 잊고,
저녁은 제대로 '한국인의 밥상'을 즐겼다.
친구의 솜씨는 익히 알고 있는 바다.
거기에 수고와 인심까지 더해져
호스트 친구네를 처음 방문한 친구는 감탄에 감탄을 더한다.
고마워 친구야,
외로운 이민사회지만 허물없는 인연과
오래도록 함께 했다.
가족보다 자주 볼 수 있고
속을 털어내도 흉이 되지 않는 친구다.
우리는 부른 배에 달콤한 후식을 더하면서
"다음엔 뭐 하지"를 기약했다.
사람이, 음식이 참 좋았던 하루가 그렇게 넉넉히 흘러갔다.
이민 오기 전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할 때다.
엄마의 집밥이 생각날 때면 휴무일을 택해
훌쩍 네 시간 거리의 친정으로 향하곤 했다.
엄마의 긴 요양 병원 생활,
그 시간보다 긴 이민생활
나도 엄마이고 어른이 되었지만
늘 미숙하고 어딘가 어설프다.
친구가 차려낸 집밥이 내게는 친정 엄마의 밥
그것 같은 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