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랑 친해지기

by Grace k

겨울 배추가 알차고 좋았다.
벗 둘과 한 박스를 사서 삼등분을 했다.
두 포기이지만 다섯 포기 가량의 무게와
꽉 찬 속이 서민의 밥상을 한동안 책임져 줄 것
같은 존재감을 뽐낸다.
받아 들고 오자마자 성미 급한 나는
해체와 다듬기에 들어갔다.
노란 속은 그냥 세척 후 된장에 찍어먹기용
그리고 루이 간식이다.
겉장들을 뜯었다. 삶아서 식히고 지퍼락 세 개로 나누어 냉동고에 봉인했다.
식구 단출한 내게는 남은 양도 막김치와 물김치 두 종류를 담을 수 있을 만큼이다.
속도전에 출전한 선수처럼
밀가루 풀을 쑤고 재료를 버무려
믹서에 갈아 섞으니 양념도 완성이다.
숭덩숭덩 썰은 배추에 부어 버무린다.
꼼꼼하고 정성 가득한 음식 장인이 뭐라고 할까.
"음식은 손맛인데" 라며 혼날 만큼의
김치 담기가 순식간에 끝났다.

그렇게 이틀을 상온에 두었다가 맛을 보니
솔직히 나쁘지 않다.
내 실력에서 나온 맛이 아니다. 겨울 배추는
서민의 현실적인 효자 채소다.
냉장고에 들여놓으니
곳간이 찬 것 같은 든든함이 있다.
김치전, 김치찌개, 두부 김치...
길지 않은 월동 준비 끝!
나이롱 30년 차 주부의 겨울나기는
두 포기 배추와 함께 소소하게 깊어간다.

여기까지는 지난주 시점


그리고 오늘

한 주 가운데 가장 heavy 한 스케줄을 소화해야 하는 날이다.
영하 한 번 없던 올 겨울날씨 끝에
시샘하듯 늦추위가 반짝 찬 기온을 불렀다.
파란 하늘 아래로 싸한 바람에 코가 시리다.
선블럭을 두껍게 바르고 버스 정류장을 향한다.


쨍한 날씨 틈으로 수줍은 듯 꽃이 잎을 틔웠다.
봄은 그렇게 지루했던 겨울을 밀어내며 오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