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

by Grace k

휴대폰을 집에 두고 온 걸 알았을 땐
버스 정류장에 다 와서였다.
3분이면 버스가 올 텐데 집에 다시
들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오늘은 11시부터 마감까지 풀타임 근무다.
9시간가량 휴대폰 없이 지내면
분리불안이 올 것 같지만 어쩔 수 없다.
첫 시간은 좀 답답했다.
"급한 전화나 메시지가 없으려나, "
적당히 바쁜 점심시간을 보내고 보니
세 시간이 훌쩍 지났다.
한가해진 틈새 슬쩍 곁눈질로
폰을 못 들여다보는 것이 아쉽다.
"내가 못 보는 사이 대형 뉴스거리라도
터진 건 아닌지, "
점심을 먹고 오후 근무에 열중하다 보니
하루의 막바지다.
폰 없는 하루를 꼬박 보내는 건
생각보다 특별한 게 없었다.
내가 텔레마케터도 아니고, 비즈니스를
하거나 긴급한 전화를 기다리는 것도
아니다. 디바이스에 의존하던
내 습성만 잠시 내려두면 될 일인 걸 알았다.
안구건조증이 심해 안약을 달고 사는 내 눈의
혹사가 강제 chill day를 맞은 날이다.
버스로 귀가를 하니 꼬박 9시간 30분이 지난 시점.
폰은 두고 간 자리에 얌전히 집 지킴이를
하고 있다.
"안녕,
짐짓 무심한 척, 천천히 집어든다.
어디보자"
.
.
오늘 휴무인 친구의 안부 전화 한 통,
통신사 영업 전화에 몇 개의 광고 카톡과
루이의 안부를 청하는 지인의 카톡이 전부다.
내 설레발이 무색할 만큼
전화통은 불이 나지도 않았고,
연락이 차고 넘치지도 않는다.
메일과 브런치까지 합치자면
라이킷과 댓글이 조금 더 늘어 있어서
반갑게 읽는다.

오늘 하루 폰과 내 안구는
주인장의 깜박하는 건망증 덕에
쉬어가는 하루였다.
생각해 보면 디바이스 중독에서
내가 디톡스를 한 셈이다.
한 번씩은 이렇게라도 거리 두기가
필요한 걸.
오늘의 감상문 쓰기를 시작으로
폰은 애착 인형처럼
다시 내 손안에 들어왔다.


한 번씩 휴대폰 거리두기 해 보시겠어요?

저만 그랬던게 억울해서는 아닙니다 하하.


잎이 다 떨어진 자리에 새 생명이 움트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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