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여행(시베리아 횡단열차 여행)
3. 여행이 아니라 지옥-1(다시 돌아가야 하나?)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끝없는 초원을 달린다는 부품 꿈을 안고, 멋진 여행을 상상하며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그러나!
마음은 설레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했다. 내가 해외를 나가 본 것은 2000년대 초 KT의 안양지사 전송분야에서 근무할 때 업무차 단체로 가봤던 중국의 북경과 여행사를 통해 가봤던 장가계가 고작이었다. 그만큼 해외라는 것은 낯설고 신비하기도 했던 나였다.
그런데 가이드도 없이 사회주의 국가이면서도 우리에겐 친숙하지도 않은 러시아를 자유여행으로 간다는 것에 용기보다 두려움이 앞섰다.
그렇지만 한번 결정한 이상 오랜 기억이 남을 멋진 여행으로 만들어보자고 다짐했다. 곁에는 든든한 나의 아들이 있었다.
아들은 대학 3학년 때 미국의 모 주립대에 교환학생으로 1년간 생활한 적이 있었다. 아들은 그때 많은 것을 보고 배운 것 같았다. 특히 미국의 넓은 국토를 보고 다니면서 세상 보는 눈이 트인 것 같았다. 때문에 이런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여행을 가고 싶은 생각을 했던 듯하다.
"미국생활 1년이 헛되지는 않았구나!"
2016.09.24
인천공항.
출발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블라디보스톡으로 가는 항공기의 탑승 안내멘트는 나오질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와 마찬가지로 궁금증만 안고 초조하게 기다리는 것 같았다. 그곳에는 우리 한국사람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사람들, 러시아 백인, 중앙아시아인, 몽골인 등이 대부분으로, 나의 마음속에서는 벌써부터 우리 한국사람들을 찾고 있었다.
드디어 16시 10분 시베리아 항공기의 이륙시간도 다 되어서야 '시베리아 항공기의 도착이 지연되어 블라디보스톡으로의 출발시간도 지연되게 되었다.'는 안내멘트가 나왔다. 마음은 더욱 초조해졌다.
10:50분에 블라디보스톡역에서 출발하게 되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려면 적어도 몇 십분 전에는 공항에 도착해야 되었다. 공항에서 기차역까지 가는 시간도 여분으로 있어야 되었다.
그러나 기다리는 항공기는 더욱 늦어져 아예 열차를 탈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어떡한담?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지 못하면 이 항공기를 타고 가야 할 이유가 없었다. 나의 입장을 항공사 여직원한테 하소연하니 인천공항에 출장 나온 시베리아항공 직원(7s)에게 통역 전달을 했다.
다시 통역해서 전달받은 것이 “블라디보스톡 공항에 입국하면 항공사 직원이 기다렸다가 해결해 줄 것”이라며 전화번호를 적어준다.
이걸 믿어야 되나? 반신반의하면서도 비행기를 탔고, 도착한 비행기는 예정보다 6시간이나 늦은 자정이 되어서야 블라디보스톡 공항에 도착했다.
늦은 밤 도착한 블라디보스톡 공항,
그러나 기다린다는 항공사 직원은 보이질 않고, 알려준 전화번호로 전화를 해보나 통화가 되지를 않는다. 암담했다.
항공기에서 쏟아져 나온 승객들은 밤이 늦었는데도 서둘러 제 갈 길로 가고 한 순간 낯선 공항에 아들과 나 둘만이 남게 되었다. 텅 빈 공항의 대합실은 을씨년스럽고 공포감이 몰려왔다. 내가 타야 할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떠난 지가 한참이나 되었고, 전혀 예상치 못한 낯선 이국의 공항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된 처지가 기가 막혔다.
게다가 지척에 두만강 건너 북한이 있는데,
"이런 경우도 있단 말인가?"
가슴속에서는 러시아란 나라에 대해 울화가 치밀었지만 그렇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었다.
일단 공항 대합실 한쪽 구석에 짐을 내려놓고 의자에서 밤을 새기로 했다. 밤은 깊어 어디로 가야 할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찌 됐든 날이 밝아야 움직일 수가 있었다. 인천공항에서부터 지금까지 초조하게 보낸 시간들에 정신적으로 녹초가 되어 있었다. 그 상황에서 잠이 올리가 없지만 조금이라도 눈을 붙여야 되었다.
와중에 핸드폰에서 문자 소리가 들렸다. 무슨 문자일까 핸드폰을 열어보니 "북한 국경 인근에 있는 한국 사람들은 국경에서 빨리 멀리 떠나세요"라는 대한민국 영사관에서 보낸 긴박한 문자가 반복되어 왔다.
바로 몇일 전에 탈북한 다수의 젊은 여자들이 극적으로 국내로 입국했고, 언론에서 대대적으로 보도가 되었었다. 그 사건으로 인하여 자신들도 똑같이 보복 납치하겠다며 분노하고 있던 참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다시 귀국할까? 아니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아들은 핸드폰으로 인터넷 검색을 해 보더니 의견을 묻는다. 블라디보스톡에서 새벽에 하바롭스크로 출발하는 항공노선이 있단다.
내일 아침 출발하는 그 비행기를 타면 우리가 예약했던 열차를 하바롭스크에서 따라붙을 수 있겠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자!"
이제 와서 다시 인천공항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었다. 절망 속에서 한줄기 빛이었다. 우린 공항에서 잠을 자고 하바롭스크행 항공기를 탔다. 낯선 이국의 새벽은 내가 사는 산본의 가을 새벽 공기와 별로 다르지 않게 상큼했다. 항공기는 제 고도에 다다른 후 북으로 북으로 향하고 하바롭스크에 점점 가까이 갈수록 하늘 밑 낯선 마을은 까마득히 스치듯 지나가고 솜털같이 깨끗한 뭉게구름은 내 뇌리에 환상의 사진으로 깊게 저장되었다. 아직 여행의 여부는 확신이 없지만 이 순간의 아름다움에 감탄은 절로 나고 조금이라도 더 오랫동안 보고 싶은 것도 잠깐, 드디어 항공기는 하바롭스크의 공항으로 내려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