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류하는 세상
얼마 전에 친구가 유학 간 자녀들에게 보낸 편지를 묶어서 책으로 보내왔다.
책을 읽다가 갑자기 든 생각이다.
주변에 자식 얘기하는 사람을 별반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은퇴하고 지역 사회에 살다 보니 만나는 이들이 대개는 지천명과 이순을 넘어 종심(從心)을 바라보거나 넘긴 나이들이다.
보통은 자식들이 마흔을 넘기고 손주들 또한 제법 커서 서로 손주들 사진을 디밀 나이도 지났다.
어렵게 입을 떼도 좋은 소리는 듣기가 쉽지 않다. 다들 내로라하는 직업을 가졌음에도 입 안의 웅얼거림은 볼멘소리다.
며느리로 넘어가면 표정까지 관리가 잘 안 된다
왜?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자식들 이건만 마땅치 않을 걸까? 정치를 포함한 사회에 대한 관점차이나 4차 산업이 주도하는 새로운 문물에 대한 이해 격차 혹은 손주들에 대한 교육(때로는 훈육) 관의 상이 정도가 주류를 이룬다. 얼핏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친 문제 같지만 종합하면 세대 간 갈등이다.
돌이켜 보면 세대 갈등은 긴 역사를 지닌다.
피라미드에도 ‘요즘 아이들이란’하고 후대를 힐난하는 낙서가 있다 질 않은가?
문제는 세대를 넘어 계층, 성별, 소득, 지역, 문화 등으로 괴리의 영역이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유독 당대에 들어 이런 전 방위적인 괴리의 현상은 다각적인 분석과 해석이 가능하겠으나 총체적으로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전환이라고 볼 수 있다.
1991년 인터넷이 보급되기 시작했으니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의 일이다. 오늘날 벌어지는 세대 간 틈새의 분기점과 일치한다. 그동안 디지털 리터러시라는 이름으로 아날로그 세대를 일깨우기 위한 다각적인 계몽과 교육이 이루어져 왔지만 그 효과는 턱없이 미흡하다. 그도 그럴 것이 디지털은 불과 30여 년이지만 아날로그는 호모 사피엔스 더 멀게는 지구상에 인간이라는 종이 출현한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수십만 년 전의 일이다.
그동안 아날로그는 생존 본능으로 각인되었으며 이러한 DNA 적 속성은 디지털 세대에게도 내재되어 있다.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 지능이 내포하는 인성, 인품, 덕성 등이 재 조명받기 시작하는 이유다.
요는 이를 여하히 전달해 주느냐이다.
디지털(세대)에 대한 강도 높은 이해가 불가피하다. 그래야 저들의 언어로 전달이 가능하다. 오늘의 시니어는 유사 이래 후대로부터 배우는 첫 번째 선대(배, 생)의 운명이다. 이는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이기도 하다.